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늑장조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에 최근 ‘장자연 리스트’ 사건으로 재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아내가 포함돼 있었다.

검찰 성추행 사건 조사단은 지난 1월29일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검사의 폭로 이후 출범했다. 이 조사단에 포함된 검사 중에 ‘미투’(Me Too) 고발의 원조 격인 ‘장자연 사건’에서 강제추행 혐의를 받았던 피의자 가족이 있었다.

지난달 28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장자연 사건 중 강제추행 혐의의 재수사를 권고한 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홍종희)가 사건을 배정받아 재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009년 3월7일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남기고 숨진 신인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2008년 8월5일 자신의 소속사 대표 생일날 가라오케 술집에서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아무개(49)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당시 검·경 수사로 확보됐다. (관련기사 : 장자연 성추행 조사받던 조선일보 전직 기자 ‘의문’의 무혐의)

▲ 지난 4월26일 오전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 중인 검찰 성추행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가운데). 사진=노컷뉴스
▲ 지난 4월26일 오전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 중인 검찰 성추행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전 서울동부지검장·가운데). 사진=노컷뉴스
검찰은 최근 조씨를 4차례 불러 당시 술자리 상황을 재차 추궁한 걸로 알려졌다. 조씨는 1995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9년간 사회부·경제부·정치부 기자를 거친 후 2003년 퇴사, 2004년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2008년 사건 발생땐 국내 한 사모투자전문회사 상무이사였다. 해당 기자는 장자연 사건 당시 이미 조선일보를 퇴사한 상태였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장자연 사건 관련 검·경 수사기록에 따르면 조씨는 2009년 경찰조사에서 당시 현장에도 없었던 모 경제신문 A사장에게 성추행 혐의를 떠넘기려 했다. 조씨는 A사장이 그 술좌석에 참석해 자신과 서로 통성명하고 인사를 나눴고, 장씨가 테이블 위에서 춤 출 때 자신을 향해 넘어져 피했는데 옆에 있던 A사장이 성추행한 것처럼 거짓 진술한 것이다.

조씨를 조사한 경기 분당경찰서는 “조씨가 비교적 세상 물정에 밝은 유력 신문사 기자로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그의 처는 현직 법조인(검사)으로 일반인에 비해 법적 판단 능력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단순히 강요방조죄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면서까지 거짓 진술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조씨의 장자연씨에 대한 강제추행과 강요방조 혐의를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에서 결과가 뒤집어졌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김형준 검사)은 2009년 8월19일 장자연 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조씨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이 현직 법조인(검사)이라고 밝힌 조씨의 아내는 현재 부산지검에 있는 장아무개 검사로 검찰 성추행 사건 조사단에서 공보 업무를 맡았다. 서지현 검사와 사법연수원 33기 동기다. 장 검사는 2002년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첫 근무를 시작해 2005년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대검찰청 부공보관(검찰연구관)에 임명됐다. 이후 장자연 사건 때는 서울남부지검에 재직 중이었다.

▲ 지난 4월3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 지난 4월3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지난 4월 초 KBS는 뉴스 리포트와 인터넷 기사에서 “장자연 사건 무혐의 결정을 받은 의혹 가운데 강제추행 공소시효(10년)가 확실하게 남은 사건도 있다”고 조씨 관련 사건 의혹을 언급했다. KBS는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린 사건”이라며 “그의 부인이 검사라서 수사가 어려웠고, 소환을 요구해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지난 2월1일 구성을 완료한 검찰 성추행 사건 조사단은 장 검사에 대해 학교폭력 사건 등 여성·아동 사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이날 연합뉴스 기사에선 장 검사를 “학교폭력 사건에서 우수한 실적을 올린 검사로 여성·아동 사건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가 높은 검사로 꼽힌다”며 “제일기획 광고기획자 출신으로, 지난해 서울대에서 '북한의 경제개발구법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통일법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의 내막을 아는 검찰 내부에선 장자연씨 강제추행 혐의로 재수사를 앞둔 피의자의 아내가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조사단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장자연 강제추행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가 본 조사에 앞서 재수사를 권고한 심각한 성폭력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이 복수의 검찰 과거사위·대검 진상조사단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장자연 사건을 검토한 대검 진상조사단은 검찰 과거사위에 보낸 보고서에서 ‘2009년 검찰이 내린 강제추행 사건 불기소 처분은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관련기사 : [단독] 검찰 과거사위, ‘장자연 사건’ 대검 보고서 축소·왜곡 논란)

검찰 과거사위는 “진상조사단의 증거관계와 진술에 대한 비교·분석이 면밀히 이뤄졌고, 수사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타당하다”면서 “검찰이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핵심 목격자의 진술을 배척한 채, 신빙성이 부족한 술자리 동석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한 것이 증거 판단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고 수사 미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기사 수정 : 7월 23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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