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당할까봐’ 역에서 쓰러진 여성 방치한 펜스룰”

지난주 중앙일보의 이 기사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경복궁역에서 한 여성이 쓰러졌으나 주변 남성이 ‘미투 당할까봐’ 우려하며 돕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전달한 기사다.

이 기사의 파급력은 컸다. 네이버에는 20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기사를 링크한 중앙일보 페이스북 게시글에는 3100여명이 좋아요, 화나요 등 반응을 보였으며 304명이 공유했다. ‘중앙일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기사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쓰러졌던 당사자와 목격자들이 중앙일보 페이스북에 댓글로 진상을 밝히면서 기사가 허위라는 점이 드러났다. 한 남학생은 “신고하고 구급대원들이 올 때까지 옆에 있다가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기사를 왜 이렇게 썼느냐”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사이트, 페이스북 등에는 비판 댓글이 쏟아졌다.

▲ 중앙일보 기사 페이스북 게시글 화면 갈무리.
▲ 중앙일보 기사 페이스북 게시글 화면 갈무리.

그러나 중앙일보는 ‘정정보도’를 하지 않고 대신 22일 반론을 담은 기사를 따로 작성했다. 중앙일보 페이스북 계정은 논란이 된 기사를 링크한 페이스북 게시글에 댓글로 “해당 사건 당사자·목격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주장이 담긴 기사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후 22일 오후 오보로 드러난 첫 기사에는 반론을 담고 기사 제목도 수정했지만 여전히 정정이나 사과는 없었다.

중앙일보는 EYE24팀을 통해 온라인 전용 기사를 쓰는데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채 온라인 이슈를 기사화하면서 논란을 빚어왔다. 주장도 반론도 모두 누리꾼의 글을 인용했을 뿐 취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9개월 전 같은 방식의 오보를 냈다. 2017년 9월30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경비원 아버지가 컵라면과 사과를 추석 선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고 중앙일보가 보도해 누리꾼이 분노했다. 포털 다음에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세상에 줄게 없어서 컵라면을 선물이라고 주냐. 기가 찬다”는 댓글에 추천 1만6911개가 붙었다.

이 보도도 사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간식으로 받은 컵라면과 사과를 추석 선물이라고 장난으로 속였던 것이라고 아들이 해명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컵라면 추석 선물’ 논란 경비원 아들 ‘장난으로 보내신 걸 속상해서 올렸다’ 해명”이라는 ‘유체이탈’기사를 올렸다. 자사보도가 오보로 밝혀졌는데도 첫 기사 본문에는 아무런 정정도 하지 않았다.

▲ 사실확인 없이 경비원 부실 추석선물 논란을 다루고 허위로 드러나자 반론 기사를 쓴 중앙일보.
▲ 사실확인 없이 경비원 부실 추석선물 논란을 다루고 허위로 드러나자 반론 기사를 쓴 중앙일보.

이처럼 언론이 유명인의 소셜미디어 계정, 출처 불명의 커뮤니티 글을 사실확인 없이 기사로 썼다 ‘오보’로 드러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일보 같은 유력 매체가 이런 보도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는 점에서 ‘가짜뉴스’보다 위험하다.

“가짜 뉴스의 폐해는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우리 사회를 불신과 냉소주의의 늪에 빠뜨리는 재앙과 다름없다. 우리는 그 해법을 팩트(사실)에서 찾는다. 팩트의 힘은 크고, 가짜를 몰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1월1일 새해 다짐을 담은 중앙일보의 사설이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온라인 기사에서는 이런 다짐은커녕 스스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있다. 오보가 드러나도 정정보도 하는 오프라인과 달리 사과나 정정 없이 넘어가고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똑같은 중앙일보의 보도다. 지금이라도 커뮤니티 글 받아쓰기를 멈춰야 한다. 비단 중앙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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