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얘기는 재밌다. 특히 ‘썸’타는 얘기는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빨리 고백해라’ ‘마음을 편지에 담아봐라’ 주변에선 그들 고민에 다들 한마디씩 보탤 수 있다. 연인으로 이어질지 내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요소를 두루 가진 채널A 예능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2가 지난 15일 마지막 방송을 했다. 프로그램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오르며 마니아층까지 만들었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트시그널은 일반인 여자와 남자 총 8명이 출연한다. 과거 SBS에서 방송한 ‘짝’처럼 외진 공간에 일주일 간 가둬놓은 채 짝짓기를 요청하진 않는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마치고 ‘시그널 하우스’에서 저녁이나 주말에 동거한다.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해먹고, 청소를 한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처럼 직장의 고민을 집으로 끌어 오기도 하고 맘에 드는 사람을 위해 휴가를 내기도 한다.

▲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 입주자 8인.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 입주자 8인.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짝’과 같이 고립된 공간에 있으면 ‘일상’이 사라진다. 자연스레 상대의 조건을 비중 있게 다루게 된다. 하트시그널은 ‘짝’을 한 차원 현실로 당겼다. 요리를 잘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매력요소다. 스펙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난 설 연휴에 방송한 SBS 파일럿 프로그램 ‘로맨스 패키지’와 비교해봐도 하트시그널이 더 리얼리티를 살렸다. ‘로맨스 패키지’는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콘셉트로 10명의 여성과 남성이 출연한다. 호텔 방에서 여성과 남성이 대화하는 장면은 낭만적이어야 할 ‘썸’타기와 거리가 멀다. 다양한 데이트가 불가능할뿐더러 호텔은 이미 연인이 된 이들의 은밀한 공간의 성격이 더 강하다.

하트시그널에서 입주자들은 ‘썸’을 탄다. 가장 간질간질한 과정이 썸인 건 사실이다. 연애과정의 복잡한 우여곡절을 생략하는 효과도 있다. 입주자들은 4주 합숙기간 중 고백을 해선 안 된다. 상대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다. ‘시그널 하우스’ 입소 첫날엔 나이·직업 등의 정보를 서로 공개할 수 없다. 첫인상만 가지고 하루를 보낸다. 이들은 매일 밤 12시 익명으로 그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를 받은 출연자도 이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사랑의 화살표’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는 게 또 하나의 재미다.

하트시그널은 액자식 구성이다. ‘시그널 하우스’ 입주자들의 영상을 보면서 가수 윤종신·작사가 김이나·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양재웅 등 6명이 ‘판정단’으로 스튜디오에서 소위 ‘뒷담화’를 즐긴다. 8명의 연애스토리를 주제로 한 공론장이다. 시청자들이 참여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기존 연애 예능과 차별점이다. 각자의 경험과 온갖 연애 기술이 쏟아진다.

▲ 채널A 하트시그널 판정단이 입주자들의 스토리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 채널A 하트시그널 판정단이 입주자들의 스토리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특히 양재웅의 분석은 이들의 ‘뒷담화’를 과학의 경지로 올렸다. 신경이 적어 접촉이 둔한 상대의 팔꿈치를 잡아 당겨 부담 없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팔꿈치 효과’,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는 ‘미러링 효과’, 배꼽의 방향을 보면 누구에게 호감이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는 ‘배꼽 법칙’ 등은 시즌1~2를 지나며 출연자들 관계를 유추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남을 뒷담화 할 때 시청자들이 느끼는 일종의 죄책감을 없애는 효과도 있다.

판정단은 매회 입주자들이 누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호감을 표하는지 추론한다. 하트시그널 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을 ‘러브라인 추리게임’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시청자들도 판정단과 함께 입주자들의 에피소드를 보고 호감의 향방을 예상한다. 판정단이 입주자들의 행동과 말을 곱씹으며 추론할 때 자연스레 시청자는 프로그램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지난해 하트시그널 시즌1을 마치고 시즌2 입주자를 모집하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시즌1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엄청난 SNS 팔로워를 자랑한다. 출연자 장천 변호사는 개인 사무실을 내 강연요청을 받기도 하고 출연자 배윤경은 종종 TV에 등장했다. 특히 출연자 강성욱은 지상파 드라마에도 진출했다. 자연스레 시즌2가 ‘스타’를 꿈꾸는 사람으로 채워질 거란 분석이 나왔다.

시청자들이 ‘대리연애’를 하려면 연예인의 모습을 최대한 배제한 일반인이어야 한다. 앞서 다른 예능들이 하트시그널과 비교해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는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작진 입장에선 출연진을 통제해야 원하는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지만 통제장치가 많을수록 시청자들은 마음을 주기 어려워진다.

▲ 하트시그널 시즌2 출연자 임현주(왼쪽)와 송다은.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 하트시그널 시즌2 출연자 임현주(왼쪽)와 송다은.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하트시그널 시즌2는 이런 우려를 충분히 고려한 것 같다. 닐슨코리아의 집계를 보면 지난 2017년 6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시즌 1의 전국 시청률이 0.5%(2회)~2%(12회)였고 지난 3월 시작한 시즌2는 0.7%(2회)~2.7%(13회)로 소폭 상승했다. ‘대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지만 아직 다른 예능에 비하면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리얼리티가 필요하지만 연애 예능의 본질이 ‘대리연애’인만큼 판타지도 녹여야 한다. 하트시그널 출연진은 모델, 뮤지컬 배우,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즌1 출연자 서주원과 시즌2 출연자 김현우는 화려한 음식솜씨로 호감을 샀다. 방송 곳곳에서 먹방과 쿡방이 등장한다. 겉모습은 리얼리티 예능이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처럼 공감한다.

반면 tvN ‘선다방’은 일반인들의 맞선을 엿보는 방식이지만 좀 딱딱한 분위기다. 하트시그널에 비해 출연자의 스타성도 떨어진다. 판타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으니 정말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된다. 분홍빛을 상상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 하트시그널 시즌2 출연자 정재호.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 하트시그널 시즌2 출연자 정재호. 사진=하트시그널 화면 갈무리

하트시그널 제작진의 연출과 기획도 돋보였다. 시즌1~2를 거치며 순정파, 리액션이 좋은 사람, 저돌적인 스타일 등 캐릭터가 겹치지 않도록 출연진을 섭외했다. 나의 연애 혹은 주변 연애를 대입할 여지가 커진다. 여성과 남성이 성역할에 갇히지 않고 식사준비, 설거지, 데이트 신청을 번갈아가며 한 것도 평가할만하다. 예능에서 자주 인신공격, 혐오표현, 차별발언 등이 문제가 됐지만 상대적으로 하트시그널은 이런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썸’이 무르익을 때 자칫 시청자를 버려둔 채 출연자들의 감정만 깊어지는 경우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트시그널은 시청자들이 오글거릴만하면 대사를 끊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잔잔한 음악으로 설레는 감정을 유지시킨다.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교집합을 잘 유지한 게 성공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벌써부터 시즌3 요청 여론이 있다. 시즌2 끝부분에서 반전이 너무 극적으로 나타나면서 제작진의 개입이 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시즌3든 향후 다른 연애 예능이든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적절한 조합이 깨지면 시청자들이 떠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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