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차 초등학교 스포츠강사다. 일은 상시·지속업무지만 우리는 비정규직이다. 2013년까진 10개월, 2017년까진 11개월 단위로 계약했다. 매년 20통 넘는 이력서를 들고 학교를 돌아다녔다. 임금은 단 두 번 올랐다. 총 12만 원이다. 다른 무기계약직이 받는 급식비, 교통비, 명절비 일절 못 받다가 갑자기 올해부터 받았다. 무기계약직 전환 탈락시키면서 교육부가 정했다.”(정동창 스포츠강사)

“‘이번엔 선생님이 기간제, 선생님이 방과후강사 하실래요?’ 경북의 한 학교가 유치원 방과후강사, 기간제교사 비정규직 둘을 데려다 놓고 했던 말이다. 방과후강사는 ‘전담사’로 바뀌며 무기계약직이 됐지만 기간제교사는 올해 탈락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우리는 왜 안되느냐’ 기간제교사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화 실상이다.”(배지현 유치원방과후전담사)

“14년차 급식실 조리사다. 지난해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1명이 폐암, 1명은 뇌출혈로 쓰러졌다. 공조기·환풍기가 1년 동안 고장 나있었다. 1년 전 수리 요청을 한 것이었다. 학교는 노동자가 쓰러지는 횟수가 늘어나니 그제야 공조기를 고쳐줬다. 폐암 진단받은 조리실무사는 지난 5월에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해달라’ 학교 비정규직들이 요청해왔지만 교육청은 예산·인력이 부족하단다.”(박화자 조리사)

▲ 학교 급식 노동자 근무 사진.
▲ 학교 급식 노동자 근무 사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오는 30일 ‘학교비정규직 총궐기대회’ 개최를 앞두고 21일 오전 학교비정규직노조(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사무실에서 현장 사례발표 간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약속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와 ‘정규직의 80% 공정임금제’ 공약이 실패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나와서 노동자들과 담판을 지어라”고 주장했다.

스포츠강사는 무기계약직 전환 심사에서 탈락한 대표적인 학교 비정규직 직군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학교 체육 활성화’ 일환으로 채용돼 현재 1900여 명이 있다. 이들은 지난 11년 간 10~12개월 단위로 고용됐다. 매년 재계약 방식으로 고용 불안이 심각하다. 학교장과 갑을 관계라서 교장 ‘대리운전’을 한 강사도 있다.

학생들은 이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른다. 상당수는 사범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거나 교육자격증을 보유했다. 학생·학부모·교사 만족도도 높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학생, 학부모, 교사 평균 80% 이상이 매우 만족을 보였다. 이들은 이번 공공부문 정규직화 과정에서 무기계약직이 되지 못했다. 학교 기간제 비정규직 8만4132명 중 무기직 전환 인원은 9507명(11.3%)이다.

11년차 스포츠강사 정동창씨는 “각종 연수도 받으면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낮은 임금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해왔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있지만 스포츠강사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8년 152만원을 받았고 2018년 170여 만원을 받았다. 지난 해까진 급식비·교통비·맞춤형복지비 등도 받지 못했다. 정씨는 발표 중 목이 메어 수차례 말을 삼켰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6월21일 오전 학교비정규직노조 사무실에서 현장 사례 발표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6월21일 오전 학교비정규직노조 사무실에서 현장 사례 발표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폐기’ 주장도 나왔다. 학교 비정규직 직군은 대표적인 최저임금 노동자다.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맞춰 2020년 월급 228만원이 될 것으로 보였으나 이번 산입범위 확대로 2020년에 6만원, 2024년엔 19만 원이 감소했다. 곽승용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은 “정부는 ‘기대임금’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최저임금 1만원은 모든 대통령 후보가 약속한 공약이지 기대가 아니”라며 “약속을 파기한 거다. 어려운 말로 산입범위라 쓰는데 결국 임금을 깎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라 비판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정임금제’ 공약에도 의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80%로 만드는 공정임금제를 약속했다. 동시에 고용노동부는 ‘표준임금제’를 설계해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에게 적용할 계획을 세웠다.

곽 정책실장은 “표준임금제 골자는 근속이 아무리 오래돼도 1년차에 비해 16~29만원만 인상되게 하려는 것”이라며 “표준임금제가 도입되면 정규직 임금의 80%는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은 40만 명 가량이다. 곽 실장은 “정부 보고서엔 이들이 ‘저숙련’ 노동자기에 근속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게 불공정하다는 취지로 적혀 있다”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사용을 중단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7년차 초등돌봄전담사 안종화씨는 “교육부·교육청이 공정한 업무계획을 수립하고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시·도별로 제각각인 돌봄전담사 임금보수표를 단일화하거나 ‘1교실 20명 정원’ 등의 근로조건을 명확히 하는 것 등이다.

안씨는 “‘애들 보는 일’ 정도로만 치부한다. 돌봄노동의 가치와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니 전담사를 주먹구구식으로 쓸 줄만 안다”고 밝혔다. 충북 충주의 한 돌봄전담사는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75명의 학생을 받은 적이 있다. 중간에 돌봄교실이 끝나는 학생을 고려해 시간 당 학생수가 20명 미만이니 같은 교실에 학생을 계속 배치한 것이다.

박금자 학교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학교 비정규직들은 다 소정 자격을 갖고 있거나 고등교육 받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정부는 단지 단시간 일자리, 저숙련 일자리로 보고 있다”며 “급식노동자에게 ‘밥 하는 동네 아줌마’라 했던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과 정부가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 정부는 이런 꼼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안 폐기 △정규직임금 80% 공약 이행 △비정규직 고용 완전 철폐 등을 요구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오는 30일 열릴 ‘학교 비정규직노동자 총궐기대회’에 비정규직 노동자 2만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라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