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촬영 현장을 즐거운 직장으로 만들겠다.” 지난달 첫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 첫 대본 리딩 현장에서 노도철 MBC PD는 ‘기본에 충실한 현장, 즐거운 현장’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현장 스태프는 즐거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한빛미디어노동자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가 미디어신문고를 통해 제보 받은 검법남녀 촬영일지를 보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약 나흘 동안 스태프들에게는 하루 평균 3.5시간의 수면 시간이 주어졌다. 숙소에 도착한 때부터 촬영현장 가는 버스 출발시점까지의 시간이라 실제 수면시간은 이보다 적다.

퇴근 당일 출근, 다음날 퇴근하는 일정이 반복되는 동안 아침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다. 탁종렬 한빛센터 소장은 “제작사 측에서는 식대가 급여에 포함됐다고 주장하지만 중요한 것은 식사할 최소한의 시간도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 촬영일지. 그래픽=이우림 기자
▲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 촬영일지. 그래픽=이우림 기자

본인을 검법남녀 스태프 지인이라고 밝힌 제보자는 “제발 검법남녀 촬영장에 조사 좀 나가줬으면 한다. 버스 이동 중에 자고, 현장에서 조는 게 쉬는 건가. 실제 스태프를 고용하고 계약한 사람은 정말 인권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인가 보다. 본인도 집에 못 가고 3일만 밤 새워보면 알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제보자는 “내 친구는 프리랜서라 신고했다는 게 알려지면 제작사나 방송사 측에서 (본인과 일하는 것을) 꺼리게 될 거라고 늘 하소연만 했다. SBS ‘시크릿마더’처럼 (제작 현장 문제) 신고자가 있는 곳이 부럽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자고 밥 안 먹고 일하는 곳이 여기 말고 또 많겠지만 그들도 하루 빨리 털어놓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한빛센터는 지난 8일 MBC에 공문을 보내 검법남녀를 비롯한 드라마 제작 환경 실태 조사와 개선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빛센터는 검법남녀의 경우 MBC 직원인 노도철 PD가 연출을 담당하고, MBC가 편성권을 가진 드라마이기에 실제 제작 책임이 MBC에 있다는 입장이다. 탁종렬 소장은 “최승호 사장 앞으로 공문을 보냈고 사장 비서실을 통해 공문이 전달됐다고 들었다. 현재까지 공식 회신은 없다”고 말했다.

MBC 관계자는 “공문을 받은 뒤 스태프들 요구사항을 반영하도록 해 달라고 제작사에 요청했다. 제작사 차원에서 스태프 휴식시간 보장 등이 가능하도록 스케줄을 조율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MBC가 일방으로 지시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며 “여러 팀과 논의가 필요해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반적 드라마 제작환경 실태조사에는 “노동시간 단축과 맞물려 진행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 SBS 주말 드라마 '시크릿마더' 포스터. 사진=SBS
▲ SBS 주말 드라마 '시크릿마더' 포스터. 사진=SBS

제작여건 개선 약속했던 SBS ‘시크릿마더’, 다시 밤샘 촬영

지난달 SBS가 제작 여건 개선을 약속했던 주말드라마 ‘시크릿마더’의 경우 최근 들어 초장시간 촬영이 재개됐다.

지난달 4일 시크릿마더 스태프의 하루 2시간 수면, 20시간 촬영 실태가 알려진 뒤 SBS는 인력 30명 충원해 휴식시간 보장 등 개선방안을 약속했다. 촬영팀은 기존 한 팀에서 A, B 두 팀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약 3주가 지난 5월27일 이후 일주일 내내 휴식시간 없는 장시간 촬영이 재개됐다. 이를 파악한 한빛센터는 SBS에 스태프들 인권침해 개선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한빛센터는 조만간 제작현장을 직접 찾아 스태프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집중행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다행은 SBS가 즉각 재발방지 약속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12일 SBS는 한빛센터에 최근 대본이 늦어지고 특정장소에서 촬영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드라마 연출자와 주 5일 이하 촬영과 충분한 휴게시간 보장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탁 소장은 “다음주 시크릿마더 제작 현장에 방문해 피케팅을 진행하거나 스태프를 위한 커피차를 보내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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