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연대 임시공동대표 박창진 전 사무장은 지난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쪽지를 받았다. “우리 전 직원이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수고하세요. EK맨파워” 지난겨울 파업한 대한항공 손자회사 EK맨파워 소속 기내 청소노동자가 박 전 사무장에게 몰래 건넨 편지였다. EK맨파워는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로부터 기내 청소 용역을 도급받은 2차 하청업체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대한항공 정규직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해외지사 직원, 한진택배 기사, 진에어 승무원 등 전 한진그룹사 직원들이 ‘갑질제보 카카오톡방’을 통해 오너 일가 갑질·비리를 고발해왔다. 인하대 교수·학생·졸업생들은 ‘한진그룹 갑질족벌경영 청산과 인하대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준)’를 설립해 조양호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중이다.

▲ 사진=대한항공 직원 박창진 전 사무장 인스타그램
▲ 사진=대한항공 직원 박창진 전 사무장 인스타그램

청소노동자도 마찬가지다. EK맨파워 노조원(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A씨는 “청소노동자 없이 비행기 못 뜬다. 임금도 다르고 정규직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 비행기 한 대를 띄우는 같은 노동자”라며 “그래서 청소노동자도 한 마음으로 직원연대의 승리를 바란다”고 말했다.

“회사와 싸움, 결국 맨몸으로 싸우는 싸움”

EK맨파워 노조원들은 ‘파업 선배’다. 이케이맨파워 소속 청소노동자 220명은 지난 1월 보름 동안 파업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체불임금 문제에 눈뜨면서 신속히 노조를 만들었다. 당시 노조가 확인한 체불임금액만 10억 여 원(191명 분)에 달했다. 이들은 노조 설립 후 임금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파업에 들어갔다.

김태일 지부장은 직원연대를 응원하면서도 “드라마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얼굴 숨긴 채 활동해도 회사와 싸움은 결국 나중엔 맨 몸으로 부딪히는 거”라며 “직접 나서지 않고 이기는 건 드라마에나 있다. 더 강하게 마음 먹어야 한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박창진 전 사무장 외의 직원들이 나서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해 했다. 그는 “숨으면 자기는 안전하겠지만 변화는 없다. 변하려면 숨지 말고 똘똘 뭉쳐 함께 보호해야 한다”며 “잃을 걸 두려워 하는 마음은 이렇게 극복된다”고 말했다.

▲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소속 조합원 200여명은 2017년12월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공공운수노조
▲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소속 조합원 200여명은 2017년12월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공공운수노조

‘알을 깨고 나와라’는 말도 나왔다. A씨는 “50대 여성 청소노동자인 우리가 대한항공 정규직원들보다 뭘 더 많이 알았겠느냐. 단체행동, 노조, 파업같은 말은 듣도보도 못하고 살았다. 하다 보니 알았다. 부당한 일 겪으니 노조했고 파업까지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우리는 최저임금 받고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더 힘 없는데 싸웠다. 대한항공 직원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지부장도 “파업해도 회사 안 망한다. 겁내지 말고 끝까지 싸우시라”고 했다.

직원연대 응원하는 하청노동자들

“집회할 일 있음 말해. 우리가 가줄게.” “노조하니 좋더라. 언니들도 빨리 해.” 대한항공 승무원 B씨가 얼마 전 비행 후 기내에 올라온 청소노동자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B씨는 “청소노동자들이 더 적극으로 우리를 보고 있더라. 한 이모님은 ‘연차 내고 같이 가줄게’ ‘우리도 노조 일 생기면 서로 연차내고 근무 바꿔주는데 언니들도 그렇게 해봐’ 라면서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A씨는 “임금을 적게 받든, 많이 받든 모두 임금받는 사람이다. 서로가 없이는 비행기가 못 뜨는, 필요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 5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4차 가면 촛불집회'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민중의소리
▲ 5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4차 가면 촛불집회'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민중의소리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월 파업 때 대한항공 직원들로부터 불편하다는 불평을 자주 들었다. 청소노동자 사이에선 일부 원청 직원들 갑질도 종종 도마에 올랐다. 김 지부장은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물과 기름으로 가선 안된다. 자기 이해만 챙기면 이기주의”라며 “서로 목소리를 내야 하니 청소노동자는 직원연대 싸움에 힘을 보탤 것이다. 함께 살자”고 했다.

승무원 B씨도 “대한항공은 ‘블랙리스트’, ‘표적 진급’으로 대한한공 직원부터 뭉치지 못하는 분위기를 오랫동안 만들었다. 직원이 뭉치지 않아야 오너 일가엔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말려들면 안된다”고 말했다. B씨는 “타인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내 권리를 지키고 싶을 때 누구도 손 내밀어주지 않는다. 대한항공엔 ‘같이 비를 맞아주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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