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1차 집회는 애초에 취재계획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집회 규모가 작아보였고 매체 특성상 영어권 독자를 주 대상으로 하기에, 잠깐 들려 사진 몇 장 찍고 단신보도할 계획이 다였다. 그러나 도착해서 본 건 1시간 만에 4천 명 이상 모인 여성들이었다. ‘이건 취재감이다’ 판단이 서 카메라를 들었고 사진은 온라인 상으로 폭발적으로 공유됐다. 당일 현장을 지킨 매체가 적었기에 가능했다.

그 날 집회 구석구석을 담은 영상 역시 국경을 가리지 않고 퍼져 나갔는데, 이 영상에는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미리 주최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보도 지침에 따라 시위 참가자가 소위 ‘신상털이’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끔 촬영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영상 중간에 실수로 한 참가자의 얼굴이 블러 처리 없이 나갔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주최 측으로부터 받았다. 1초 남짓의 원경 촬영이었고 이미 해당 영상이 상당히 많이 공유된 지라 굳이 영상을 완전 삭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회의에서는 혹시 모를 신변 위협 문제를 생각해서 얼른 영상을 삭제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게 다시 편집한 영상이 재업로드됐다. 보도팀은 당일 온라인에 올라온 염산 테러 협박글과 신상이 노출된 집회 참가 여성이 받을 각종 폭력 등을 설명하는 글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함께 게시했다. 독자들은 오히려 응원해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인권에 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맥락을 알게 됐다는 반응도 보였다. 내게도 배움의 계기가 됐다.

현장 분위기는 참가자들의 분노와 한이 맺혔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이 외침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기에 보도팀은 취재 인력을 늘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2차 집회를 찾았다. 주최 측 추산 2만2천 명, 경찰 추산 1만5천 명이 모인 날이다.

집회는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이 과정에서 웃픈 신조어도 탄생했다. 바로 몰카의 영문 표기인 ‘molka’다. 원 명칭 ‘spy cam porn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된 포르노)’만으로는 한국의 불법 촬영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기 힘들어서 만들어졌다.

국내선 흔히 알고 있을 ‘화장실 몰카’, ‘탈의실 몰카’ 개념 자체를 국외 독자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몰카에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 반응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대다수 반응은 ‘충격적이다’, ‘상상도 못했다’, ‘역겹다’ 정도다. 때로는 불법 촬영물을 당사자 간 합의 하에 촬영 및 유통되는 ‘아마추어 포르노’로 오인하는 독자들도 있는데 이는 애초 화장실 촬영본이 왜 소비되는지 이해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방문한다면 꼭 이 문제에 대한 기사를 찾아 보고 다시 생각하라는 이야기 역시 각종 SNS를 떠다니고 있다.

▲ 도유진 코리아 엑스포제 영상 감독
▲ 도유진 코리아 엑스포제 영상 감독
불법 촬영 반대 집회는 어느덧 2차를 마치고 7월7일 3차 집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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