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의 방송 산별교섭이 시작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KBS·MBC·SBS·EBS 등 지상파 방송 4사가 12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산별교섭을 시작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 화두가 됐고 언론노조가 제안해 최초로 방송사 산별교섭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산별교섭을 위해 만든 ‘분과’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교섭 대상이 되는 ‘제작환경개선분과’ ‘방송공정성분과’ 외에 ‘방송산업진흥분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방송산업진흥분과’는 ‘지상파 공공성 강화’와 ‘비대칭 규제 개선’ 등을 논의하게 된다.

‘방송산업진흥분과’는 근로기준법 개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비대칭 규제’는 지상파가 유료방송에 비해 차별 받는 규제를 말한다. 지상파가 오랫동안 개선을 요구한 비대칭 규제는 ‘중간광고’다. 이 테이블에서 지상파 노사는 중간광고 도입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 지상파 3사 사옥.
▲ 지상파 3사 사옥.

유감스럽다. 지상파 공공성을 강조해온 지상파 노조들이 ‘산업 진흥’이라는 이름의 분과를 만들고 규제완화를 논의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개혁을 강조한 공영방송 사장단에게도 유감스럽긴 마찬가지다.   

물론, 이번 교섭은 ‘공공성 강화’라는 조건이 함께 붙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중간광고 논의와는 다르다는 게 지상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비대칭 규제 개선 자체가 테이블에 올라간 상황에서 제대로 된 공공성 강화 방안이 나올지 우려스럽다.

지상파 중간광고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중간광고는 시청자에게 피해를 야기하기 때문에 동의부터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방송사 스스로 신뢰회복, 조직혁신, 간접광고 협찬 문제 등을 개선하면서 설득해야 한다. 테이블을 만든 다음 안을 만들 게 아니라 변화부터 한 다음 테이블을 만드는 게 순서다.

지난 정부 때 미디어오늘은 공공재인 전파를 쓰는 지상파가 신뢰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중간광고 논의가 이뤄지는 점을 비판했다. 지금은 다를까? 내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들이 있겠지만 아직 시청자들은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지적 참견 시점’ 논란에서 MBC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화를 키웠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밝혔으나 뒤에서 최승호 사장은 여당 심의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징계가 과하다”고 항의했다. 그 논란을 겪고도 ‘프로그램 폐지’를 단행하지 않았다. 제천 화재참사 당시 소방관들의 대응을 비판한 자신들의 보도가 ‘잘못됐다’며 사과한 MBC는 이제 와서 방통심의위에 재심을 청구하고 “당시 사과는 119소방복지사업단의 집요한 SNS공격 때문이며 한시라도 빨리 여론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 지난해 MBC는 제천 화재참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우왕좌왕'했다는 보도를 해 비판을 받자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MBC는 최근 말을 바꿔 "당시 사과는 119소방복지사업단의 SNS 공격 때문"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전원 합의로 '기각'됐다.
▲ 지난해 MBC는 제천 화재참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우왕좌왕'했다는 보도를 해 비판을 받자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MBC는 최근 말을 바꿔 "당시 사과는 119소방복지사업단의 SNS 공격 때문"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전원 합의로 '기각'됐다.

KBS는 영상 순서를 뒤바꿔 김정숙 여사가 대선 경선 당시 경인선을 만나는 것처럼 왜곡해 중징계가 예고된 상태다. KBS 연예가중계에서는 연예인 성추행 논란을 다루며 김대중 전 대통령 실루엣을 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루엣이 삽입된 일베 이미지를 썼다.

중간광고를 도입하는 대신 프로그램 내부에 침투한 광고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의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PD연합회는 과도한 협찬과 간접광고를 줄이는 방안으로 중간광고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간광고 도입 후에도 지상파 재원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광고 몫을 줄이는 방식의 개선이 가능할까?

이미 지상파 규제 완화는 이어지고 있다. 2015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해 규제를 완화했고 2017년 지상파3사는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파고 든 ‘꼼수 중간광고’를 만들고 현재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지상파는 돈 더 벌어서 공공성을 강화했을까? 광고 시장이 생각보다 더 빨리 위축됐다며 더욱 더 강력한 규제완화를 요구했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규제 완화에 기대는 경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방송협회 추산에 따르면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으로 연 1300억 원 가량의 지상파 광고매출이 늘어난다. SBS 연 광고매출액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로 작지 않다. 그러나 매체별 광고시장 점유율 추이를 보면 2006년 지상파는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75.8%를 차지했으나 2015년 55%까지 떨어졌다. 방송산업 구조가 바뀌는 상황에서 규제완화는 몇년 동안 숨통을 트이게 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재정적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중간광고 도입이라는 해법부터 도출된 것은 절차상·논리상 문제가 있다. 방송사들 내부의 노력과 실천이 충분하지 않았다.” 2007년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성명이다. 11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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