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관계자’는 누구일까. 청와대를 예로 들면 대개 ‘고위관계자’는 차관급 수석비서관, ‘핵심관계자’는 1급 대변인 또는 비서관, ‘관계자’는 행정관이다. 취재원 신변을 밝힐 수 없어 불가피하다지만 ‘관계자’를 남발해 신뢰하기 어려운 보도를 쏟아내는 것도 현실이다. 익명의 관계자를 이유로 오보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지난 17일 첫 방송한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는 신뢰 잃은 언론에 존재 가치를 물었다. 지난 4월 KBS ‘혁신프로젝트 – 끝까지 깐다’가 시청자 비판과 마주한 반성의 시작이었다면, J는 언론이 제대로 서기 위한 ‘가짜뉴스 퇴치 프로젝트’를 표방한다. 진행자 정세진 KBS 아나운서는 “앞으로 언론이 계속 존재할 가치가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라는 말로 프로그램을 열었다.

KBS가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건 2년 만, 토크쇼 형태는 처음이다. J는 KBS 앵커와 기자의 딱딱한 코멘트 대신 각자 개성을 가진 출연자들의 친숙한 말투로 언론의 잘못을 지적한다. 최강욱 변호사가 언론계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면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연구 자료를 인용하며 힘을 더한다. 안톤 숄츠 독일 ARD 기자는 한국 공영방송의 기형적 문제를 지적하고, 방송인 최욱씨는 대중의 시각에서 직설을 날린다.

▲ 지난 17일 첫방송한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 진행자와 출연자들. 사진=방송 캡처.
▲ 지난 17일 첫방송한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 진행자와 출연자들. 사진=방송 캡처.

KBS 기자들이 오보를 직접 취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YTN의 ‘김경수 압수수색 오보’를 취재한 송수진 기자는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오보 경위를 설명했다. YTN 자회사 간부가 국회 익명 취재원으로부터 ‘드루킹’ 사건 관련 김 의원실 압수수색 얘기를 듣고 YTN 정치부 기자에게 전한 뒤 사회부 기자, 국회 촬영 기자 등으로 사실 관계 확인이 미뤄졌다. 결국 검·경에 확인 전화 한 번 하지 않은 속보가 전해졌다.

YTN 오보 경위는 이미 여러 매체로 전해졌지만 지상파 비평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 일은 유의미하다. 오보 관련자들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지 못해 더욱 아쉽다. 송 기자는 지난 7일 YTN을 찾아가 오보 관련자들 입장을 들으러 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뒤 YTN은 J 제작진에게 관련 촬영본을 방송에 사용하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공문을 보냈다. J 제작진은 오보 관련자들의 취재 거부 장면이 담긴 영상을 사용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 YTN, 자사 오보 취재한 KBS 기자에 “방송하면 민·형사”]

반론 기회를 줬으나 이를 외면했다는 사실은 행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기사 한 줄을 써도 ‘바이라인’을 다는 기자들이 본인이 관여한 보도 앞에 떳떳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날 YTN 사례를 제외하고는 문제 보도 당사자들 입장을 전하거나, 이를 들으려 시도한 대목이 없었다.

▲ 지난 17일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 한 장면. YTN '김경수 압수수색 오보' 경위를 설명하는 송수진 KBS 기자(왼쪽)과 방송인 최욱. 사진=방송 캡처.
▲ 지난 17일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 한 장면. YTN '김경수 압수수색 오보' 경위를 설명하는 송수진 KBS 기자(왼쪽)과 방송인 최욱. 사진=방송 캡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을 조선일보·TV조선 대변인격으로 활용한 ‘이슈J’ 코너도 마찬가지. 이 코너에서는 조선일보·TV조선의 북한 관련 보도와 이에 대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논평을 다뤘다.

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韓美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 (5월28일·조선일보)” △“풍계리 갱도 폭파 안 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 (5월24일·TV조선)” △“北, 美 언론에 ‘풍계리 폭파’ 취재비 1만달러 요구 (5월19일·TV조선)” 보도 등에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풍계리 연막탄 보도는 오보로 판명됐고, 1만 달러 보도와 국정원 평양행 보도는 오보 논란이 불거졌다. 조선일보 출신 강효상 의원은 “(이 보도들은) 지금은 오보이지만 나중에는 오보가 아닐 수 있다”며 옹호하는 한편 청와대 논평을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강 의원이야말로 조선일보 주필 해임을 요구한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강 의원은 지난 31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께 보내는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양 주필 칼럼을 놓고 “한겨레 신문을 보고 있는지 깜짝 놀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협박에 굴복한 조선일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사내 게시판에선 “강 의원의 국장 시절 (갑질)이 떠올라 몸서리쳤다”는 반응을 불렀다.

▲ 17일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방송 캡처.
▲ 17일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방송 캡처.

논란 당사자가 언론 앞에 해명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강효상 의원도 대중 앞에 본인 주장을 펼칠 기회가 반가웠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코너에서는 조선일보·TV조선의 보도와 청와대 논평 중 진실 여부를 가릴 단서, 강 의원의 입장문이 지닌 문제의 심각성 등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다. 훈훈한 분위기는 지루함과 함께 아픈 지적이 있어야 할 자리도 떨쳐냈다.

무엇보다 KBS 자기 비판이 없어 아쉬웠다. 예컨대 ‘드루킹’ 보도에선 KBS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지난 4월 KBS 뉴스9의 “드루킹 ‘댓글 조작’ 수사 3대 핵심 쟁점은?”리포트, 이른바 ‘경인선’ 보도를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로 전체회의에 건의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J는) 다른 언론사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닌 KBS 스스로 잘 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J 카메라가 KBS 내부 문제도 투명하게 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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