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교류 기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 공영방송사 앞에 놓인 책무와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방송학회와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이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9간담회실에서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한 방송 교류와 협력’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 주민 85%는 서독 공영방송 뉴스를 시청했다. 동독 내부의 정치·사회 이슈도 서독 방송 보도를 신뢰했다. 더 많은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려는 욕구도 동독 주민들을 서독 방송으로 이끌었다. 동·서독 방송교류는 통일을 앞둔 독일 주민들이 서로 이해하며 이질성을 극복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한국 공영방송, 특히 국가기간방송 KBS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보 부족 이유로 겉핥기식 방송·보도 이어져

박주연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분단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다각적 정보와 프로그램은 통일 이후 갈등을 완화하고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독 공영방송 ARD와 ZDF는 ‘전체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동·서독 사회 현실을 전했다. 관련 프로그램은 ‘프라임 타임’(prime time)인 매주 일요일 7시에 방영됐다. 보도·다큐멘터리 뿐만 아니라 토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박 교수는 이런 방송 교류가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이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동독 청소년은 음악,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 비정치적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서독과 통일의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받았다.

반면 국내 통일 관련 프로그램은 북한체제·안보·경제 분야에 치중한 지상파 프로그램, 탈북 이주민 증언을 기반으로 ‘재현된 현실’을 전하는 종합편성채널 예능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박 교수는 ‘정보 부족’을 이유로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칠 방송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3년 기준 통일·남북 프로그램 아이템 가운데 조선중앙TV 인용이 압도적이었다. 취재·보도 형식은 단신이 가장 많았다.

방송사 남북 관련 프로그램의 근본 문제는 정치 환경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 교수는 “독일에선 동·서독 관련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돼 심리적 친밀감 유지에 도움이 됐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방송 교류나 제작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방송학회와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는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한 방송 교류와 협력' 세미나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 한국방송학회와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는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한 방송 교류와 협력' 세미나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평양지국’ 설치 등 남북 언론 교류 확대해야

“통독의 시발점은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한 대립적인 국가 안에 특파원을 파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홍문기 한세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한국 언론사의 평양지국 설치 등 남북간 언론 교류 활성화를 위한 상주 시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북한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작 평양에는 특파원도 통신원도 둘 수 없는 우리 언론이 ‘정보 주권’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국가 기간방송 KBS가 재난방송 뿐만 아니라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중추 역할을 하면 대북 관계에서 생기는 오보를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선 KBS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방송법에 명시된 KBS 책무 관련 조항이다. 홍 교수는 ‘민족 동질성을 확보할 방송프로그램 개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대외방송, 사회교육방송 실시’ 등 KBS 책무를 명시한 방송법 조항을 언급하며 “현실로 KBS 외에는 관련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KBS가 그간 일본 NHK, 중국 CCTV 등과 맺어온 방송교류 협력도 향후 방송교류협력을 수월하게 진행할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교류 나설 만한 ‘신뢰성’ ‘전문성’ 확보 관건

독일 공영방송과 KBS를 동일선상에서 봐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김영욱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서독 공영방송은 정치적 독립성을 꾸준히 지키며 서독 주민들로부터 꾸준한 신뢰를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보도”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독 공영방송은 통일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저널리스트로서 기본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갈등 요소를 배제하거나 친화적 요소를 강조해 보도하지 않았다. 이로써 서독 방송에만 나오는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출과 시위를 ‘프로파간다’가 아닌 현실로 믿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 실상을 객관적, 전문적으로 보도할 전문 언론인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남북 현안이 발생하면 흔히 보는 장면은 스튜디오에 북한 전문가들이 나와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KBS 기자가 보다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 KBS가 해설하는 내용이 전 세계에 인용될 만한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 방송 교류가 이뤄지기 위한 인프라 구축의 현실성도 따져봐야 한다. 최우성 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동독 주민이 서독 방송을 볼 수 있었던 건 방송 방식이 같아서다. 한국 TV로 북한 방송을 볼 수 없는 한계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 법률적 보완 등도 검토해야 한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이주철 KBS 남북교류협력단 연구위원은 “KBS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방송사가 되는 게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이 될 것”이라며 “타 방송사와 함께 발전적인 교류사업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지국 문제는 KBS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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