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남자 누드모델 ‘불법촬영’(몰카) 사고로 오히려 여성들이 분노했다. 발빠른 수사는 몰카 범죄 절대다수 피해자인 여성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성차별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단 사흘 만에 청와대 답변 기준(2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여성의 분노는 커졌다.

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분노의 이면을 들춰보고자 했다. 좁혀지지 않는 이견 속에서 한 여성 기자는 답답하다는 듯 “공중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 무수히 뚫린 구멍 속에 혹시 몰카는 없을까 싶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라고 토로했다.

당연히 몰랐다. 남자 화장실에 앉아 용변을 볼 때 뚫린 구멍을 본 기억은 없었다.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던 여성들 분노의 원천 일부에는 화장실 칸에 뚫린 구멍 하나가 주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의 본질을 확인하려고 세 명의 남녀 기자가 무작정 인파가 몰리는 종로, 신촌, 강남 일대 번화가로 나섰다. 하루 종일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화장실 수십 여 곳을 찾았다.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위치한 남녀 화장실 상태를 살필수록 의문의 구멍이 뚫린 여자 화장실과 달리 남자 화장실은 깨끗하다는 사실만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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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화장실에만 구멍이 존재하는 이유는 건물 관리인도, 공중화장실 시공 업체도, 그리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들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관련 전문가들도 명확한 이유를 내놓지는 못했다. 다만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 여자화장실에 몰카가 만연한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수많은 여성들의 화장실 몰카 사진이 인터넷에 노출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구멍을 막기 위해 여성들이 넣은 것으로 보이는 휴지조각과 빠데(흠집을 메울 때 쓰는 아교풀)의 흔적에서 여성의 몰카 공포를 설명할 수 있었다. 기사가 나가자 수많은 여성들의 공감이 쏟아졌다. 공감은 공포의 다른 말이었다.

기사의 모 학원 건물은 기사가 나간 이튿날 경찰 조사 후 화장실을 폐쇄하고 개보수를 결정했다고 한다. 여성의 말할 수 없는 공포를 알리고자 노력한 결과물이 촉발한 변화로 얻은 찰나의 뿌듯함 직후 여태 무관심하다 이제서야 부랴부랴 수습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밀려왔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을 바라보는 여성의 마음이 아마 이랬을까.

공중화장실은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해결하는 곳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에 담겨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조우하는 만남의 광장은 결코 아니다. 이 간단한 명제가 지켜지지 않아 여성의 공포가 커졌고 몰이해에서 비롯한 공감의 부재까지 더해지며 분노가 일었다.

▲ 유승목 머니투데이 기자
▲ 유승목 머니투데이 기자
그동안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했나. 몰카 수사에 성차별은 없다고 달래기만 할 뿐, 아무도 그 분노의 원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몰카를 걱정하는 많은 여성들이 오늘도 가방에 휴지와 스티커, 빠데를 챙기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구멍을 살핀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의문의 구멍과 이로 인한 공포를 없애야 하지 않을까. 책임은 여성 개인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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