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21일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에 도착했다. ‘핑퐁 외교’로 시작한 미중 대화가 결실을 맺었다. 닉슨과 모택동, 주은래의 미중 정상회담은 우리에게도 큰 관심이었다. 이후 며칠간 우리 언론은 온통 중국에 귀 기울였다.

중앙일보는 1972년 2월28일자 4면에 ‘닉슨 수행노트’란 문패를 달고 ‘서호(西湖)엔 동원 군중도 미국산 삼나무 감상’이란 제목으로 “중공 수상 주은래와 함께 항주에 도착한 닉슨 미 대통령은 26일 항주의 명소 서호에서 2시간 반 동안 보트 놀이를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고 적었다.

조선일보는 1972년 2월22일자 3면에 ‘역사는 다시 열리다. 오늘 오후 3시 닉슨-주은래 2차 회담, 닉슨 북경의 첫날’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제목만 봐도 중국 현지에서 취재한 것처럼 보인다.

▲ 1972년 2월 베이징 도착 직후 모택동 주석을 만난 닉슨 미국 대통령
▲ 1972년 2월 베이징 도착 직후 모택동 주석을 만난 닉슨 미국 대통령
당시 신문 대부분이 마치 현장 취재한 것처럼 보도했다. 1968~1974년까지 미국 특파원이었던 고 조세형 한국일보 기자는 1976년에 낸 ‘워싱턴 특파원’에서 닉슨의 수행기자로 북경에 간 시카고 트리뷴의 미 국무부 출입기자 알도 베크만 기자에게 미리 부탁해 간접 취재해 놓고 마치 북경에서 닉슨을 동행 취재한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고 고백했다. 조세형 기자는 1974년 11월22일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포드와 브레즈네프의 미소 정상회담 때도 현장에 있던 베크만 기자와 전화 통화하는 간접 취재로 한국일보 지면을 채웠다. 조 기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엔 들어가지도 못하고 일본 도쿄에서 베크만과 통화해 기사를 썼다.

조세형 한국일보 기자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특파원을 지낸 이들 중엔 김대중 조선일보 기자, 문명자 경향신문 기자가 있다. 이후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암튼 1970년대 페이크 현지취재는 애교로 넘어가도 문제는 또 남는다. 당시 뉴욕타임즈와 UPI발 기사를 받은 동아일보는 1972년 2월24일자에 만리장성을 관광하는 닉슨을 다루면서 “영하 5.5도에도 모자도, 장갑도 끼지 않고 성 위를 거닐었다”거나 “닉슨은 날씨를 얕잡아 보기나 하듯 코트 단추를 풀었으나 재빨리 도로 끼기도 했다”고 썼다.

정상회담 의제에는 접근도 못하면서 ‘닉슨이 장갑을 꼈는지, 코트 단추를 풀었는지’만 살폈다.

2000~2012년까지 조선·동아·중앙·한겨레 4개 신문의 모든 기사를 분석한 ‘신문의 언어 사용 통계’는 우리 언론의 변치 않는 편향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12년간 4개 일간지 모든 기사 226만 건에 나온 5억 개 어절을 모두 분석했다.

▲ 책 ‘신문의 언어 사용 통계’. 저자 정유진·김일환·강범모·김흥규 / 소명출판
▲ 책 ‘신문의 언어 사용 통계’. 저자 정유진·김일환·강범모·김흥규 / 소명출판
사회면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명사는 ‘말·전·검찰·때·뒤·정부·조사·경우·경찰·지난해’ 순이었다. 10위권에 검찰·정부·경찰이 들어간 건 출입처 중심의 기사작성 관행 때문이다.

지역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고유명사는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경기·제주·김·울산·대전’ 순이었다. 지역면에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일반명사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말·때·사람·정부·전·대통령·문제·뒤·경우·일’이었다. ‘정부’와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 언론의 관공서 취재 과잉을 읽을 수 있다. 고유명사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미국’이었다. 10위도 미국의 줄임말 ‘미’였다.

미중 회담 46년이 지난 오늘도 장갑과 단추, 뱃놀이에 집중하는 북미 회담 기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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