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세계일보와 차준영 전 세계일보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지난달 24일 일부 승소했다. 지난 2013년 10월부터 세계일보 사장으로 재직한 조 전 사장은 2014년 11월 박근혜 청와대 비선의 존재를 알린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었다. 패소한 차 전 사장은 조 전 사장의 후임 사장이었다. 

보도 이후인 2015년 2월 조 전 사장은 세계일보에서 해임됐다. “사내이사 조한규가 대표이사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기에”(세계일보 임시주주총회 의사록) 해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일보 안팎엔 청와대 외압 때문이란 말이 돌았다. 이후 공개된 청와대 문건에서 박근혜 청와대가 ‘세계일보 공격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드러나며 외압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조 전 사장 해임 건은 ‘언론자유 침해’ 사례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 2016년 11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권은 나를 포함해 세계일보 편집국장과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였고, 통일교를 압박해 나를 해임토록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이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박근혜의 헌법 위반 사례로 조 전 사장 해임을 적시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를 파면했지만 언론자유 침해를 파면 사유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2016년 12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2016년 12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해임 사유는 청와대의 압력 탓”

세계일보는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직후 2016년 12월 공식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청와대 측이 세계일보와 통일그룹 재단 측에 유무형의 압박을 가한 것은 사실이나 공식으로 조 사장 해임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 조 사장 해임 건은 문건 보도 시점인 (2014년) 11월28일 이전에 재단 차원에서 실시한 세계일보 감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달 조 전 사장이 승소한 민사소송 판결문을 보면 조 전 사장은 세계일보가 공식 입장문에서 세계일보 감사로 자신을 해임했다는 건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남인수 판사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이하 유지재단·세계일보는 이 재단 계열사로, 유지재단은 통일교의 교회 재산을 관리하는 재단이다)이 2014년 11월 발행한 세계일보 감사보고서에 조 전 사장 잘못을 지적한 문구가 없음을 근거로 해임 사유를 감사가 아닌 “정윤회 문건 보도 후 청와대가 세계일보와 유지재단에 가한 유·무형의 압박”에서 찾았다. 조 전 사장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세계일보와 재단은 조 전 사장 법인카드 월 사용액이 420여 만 원에 달해 과다 사용을 지적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업무와 관련된 지출로 판단했고, 조 전 사장이 세계일보 매출액 신장에게 기여했다는 점도 인정해 법인카드 문제를 해임 사유로 보지 않았다.

재판부가 보다 중하게 판단한 해임 원인은 박근혜 정부의 언론자유 침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 ‘국기문란’으로 규정해 검찰은 문건 내용의 진위보다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했다. 보도 이후 세계일보 사장(조한규), 편집국장, 사회부장과 취재기자 6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돼 검찰에서 조사받았다. 세계일보에 압수수색 소문이 돌아 한국신문협회, 기자협회 등이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2015년 1월 유지재단 계열사를 상대로 특별세무조사와 배임 수사가 개시됐다. 원고들(세계일보와 차 전 사장)은 청와대가 세계일보와 유지재단에 유·무형의 압박을 가한 사실을 자인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는 ‘세계일보 공격방안’을 논의하고 압수수색 장소로 세계일보를 거론했다.”

재판부는 “세계일보와 차준영은 청와대의 유·무형 압력으로 조한규를 해임했는데도 재단 감사에서 발견된 개인 잘못으로 해임했다고 허위사실을 적시해 조한규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세계일보와 차 전 사장이 조 전 사장에게 3000만원 배상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 세계일보는 첫 보도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 11월14일 박근혜 청와대 문건 일부를 추가 공개했다. 사진=세계일보
▲ 세계일보는 첫 보도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 11월14일 박근혜 청와대 문건 일부를 추가 공개했다. 사진=세계일보
“조한규 시사저널 인터뷰 공익성 있어”

조 전 사장이 제기한 소송에 앞서 세계일보와 차 전 사장은 조 전 사장의 시사저널 인터뷰가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된다며 2016년 12월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남인수 판사는 지난달 24일 이를 기각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도 지난해 10월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조 전 사장은 2016년 11월30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세계일보가 조만간 (헌정 유린 청와대) 문건을 공개할 거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내 생각으로 (차준영) 세계일보 사장은 (문건을) 공개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걸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장이 됐으니까”라고 말했다.

남인수 판사는 이 인터뷰에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으로 볼 수 없어 위법성이 없다고 할 것”이라며 “공익성이 인정되고 조한규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시사저널 보도 자체가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는 것이다.

남 판사는 “조한규의 인터뷰 당시 세계일보는 대법원장 사찰, 최순실 국정 개입 등 헌정 유린 청와대 문건을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계속 열렸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돼 표결을 앞둔 상황으로 청와대 문건 보도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춰보면 세계일보가 당시 확보했던 국정 농단 문건을 제때 보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능해 보인다. 세계일보는 첫 보도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 11월14일 청와대 문건 일부를 추가 공개했다.

시사저널 인터뷰에 앞서 조 전 사장은 2016년 11월15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해 정윤회 문건과 함께 입수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최성준 전 춘천지법원장에 대한 사찰 관련 청와대 문건을 제출해 파문을 일으켰다.

▲ 2014년 12월 검찰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세계일보 사옥 앞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한 타 매체 기자 40여 명이 진을 치고 대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2014년 12월 검찰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세계일보 사옥 앞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한 타 매체 기자 40여 명이 진을 치고 대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정윤회 문건 보도’ 사과하자는 제안은 왜?

도리어 서울북부지검의 불기소이유서를 보면 정윤회 문건 논란이 계속되던 2015년 2월 차 전 사장이 취임 후 정윤회 문건 보도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증언이 기록돼 있다. 그해 6월12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특별기획취재팀이 해체됐다.

불기소이유서에 기재된 특별취재팀 팀장이었던 전직 세계일보 기자 김아무개씨 증언에 따르면, 차 전 사장은 세계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후 특별기획취재팀과 식사 자리에서 정윤회 문건 보도의 사실관계 확인 등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이에 기자들은 취재 경위, 반론권 보장 사실 등을 설명했다.

김씨는 2015년 4월경 당시 세계일보 편집국장에게 정윤회 문건 보도가 잘못됐으니 사과문 형식의 글을 신문에 싣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차 전 사장을 찾아 강력히 항의해 사과문이 게재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청와대 문건 후속 보도나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보도하겠다고 했으나 차준영 사장이 보도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2015년 12월 세계일보에서 퇴직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특별취재팀 팀원이었던 조아무개 세계일보 기자는 “조한규 사장이 해임된 후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한 유감 표명을 하면 청와대와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는 차준영 사장이 아닌 후임 편집국장이 제안한 것”이라며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후속 보도와 관련해 시기 조절 등과 관련해 취재팀과 국장단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나 취재나 보도를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의 시사저널 인터뷰에 “인터뷰 주된 내용이 세계일보에 보관 중인 청와대 문건의 추가 보도를 촉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 고소인들(차 전 사장과 세계일보)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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