지난 22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상파 방송사 사장단을 만났다. 이날 지상파 사장단이 ‘광고규제 완화’와 함께 강조해 건의한 것은 ‘넷플릭스에 대한 정책 대응’이었다.

‘찻잔 속 태풍’이라던 넷플릭스가 달라지고 있다. 국내 직원을 뽑고 국내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를 선보인 데 이어 드라마 ‘킹덤’과 예능콘텐츠 ‘YG전자’를 제작하고 있다. LG유플러스와 제휴를 맺고 IPTV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지상파방송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5월17일 성명을 내고 넷플릭스와 LG유플러스의 제휴가 “미디어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훼손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크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MBC플러스를 비롯한 지상파 계열 채널이 소속된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도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해외 거대 자본이 유리한 거래 조건으로 한류 시장을 송두리째 먹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 방송사 사장단(한국방송협회 회장단) 간담회. 왼쪽부터 한용길 CBS 사장,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정훈 SBS 사장, 장해랑 EBS 사장.
▲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상파 방송사 사장단(한국방송협회 회장단) 간담회. 왼쪽부터 한용길 CBS 사장,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정훈 SBS 사장, 장해랑 EBS 사장.

이들의 염려처럼 넷플릭스는 한국 미디어 사업자들에게 재앙일까? 답은 ‘케바케’(case by case)로 어떤 사업자냐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유력 해외기업이 국내에 진출하면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논리는 타당해 보이지만 넷플릭스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넷플릭스는 한국 미디어 사업자에게 경쟁자이자 파트너다.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으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콘텐츠를 해외 190여개국에 수출하는 이점도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을 아시아 콘텐츠 수급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만큼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다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오는 7월 방영을 앞둔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제작비 400억 원을 투입한 이 작품은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고 방영과 동시에 넷플릭스로 해외에 진출하는 전략을 세우며 ‘넷플릭스발 글로벌 진출’에 나섰다.

물론 지상파의 반발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넷플릭스 콘텐츠가 위협적인 건 사실이다. 지상파가 온라인서비스 푹(POOQ)을 통해 지상파 콘텐츠를 독점 제공하는 상황에서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넘기는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넷플릭스가 LG유플러스와 제휴를 맺는 과정에서 기존 방송사와 다른 파격적인 수익배분 조건을 받는데 불만도 있다.

▲ '미스터 션샤인' 포스터.
▲ '미스터 션샤인' 포스터.

그렇다면 넷플릭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을 중심으로 ‘규제론’이 나오지만 현재 거론되는 규제는 비현실적이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방송사업자로 간주하는 규제를 도입하면 지상파의 푹, CJE&M의 티빙과 같은 국내 OTT에도 피해가 올 것이고 왓챠플레이 같은 국내 스타트업 OTT의 성장에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중국처럼 해외 사업자의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관련 김조한 미디어 칼럼니스트는 “한국은 중국과 달리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유효하지 않은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서 ‘플랫폼 전쟁’을 통해 유럽연합처럼 쿼터형 안전장치를 도입해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를 일정 비율 이상 수급하고 노출하게 해 국내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와 해외진출을 돕는 ‘공존’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상파의 반발과 관련해 김조한 칼럼니스트는 “지상파 입장에서 넷플릭스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반발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넷플릭스가 들어왔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넷플릭스를 막는다고 해도 아마존, 아이치이 등 해외 플랫폼이 올 것이다. 뉴스만 만들 것 같던 TV조선과 채널A도 콘텐츠로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자가 됐다. 지상파의 가장 큰 위협은 넷플릭스가 아니라 유튜브, 틱톡과 같은 Z세대 플랫폼”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에서 윤석암 SK브로드밴드 전무는 “해외 사업자들이 제작비를 대거 투입했을 때 국내 사업자가 견딜 수 있을까”라며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져야 한다. 콘텐츠 그 자체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기반기술을 갖고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진출은 ‘해외시장의 공습’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복잡한 문제다. 외부 상황을 탓하며 규제를 요구하기보다는 지상파 스스로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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