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첩보 보고”(2015.03.30), “조선일보 홍보 전략”(2015.04.27), “조선일보 방문 설명 자료”(2015.05.06), “조선일보 보도 요청 사항”(2015.09.20)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조선일보 관련 문건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상고법원 성사를 위해 언론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언론이 ‘재판 거래’에 어떻게 동원됐는지 확인할 문건들로 보인다.

이번 특조단 조사대상 문건 410개 가운데 제목에 ‘조선일보’가 언급되는 문건 목록은 △(150128)상고법원 기고문 조선일보 버전(김◎◎) △(150203)조선일보 상고법원 기고문(김◎◎) △(150203)조선일보 칼럼(이○○스타일) △(150330)조선일보 첩보 보고 △(150331)조선일보 기고문 △(150427)조선일보 홍보 전략 △(150504)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콘텐츠 검토 △(150506)조선일보 방문 설명 자료 △(150920)조선일보 보도 요청 사항 △(150920)조선일보 보도 요청 사항 등 10건.

행정처는 이 문건들을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장인 안철상 대법관은 “특정 언론기관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첩보나 전략 문서 파일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어 공개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조선일보가 제목에 등장하는 10개 문건이 작성된 시기,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현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 강 의원은 2013년 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편집국장을 지내다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비례의원이 됐다.

조선일보 논조 변화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는 2015년 1월까지만 해도 상고법원에 비판적이었다. 당시 정권현 조선일보 특별취재부장은 “선출직이 아닌 대법원장이 다시 임명한 상고법원 판사가 최종심을 맡게 되면 국민주권을 재재위임하는 것이고, 국민주권의 원리는 희미해진다”고 지적했다.

10개 문건 가운데 “(150203)조선일보 상고법원 기고문(김◎◎)”, “(150203)조선일보 칼럼(이○○스타일)” 등의 문건 작성 이후로 보이는 2015년 2월6일자에는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기고(“상고법원이 필요한 이유”)가 실렸다. 문건이 예고한대로 기고가 실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150331)조선일보 기고문” 문건도 마찬가지다. 2015년 4월13일자에는 오연천 전 사법정책자문위원장(울산대 총장) 기고(“대법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 상고법원”)가 실렸다. 

이후에도 조선일보에는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논조의 기사가 실렸다. 2015년 5월28일자 1면 기사 제목은 “‘上告법원’ 논의, 國民 입장에서 보라”였고 이날 3면에는 “대법원에 年3만7000건… ‘기다리기 지친다, 졸속재판도 싫다’”라는 제목으로 상고법원 기사가 보도됐다. 전반적으로 상고법원 찬반 논리를 소개한 기사이나 제목이나 부제목을 통해 찬성 논리에 무게를 실었다.

이 보도에 앞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행정처 문건은 △(150427)조선일보 홍보 전략 △(150504)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콘텐츠 검토 △(150506)조선일보 방문 설명 자료 등이다. 조선일보는 2015년 10월21일에도 “대법원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벅찬데… 上告법원 표류?”, “‘감기환자들 몰려 수술 못하는 격’”이라는 제목으로 상고법원 기사를 보도했다.

▲ 조선일보 2015년 5월28일자 3면.
▲ 조선일보 2015년 5월28일자 3면.
행정처가 지난 5일 추가 공개한 문건에도 조선일보가 등장했다. 2015년 8월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만남 이후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에는 “법무부에 실질적 영향 미치고 BH(청와대) 인식을 환기시킬 수 있는 메이저 언론사 활용” 방안으로 “조선일보 1면 기사 등”이 꼽혔다. 이 문건은 언론 기사가 상고법원을 단순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필요성 및 시급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행정처와 조선일보가 어떤 관계였는지 명확히 확인하려면 문건 공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일 “양승태 대법원에서 비판적인 판사들을 압박하고 탄압하는 수단으로 보수 성향 언론사 등을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의 진실 규명을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며 “공개를 요청한 문건은 조선일보 관련 문건 10개와 언론 관련 비공개 문건들”이라고 밝혔다.

민언련은 “만약 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는 문서라며 조선일보 관련 문건을 계속 숨긴다면 우리는 대법원과 조선일보가 여전히 검은 커넥션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행정처는 사법 정의뿐 아니라 언론 정의 회복의 시험대 위에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도 지난 7일 사설에서 ‘조선일보 문건’을 두고 “특조단의 해명처럼 이 문건이 재판이나 법관 독립과 직접 관련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언론을 활용해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면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조선일보 문건부터 당장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018년 6월6일자 1면.
▲ 조선일보 2018년 6월6일자 1면.
조선일보는 행정처의 문건 공개 이후 깊어지고 있는 판사들의 갈등을 보도하며 김명수 현 대법원장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자 1면 제목을 “대법원장이 자초한 ‘사법의 난’”이라고 뽑으며 “김 대법원장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법원 내부 갈등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국희 조선일보 기자는 7일 기자 칼럼에서 “지금 사법부는 이른바 ‘사법 포퓰리즘’에 빠진 듯하다”며 “김 대법원장은 작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31년간 재판만 해온 사람의 수준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 수준이 지금의 수준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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