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임원들의 상품권 깡 수법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KT가 전사원을 대상으로 자체감사를 실시한다고 밝혀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불과 열흘 전만 해도 KT 내부 관계자는 감사 대상 인력이 CR부문(대관 업무 담당) 소속 임직원 10여 명 정도라고 설명했으나 KT는 8일 그 대상이 ‘전 사원’이며 명칭을 ‘전사 진단’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 미디어오늘 2018년 5월30일자 온라인 KT 황창규 회장 경찰 수사중 자체 특별감사) 이에 따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과 황창규 회장이 무관하다는 꼬리자르기용 감사라는 시선을 의식해 감사대상을 확대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T 관계자는 8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특별감사 대상을 전 사원으로 확대했는지에 “(전사원을 대상으로 한) 전사 진단을 진행중이고 회사 차원에서 회사 전반의 미비점을 확인하고 있다. 회사 내부 통제 미비점이 무엇인지 체크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열흘 전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대상을 확대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 이 관계자는 “원래부터 전사원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보도 이후 왜 아무런 얘기가 없었느냐고 하자 이 관계자는 “내부 감사와 내부 진단을 외부에 알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KT는 지난 2009년 이석채 회장 때 고양지청이 수사를 진행하자 자체 특별감사로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사전에 ‘김빼기’, ‘꼬리자르기’를 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황창규 회장과 연관성을 없애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KT 관계자는 “그렇지 않다”며 “일상적인 진단”이라고 말했다.

KT의 다른 관계자는 “언론 보도(미디어오늘) 이후 오해 소지를 없애려고 CR 부문 소속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려던 것을 전 부문으로 확대한 것으로 안다. 전사원으로 확대하는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4월17일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4월17일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T는 황 회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연루 혐의와 관련해 검찰 출신 인사들을 KT 임원으로 긴급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KT 윤리경영실 상무로 양진호 검사를 특별채용했으며, KT 계열사인 KT에스테이트 상무로 양희천 전 대검 사무국장을 영입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을 때를 대비해 대 검찰 로비 또는 방어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KT 관계자는 “일반적인 인사채용”이라고 말했다.

이번 특별감사를 주도하는 남상봉 윤리경영실장은 검사 출신으로 2009년엔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감사과정을 자세히 아는 인물로 알려졌다.

남상봉 KT 윤리경영실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황창규 꼬리자르기용 감사가 아니냐’는 우려에 “내부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답했다. 검사 출신 두 명 영입한 것을 황창규 회장 수사 대비용인지, 황 회장 사법처리를 면키 위해 조직을 동원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이석채 회장 때 했던 특별감사의 경험을 떠올려 한 것인지 등의 질의에 남 실장은 “대외창구는 홍보실로 일원화돼 있으니 거기서 들으라”고 말했다.

황 회장이 지난 4월17일 경찰에 출석해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이를 두고 KT 내부에선 의문이 제기된다. CR부문 임원들이 황창규 회장 모르게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해 제공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과거 CR부문에서 대외 업무를 했던 한 KT 관계자는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저런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했으리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경찰 수사와 관련된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에 그렇게 해도 되는줄 알고 (임직원들이) 무뎌져 있었던 것 같다. 불법에 대한 리스크(위험성) 불감증이 있었던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그는 “누가 보더라도 그 방법은 문제가 생기고, 3년 만에 CEO가 바뀌고 상품권 깡으로 현금화해서 어디에 썼는지 나온다. 상품권 깡으로 후원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임을 다 알텐데 황 회장의 지시 또는 사전 보고나 공유하지 않고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KT는 공무원 같은 조직인데 당사자가 혼자 했을리 없다. 해당 사건이 발생했을 때 CR부문장이었던 임원은 돌다리를 두들기면서 업무를 보는 분인데 (회장 재가없이) 자의로 했겠느냐는 얘기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도덕적 문제 뿐 아니라 경찰이 수사로 압박하는데도 본인이 책임을 지고 거취를 결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과거 (남중수, 이석채 등) 통상적 CEO들과 다른 것 같다. 길게 간다”고 말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관련 KT 내부 특별감사의 배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연용 KT 노조 본사지방본부 위원장은 8일 “황 회장의 책임을 임원들에게 책임전가하려는 목적이 크다. 정치자금법 위반 범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황 창규 회장이 지시를 했느냐 여부가 남았는데, 본인의 개입을 배제한 상태에서 ‘CR부문 임원들의 독단 행위’, ‘관행에 의한 행위’라는 것은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 황창규 회장이 경찰에 소환되기 전날인 지난 4월16일 오전 서울 KT 광화문지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 황창규 회장이 경찰에 소환되기 전날인 지난 4월16일 오전 서울 KT 광화문지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감사를 황 회장이 물러난 뒤 쇄신 차원에서 진행한다면 모를까 어떤 형태로든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황 회장이 주도하는 감사는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더구나 KT는 임원들이 불법 정치자금 제공 행위를 황 회장 승인없이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20년 이상 KT에서 재직한 한 중견 직원도 이날 “황 회장에 언질조차 안주고 독자로 임원들이 불법행위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불법성을 다 알면서 자신이 책임질 일을 왜 하겠느냐. 이번 감사는 100% ‘황창규는 관련이 없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황 회장이 몰랐다고 주장하는 건 스스로 무능하다고 시인하는 것”이라며 “조직 통솔을 잘못한 책임이라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장복 KT 노조 중앙위원회 조직실장은 8일 “황창규 회장이 법테두리 내에서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우리 역시 경찰이 황 회장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하는 입장”이라면서도 “(특별감사 때문에 책임을 모두 뒤집어쓸까봐) 임원들이 억울해한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내용을 한 번 파악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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