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특별조사단)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는 문서들”이어서 공개하지 않은 문건은 도대체 조선일보라는 매체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2015년 8월 20일에 작성된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 추진전략’ 문건에는 “법무부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BH(청와대)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는 메이저 언론사”로서 조선일보가 등장한다.

법무부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 영향’을 미쳐서 결과적으로 청와대마저도 움직일 수 있는 매체로서 대법원 행정처가 조선일보를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법원의 ‘조선일보 활용’이 내포하는 정치적 의미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 내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신설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포함하고 있었다. 상고신청 건수가 많은 데 대법원 법관의 수가 적어 문제라면 가장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대법관을 늘리면 될 일이다. 독일 같은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채택되지 않았다. 수가 늘어나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의 인물로만 대법원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 지난 6월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사진=김현정 PD
▲ 지난 6월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사진=김현정 PD
상고법원을 별도로 신설하게 될 경우, 일상적이고 자잘한 상고 재판은 여기서 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재판만 대법원에서 진행하게 된다. 얼른 보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넘어야 할 벽이 많은 일이다. 모든 국민의 “대법관에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넘어서기 어렵다. 추가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도 장애요소였지만 결과적으로 4심제가 될 것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토록 지난한 일을 조선일보가 나서면 돌파할 수 있다고 대법원장의 직속 휘하에 있는 대법원 행정처는 판단했다. 왜 그랬을까? 문제가 불거진 2010년대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손석희 앵커가 등장하고 한겨레와 같은 신문의 신뢰도가 1위를 차지하기도 하던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언론매체로 조선일보를 꼽았다면 그 이유는 진영이론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자신들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해 공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언론이라고 강변하더라도 현실은 보수 진영의 맹장 정도인 것이다. 극우 매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구도다.

대법원의 ‘조선일보 활용’이 내포하는 언론학적 의미

조선일보를 극우 매체로 분류하게 될 경우 한 가지 새로운 의문이 든다. 수많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내면서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극우적이라 해도 무방할 박근혜 정권과 전면전을 펼쳤을까? 조선일보의 막강한 실력자 송희영 주필과 청와대의 사실상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 사이에는 왜 2016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의 싸움을 했을까? 결국, 송희영도, 우병우도 다 죽은 이 싸움의 핵심 원인은 독선에 있었을 것이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있더라도 자신들에게는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내막을 누군가 들여다보는 일은 참을 수 없는 사건이다. 심지어 알아보니 망해가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정한 사장을 비호하는 대가로 호화 외유를 다녀온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매체는 자신들이 어떤 부정한 일을 하더라도 심지어 청와대라도 도전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자신들을 무소불위로 생각할 수 있었던 근거는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조선일보가 받아 온 다양한 청탁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한 상고법원의 건립을 조선일보를 이용해 달성하려 한 기획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사회 권력층이 평소의 조선일보를 대한민국의 실세로 봐 왔고 조선일보는 늘 이런 분위기 속에 우쭐해왔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를 언론사로 봐야 할까, 브로커로 취급해야 할까? 헌법에서 언론매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뜻에서인데 국민이 아니라 권력층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면 헌법의 보호를 받을만한 언론매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는 최근 자사 지면을 통해서 사법농단은 조선일보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대법관들이 빨리 밝혀 논란을 잠재우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논설위원의 글을 통해서 상고법원 신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뉘앙스의 글을 싣고 있다. 조선일보의 실상을 대한민국 사람들이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옛날보다 더 드는 요즈음이다.

▲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 2015년 2월6일자 조선일보 칼럼
▲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 2015년 2월6일자 조선일보 칼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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