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서울 기초자치단체장 25개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있다. 민주당 후보와 격차를 보면 살아남았다는 표현도 무색하다.

조은희 서울시 서초구청장은 이정근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재선에 성공했다. 개표 초반 조은희 구청장과 이정근 민주당 후보가 접전 양상을 보였지만 최종 결과 조 구청장 52.4%, 이 후보 41.1% 득표율이 집계돼 25,388표 차가 났다.

선거 결과로만 보면 서초구는 민주당 광풍 바람은 확실히 비껴갔다.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서초구민 2명을 만났다. 정아무개(남‧39)씨와 김아무개(남‧39)씨는 서초구에 사는 동네 친구다. 둘을 지켜본 대화 내용이다.

정씨 “이번에 누구 찍었냐”

김씨 “진짜 눈물을 머금고 조은희 찍었다. 막판 그래도 민주당 후보 찍어야지 생각했는데 손가락은 조은희로 가 있더라”

조은희 현직 구청장은 어떻게 30대 남성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좀 더 대화를 지켜봤다.

정씨 “너 그거 앉아봤어? 겨울에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게 온돌같이 따뜻해지는 의자더라고”

김씨 “그건 아냐? 횡당보도 앞 여름에 설치됐던 그늘막이 겨울엔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신한 거야. 그거 보고 소름 돋았다”

정씨와 김씨는 지난 대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 정씨는 이번 지방선거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을 찍었다.

현직 후보가 프리미엄을 갖는 건 당연하다. 자신의 행정을 홍보하면서 행정의 연속성을 위해서 재선을 시켜달라고 호소한다. 보통 유권자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 속 조은희 구청장 평가는 남달랐다.

정씨는 “굉장히 행정이 디테일하다. 서초구에 있는 쓰레기통을 본 적 있느냐. 쓰레기통부터 다르다”며 “주민의 불편한 점을 감쪽같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민을 생각하는 배려심이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씨가 말한 쓰레기통은 커피잔 모양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과 캔을 분리 수거할 수 있도록 별도로 설치했다. 거리를 지나다가 쓰레기가 나오면 처리가 곤란하고 특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곳이 없어 난처할 때가 많은데 이를 고려한 행정을 펼친 것이다.

▲ 서초구에 설치된 쓰레기통.
▲ 서초구에 설치된 쓰레기통.

SNS에선 “더위와 자외선으로부터 주민 여러분을 보호하기 위해 서초구청에서 만들었습니다. 서리풀 원두막”이라는 문구와 함께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그늘막 사진이 화제가 됐다.

생활 속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행정이 서초 구민의 마음을 흔들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서초구에 설치된 그늘막.
▲ 서초구에 설치된 그늘막.

반대로 민주당 후보의 선거 전략 실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터넷엔 “박빙 떠나 오히려 굴욕이었다는 서초 구청장 선거”라는 제목으로 조은희 구청장과 이정근 민주당 후보의 선거 공보물을 비교하는 게시물이 올라와 공감을 얻고 있다.

조은희 구청장의 공보물 헤드 카피는 “초보운전자를 믿습니까? 경험과 실력을 믿습니까? 조은희, 검증된 구청장입니다”이다. 현직에서 자신이 이뤘던 정책 성과를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서초구의 꼴찌 분야를 1위로 만들었다는 문구는 자화자찬으로 해석될 수 있어도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민선 5기 꼴찌였던 서초구 공직청렴도를 끌어올렸고 꼴찌 수준이었던 국공립 어린이집 갯수를 2배 이상 늘렸다. 아이 엄마의 강점이 드러나는 공약도 보인다. 조 구청장은 구 산하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기와 어린이집, 학교에 라돈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서초구 최대 쟁점인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문제도 시민 참여를 바탕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의견을 수렴했다.

▲ 조은희 서초구청장 선거 공보물.
▲ 조은희 서초구청장 선거 공보물.

반면 이정근 민주당 후보의 공보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키워드로 구성했다.

이 후보는 “대한민국은 문재인, 서초는 대통령과 함께하는 이정근”이라는 헤드 카피를 내걸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는 글을 실었다. 이 후보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담쟁이포럼과 시민캠프에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후보 중앙선대위에 이르기까지 문재인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고 강조했다.

공보물엔 “한반도 전쟁의 위기를, 평화와 경제번영의 길로 바꾸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혼신의 힘을 다한 나라 사랑, 이정근 서초구청장 후보가 함께 한다”며 서초구 남북경제교류협력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서초-평양을 잇는 고속도로를 연결하고 서초에서 유럽까지, 대륙을 달리는 청년세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아무개씨는 “이 후보의 공보물을 보면 남북평화모드도 좋지만 너무 그것에 편승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욱 조은희 구청장과 비교가 된다”고 평했다.

▲ 이정근 민주당 후보의 선거 공보물
▲ 이정근 민주당 후보의 선거 공보물

조은희 구청장이 “공약이행 1등과 청렴도 꼴지를 1등으로 바꾼 사람이 누구냐? 행정 경험이 없는 초보운전자에게 서초를 맡길 수는 없다”고 말할 때 이정근 후보는 “고인 물은 썩는다. 서초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서울시장 등 힘 있는 여당만이 진정한 서초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서초구는 지난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 제도가 도입된 후 민주자유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까지 보수정당 소속 후보가 단 한번도 낙선한 적이 없는 곳이다. 보수의 아성과 같은 곳이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위협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초구민은 조은희 청장을 택했다. 현직 구청장의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해 주민생활 밀착 행정을 펼치고 홍보한 점, 소속 당 보다는 개인 능력을 부각시킨 점, 상대방 후보의 전략 실패 등이 겹쳐 승리했다는 분석이다.

조 구청장은 기자 출신이다. 영남일보와 경향신문에서 일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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