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한다. 거리를 걷다 고양이와 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손길을 내민다. 자전거 타기는 취미를 넘어 덕후 수준이다. 그의 블로그를 보면 정치는 낄 틈이 없어 보인다.

차윤주. 무소속이면서 여성. 그는 6·13 지방선거 구의원에 도전했다. “젊은 건강한 정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선거 포스터 사진은 로드 사이클 저지를 입고 찍었다. 다른 후보들이 약력에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단체의 경력을 적을 때 그는 자전거 아마추어 대회 기록을 적었다. 자신의 힘으로 이뤘던 노력과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다. 다른 후보가 늙고 건강하지 못한 정치를 한다는 뜻도 알리고 싶었다.

차씨는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자신문을 거쳐 통신사 뉴스1에서 청와대와 국회를 출입했다. 지난 3월 퇴직했다. 그의 직장 동료인 ㄱ씨는 차윤주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윤주가 국회 출입이었는데 쫄쫄이를 입고 자전거 클릿 신발을 신고 딸깍딸깍 국회 기자실로 들어오는데 이 친구는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통신사 기자는 아침 출근부터 정해져 있지 않는 퇴근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속보를 처리하고 기사를 써내야 한다. ㄱ씨는 바쁜 생활 와중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차씨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차윤주씨의 선거 출마도 자전거 타기와 닮았다. 생활 속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처럼 생활 속 작은 정치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차윤주는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구프)라는 이름의 그룹과 함께 했다. 생활 속 정치개혁을 지향하는 구프의 일원과 함께 선거를 기획하고 출마했다.

차윤주씨는 출마선언에서 첫 화두로 마포구 예산을 꺼내들었다. 올해 마포구청 예산은 5600억 원. 차씨는 “이 많은 돈은 다 어디에 쓰일까요”라고 물으며 “유령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기에 주민 보다 국회의원을 섬기는 게 먼저였던 이들이 세금 쓰이는 곳을 감시하는 커녕,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바빴던 것은 아닐까요?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차윤주, 유능한 12년차 기자였던 차윤주가 여러분의 세금을 대신 감시해 드리겠다”고 밝혔다.

차씨가 내걸었던 공약에는 “외유성 해외 의정연수 대신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열겠다”라는 내용이 있다. 차씨는 “의정 연수나 업무추진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것이 정치 불신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 같았다. 현지에서 시스템을 배운다고 하는데 꼭 그 효과를 의정연수로 이룰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의정연수를 다녀오면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인터넷에서 긁어올 수 있는 한 장 짜리 내용이 들어가 있다. 세금으로 놀다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소속 그리고 여성. 두 가지는 한국정치에서 굴레에 가까운 단어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다. 광역시 단체장 17명 당선자 중 여성은 없다. 물론 무소속 당선자도 없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나와 구의원에 당선된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선거운동하면서 차씨도 무소속과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유권자들이 느끼는 거부감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젊은 여성을 정치 주체로 보지 않아요. 대부분 50대 남성을 떠올리죠. 많은 유권자한테 들은 얘기가 ‘본인이 후보세요’, ‘후보는 어디있나요’라는 말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무소속은 안된다. 어떻게든 당을 타고 나가야 한다. 당선이 되더라도 무슨 힘을 쓰겠나’라고 합니다. 무소속 편견이 상당했죠”

차씨가 퇴직하고 출마를 결심한 뒤 가족에게 알렸을 때 돌아온 말도 “시집가서 애나 낳아라”는 말이었다.

▲ 차윤주씨의 선거 포스터.
▲ 차윤주씨의 선거 포스터.

차씨는 2등까지 당선이 되는 마포구‘나’ 선거구에서 2위와 불과 302표차로 아쉽게 낙선했다. 선거는 결과로만 기억된다. 실패라면 실패지만 양당제에서 그의 득표율은 분명 파열음을 냈다. 득표 요인을 분석하자면 민주당 적극 지지층이 아닌 젊은 세대들의 표를 가져왔다.

차씨는 “낙선했지만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후보자들이 남긴 메시지는 유효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차씨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관심 그 자체였다. 거대 양당 속에 유권자의 무관심이 더해지면서 지방선거가 깜깜이 선거가 되고 있었다. 마포구나 선거구에서 두 명의 구의원을 뽑는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유권자도 많았다.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누리고 유권자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은 정치를 하다보니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의 공약 중엔 “구립 어린이집 10% 증설”, “아이들 주인공이 되는 놀이터”, “1인 가구 지원 기본조례 제정” 등이 있다. 차씨는 “제 나이가 30대 중후반이고 제 주변 또래 친구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공히 얘기하는 고충들”이라며 “구립 어린이집 증설은 모든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씨 역시 국회를 출입하면서 여의도 중앙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차씨는 “정치부 기자 시절 정치에 혐오가 극에 달했다. 매일 대결과 혐오의 말이 난무하고 기사에 드러나지 않는 권모술수 현장을 봤다. 의원이 낸 법안이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이긴 한데 우리나라 정치부 기자는 정쟁에만 관심을 갖고 취재했고 저 역시 비슷했다”고 털어놨다.

차씨는 일명 ‘박근혜 마크맨’이었다. 박근혜 후보를 2년 정도 마크했고 대선이 끝나고 청와대도 출입했다. 차씨는 “박근혜라는 사람을 관찰했던 셈인데 무비판적으로 마크맨이라고 해서 줄줄 기사만 썼다. 5년이 지나고 시민이 대통령을 끌어내는 것을 보면서 기자로서 역할이 맞는 거였나 생각했고 일종의 부채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 차윤주씨의 선거 포스터
▲ 차윤주씨의 선거 포스터

차씨는 선거가 끝나고 낙선 인사를 다니고 있다.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는 차씨에게 벌써부터 관변단체에 이름을 걸쳐놔야 다음에 당선된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차씨는 “4년 후를 내다봐서 동네에서 스펙을 쌓는 것은 내가 이번 선거에서 원했던 출마 취지에도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차씨의 도전은 계속될까. 그는 “이번 선거가 완전한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4년 뒤에 나오면 1등이라고 하신 분들도 있다. 4년 뒤 정치판에 있을지 잘 모르겠다. 혼자 사는 1인가구 비혼 여성인데 생계를 책임져줄 사람이 없으니 일단 직업을 구해야 한다. 우선 자전거를 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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