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치권 불법후원 혐의를 받는 황창규 KT 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에게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 검찰과 경찰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은 검찰이 금품 수수자(받은 국회의원쪽)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영장 기각사유를 제시했지만, 첫 구속영장 신청부터 ‘불구속 수사’ 지휘를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수사권 조정을 의식해 경찰 길들이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검찰은 불구속수사 하라는 게 아니라 보강수사하라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받은쪽 조사는 수사의 ABC라고도 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대장 김태현 경정) 관계자는 “경찰이 보낸 수사 지휘서에 불구속 수사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통상 첫 번째 구속영장 신청서가 갔을 때 불구속 수사 지휘가 나는 것은 흔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불구속 수사하기 바랍니다”라고 쓰여있다고 전했다. 

▲ 김태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경정)이 지난 18일 황창규 KT 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뉴스영상 갈무리
▲ 김태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경정)이 지난 18일 황창규 KT 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뉴스영상 갈무리
이 관계자는 “검찰에 사건기록이 처음 간 것이 아니고, 검사한테 여러번 갔다. 검찰은 지난 상황을 다 안다. 수수자 수사는 향후에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검사는 수수자를 이번에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휘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돈 받은 국회의원쪽 수사가 늦어진 이유를 “우리는 향후에 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답했다.

뉴스1은 20일자에 “경찰 안팎에서는 오늘 발표된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찰의 ‘몽니’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21일자 기사에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야당 의원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도 관여된 사건이라 로키(low-key·저강도)로 수사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고위관계자는 “보강하라고 한 것이다. 영장을 기각하면서 구속수사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어제 불구속 얘기가 나와 곧바로 경찰에 전화해 (언론 등에) 정확한 뜻으로 알려주라고 했다. 구속영장을 재신청하면 다시 심사하고 검토할 예정이다. 끝까지 불구속 송치하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청 차원의 사건이라서 우리가 이 사건을 꼼꼼히 지휘하지 않는다. 우리한테 수수자(국회의원) 조사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조사하라마라 하겠느냐. 압수수색 영장이 왔을 때는 그것에 대해서만 지휘하는 것이지, (수수자 조사하라고) 다른 얘기까지 하지 않는다. 정치자금법 수사에서 준 쪽 뿐 아니라 받은 쪽도 조사하는 것은 ABC에 해당한다. 조사하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배경을 보지 말고 내용을 봐달라”라며 “사법 시스템의 절차에서 우리 논거가 탄탄하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단계에서 부족하다는 의미다. 황창규이니 제대로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 대검찰청 깃발. 사진=연합뉴스
▲ 대검찰청 깃발.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사건의 정점에 있는 황창규 회장이 부인하는 상태에서 황 회장 혐의를 입증하려면 받은 쪽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앞둔 경찰 길들이기’, ‘여당 의원 눈치보기’ 아니냐는 지적에 이 검찰 관계자는 “우리가 영장 신청하라 한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해왔으니 들여다 본 것”이라며 “여당의원을 눈치보기 했다는데, 우리는 의원을 조사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눈치보기냐”고 말했다.

21일 정부가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는 “검사 또는 검찰청 직원의 범죄혐의를 경찰이 적법한 압수·수색·체포·구속 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은 ‘지체 없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도록 관련제도를 운영해 검경간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도록 한다”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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