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가 불공정 보도 책임자로 꼽혀 온 이창섭 전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권고사직 조치를 내리자 사내 일각에서 “기사 편집과 지시를 하는데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재고를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발언을 오역했던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의 전보 조치를 두고도 “재기의 기회를 무자비하게 박탈해선 안 된다”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취임한 조성부 연합뉴스 신임 사장이 공약으로 내건 ‘혁신 인사 조치’에 제동을 거는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합뉴스는 지난 19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이 전 대행에 권고사직 결정을 내렸다. 공정보도 훼손 및 회사 명예 실추,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의 징계 사유로 오는 25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26일자로 해임하겠다고 밝혔다.

▲ 이창섭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 사진=연합뉴스
▲ 이창섭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 사진=연합뉴스
이 전 대행 시절 연합뉴스는 박근혜 정부·여당 편향 보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한·일 위안부 문제와 교과서 국정화 이슈에서 극우·보수 진영을 대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해 6월 이 전 대행을 ‘언론부역자’ 명단에 올렸다. 

이 전 대행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삼성 장충기 문자’였다. 그는 2015~2016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편하실 때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대 삼성그룹의 대외 업무 책임자인 사장님과 최소한 통화 한 번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같은 부산 출신이시고 스펙트럼이 넓은 훌륭한 분이시라 들었습니다. 제가 어떤 분을 돕고 있나 알고 싶고 인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권고사직 조치 이후 전국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익명 게시판에는 징계가 과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연합사원’이라는 닉네임의 한 조합원은 “그(이창섭)가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오보를 낸 것도 아니며, 삼성에 지나치게 편향된 기사를 주도, 직접 지시했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다”며 “장충기 문자 역시 주요 취재원이자 광고원과 친분을 쌓기 위해 ‘사교적’ 표현을 쓴 것이지 실제 삼성에 굽신거리려고 그런 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합원은 “저도 기자이지만 취재원과 형님 형님 그러기도 하고, 주니어 땐 선배들로부터 ‘경찰들에게 호칭은 형님’이라고 교육받기도 했다”며 “장충기 문자가 세상에 알려져서 삼성에 굴종한 언론의 대명사로 비판받아서 그렇지 이 전 국장의 경우도 의례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없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최고 징계가 혹시 자발적 개혁 작업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이나 눈치, 특정 세력의 집요한 비판 때문 아닌가”라며 “이번 중징계를 계기로 앞으로 그런 중책을 맡게 될 분들 역시 기사 편집과 지시에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이창섭 전 편집국장 대행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삼성 장충기 문자’였다. 그는 2015~2016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편하실 때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 이창섭 전 편집국장 대행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삼성 장충기 문자’였다. 그는 2015~2016년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편하실 때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 사진=MBC 스트레이트
이 조합원은 “30년 가까이 연합뉴스에 뼈를 묻은 기자의 운명이 이렇게 쉽게 낙엽처럼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원들 역시 움츠러들 것”이라며 “그는 이미 ‘과오’를 이유로 한직으로 좌천됐는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징계를 받아야 하는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 게시글에는 “해임도 부족하다”, “사태 판단과 기사 가치 평가, 시각, 리더십, 도덕성 등 모든 면에서 그(이창섭)는 0점이었다”, “부끄러운 관행을 끊어야 미래가 있다”, “당신도 기자라면서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글을 올릴 수 있는가” 등의 비판 댓글과 게시글이 올라왔지만 “당시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이 전 국장 책임으로 돌리고, 이 전 국장 해고를 당연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옹호 게시글도 올라왔다.

한편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 Too bad!”라고 쓴 것을 “긴 가스관이 북한에 형성 중이다. 유감이다”라고 잘못 보도한 이아무개 워싱턴 특파원의 전보 조치를 두고도 연합뉴스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Long gas lines forming’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사용하던 수사로, 기름을 구하기 위해 주유소 앞에 길게 줄이 섰다는 뜻이다.

이 특파원은 트럼프 트위터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2017년 9월6일) 러시아 방문을 통해 한국과 북한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사업 구상을 밝힌 부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맞서 전방위 경제 제재를 통해 돈줄 죄기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점을 비판한 것일 수 있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오역을 바탕으로 트럼프 트위터를 ‘러시아 가스관 사업 구상에 대한 문재인 정부 비판’으로 잘못 해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해당 트윗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통화 직후 올린 것이어서 파장이 컸다.

▲ 지난해 9월17일 연합뉴스 트위터 화면.
▲ 지난해 9월17일 연합뉴스 트위터 화면.
논란이 커지자 연합뉴스는 사고를 통해 “오역으로 인해 잘못된 사실과 해석이 보도됐다. 국가의 외교·안보와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과 관련된 사안에서 사실관계를 틀리게 보도해 혼선을 빚은 점을 고객사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특파원은 당시 미디어오늘에 “기사는 내 불찰이 100%”라면서도 “실수를 바로잡으려고 성실하게 노력한 언론사가 무책임하게 기사를 받아 방치하다가 뒤늦게 책임을 떠넘기는 언론사보다 비난 받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통일외교부 소속 조아무개 연합뉴스 기자는 지난 19일 노조 게시판에 “가스라인 보도 관련해 해당 특파원이 정식으로 징계도 받았다”며 “(특파원에 대한) 인사 조치 이야기가 다시 나온 계기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관련 보도에 대한 외부의 문제 제기였던 것으로 안다”고 썼다.

조 기자는 “행여라도 특정 기자나 기사에 대한 외부의 집요한 문제 제기 때문에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기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무자비하게 박탈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엄정한 기준을 세우는 일은 반드시 본인은 물론 만인이 납득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기자 게시글에는 “깊이 공감하는 바다”, “조합원 여부, 전 정권에서 잘 나갔는지 여부를 떠나 이런 식으로 소환하는 것은 까리한 거 그냥 안 쓰고 물 먹는 게 낫다는 시그널”, “밖에서 말 나오면 한방에 가는군요” 등의 공감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이창섭 전 국장의 권고사직과 워싱턴 특파원 전보에 찬성하는 분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며 “실수를 하더라도 용서하고 기회를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외부가 비판한다고 우리가 내부 구성원을 저버린다면 언젠가 우리가 똑같은 경우에 처할 경우 누가 우리를 지켜주겠느냐”고 호소했다.

이 같은 내부 여론과 관련해 연합뉴스의 한 기자는 “두 사람을 징계하면 안 된다는 사내 여론이 생겼다. 구명 운동까지 나서는 모습”이라며 “아직도 연합뉴스는 정신을 못 차렸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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