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명박은 1996년 ‘정치 1번지’ 종로에서 격돌했다. 앞서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걸고 1992년 총선과 1995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에 출마했다. 결과는 연거푸 낙선. 1990년 1월 ‘3당 합당’에 반대하며 YS를 ‘추종’하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1996년 총선 종로 출마는 벼랑 끝에 선 노무현의 결단이었으나 신한국당(YS)과 국민회의(DJ) 벽은 높았다.

이명박은 노무현이 낙선하던 1992년 총선에서 민주자유당(신한국당 전신) 전국구로 당선됐다. ‘샐러리맨 신화’는 그에게 YS와 ‘맞장’을 뜰 배포를 가져다줬고 1996년 종로에서 당선될 기반이 됐다. 두 사람은 13년 뒤 전·현직 대통령으로 비극의 주연이 된다.

JTBC ‘정치부회의’에서 ‘국회반장’으로 활약하는 양원보 기자는 1996년 종로 선거를 주목했다. 지난달 펴낸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에서 노무현 ‘실패의 역사’를 조명했다. 1996년 이명박과 노무현은 각각 성공과 실패의 상징이었지만 결국 누가 승자로 역사에 남았는지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만난 양 기자는 “두 사람을 명확히 구분하는 건 ‘염치’”라고 말했다. “염치를 아는 이와 염치를 모르는 자”가 빚어낸 정치공간 속에서 우리는 2018년을 마주하고 있다. 아래는 일문일답.

▲ JTBC ‘정치부회의’에서 ‘국회반장’으로 활약하는 양원보 기자는 1996년 종로 선거를 주목했다. 지난달 펴낸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에서 노무현 ‘실패의 역사’를 조명했다. 양 기자가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JTBC ‘정치부회의’에서 ‘국회반장’으로 활약하는 양원보 기자는 1996년 종로 선거를 주목했다. 지난달 펴낸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에서 노무현 ‘실패의 역사’를 조명했다. 양 기자가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 기획 의도는.

“2009년 5월23일을 기억한다. 신문기자로 당직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MB)은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해 숨졌다는 보고를 받고 MB는 ‘멘붕’에 빠졌다. 그때 두 사람 운명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나란히 대통령을 했던 그들은 1996년 종로에서 금배지를 놓고 격돌했다. 운명의 단서를 종로에서 찾고 싶었다. 조금씩 자료를 모았다.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은 동기 부여가 없었다. 이제는 차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1996년 자료 모으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2002년 대선만 해도 각종 자료가 있지만 1996년 자료는 쉽게 찾기 어려웠다. 종로·서울시 선관위에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은 2강(신한국당 이명박·국민회의 이종찬) 1중 가운데 ‘1중’이었다. 때문에 노무현 자료는 부족했다. 신문 자료와 책, 증언을 참고했다. 증언만 나열하면 재미가 떨어지니 팩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소설적 요소도 가미했다.”

-지난해 다큐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의 대선 도전기다. ‘1996년 종로’는 이 다큐 프리퀄 같다.

“2000년 이후 노사모가 태동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책이 다루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은 노무현 입장에서 정말 일이 안 풀리던 시기다. 판판이 깨지던 시절이었다. 자서전 ‘운명이다’에서도 이 시기는 몇 페이지 안 된다. 진공의 역사인 셈이다. MB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2002년 서울시장 이후의 이명박을 주로 기억한다. 정치 초년생 MB, 궁금하지 않나?(웃음)”

▲ 책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저자 양원보/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책 ‘1996년 종로, 노무현과 이명박’/저자 양원보/출판사 위즈덤하우스.
-노무현의 정치여정이 1996년 끝날 수도 있었지 않나? 그만큼 힘겨워했다.

“1996년 낙선은 아마 가장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10%대 득표(득표율 17%)는 없었으니까. 최악의 성적표였다. ‘3김 청산’을 내걸었지만 부산에서와 달리 약한 명분이었다. 노무현은 다시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고 주변에는 ‘정치 이제 안 할 거다’라고 선언했다.”

-책을 보면 이 시기 노무현이 ‘레벨 업’하는 느낌이다. 현실에 눈을 떴다고 해야 하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할까.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변모했다. 본인이 ‘3김 청산’, ‘지역구도 타파’라는 명분으로 정치를 했지만 국민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무현은 국민을 탓하지 않았다. 대중보다 앞섰음을 자각했고 이후 ‘이회창이냐, 김대중이냐’ 갈림길에서 그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을 선택했다.”

지지자들은 DJ와 노무현의 동지적 관계와 연대를 기억한다. 하지만 1995년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은 김대중의 지역등권론(호남·충청권이 영남과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논리)으로 부산에서 고립됐고 낙선했다. 이후 DJ와 동교동계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민주당은 분당 사태를 겪는다. 노무현이 1996년 ‘3김 청산’을 부르짖었던 이유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25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25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책을 쓰면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노무현은 김대중에 대한 사감을 정치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부산시장에서 낙선 뒤 한 포럼에서 DJ는 ‘2김’과 묶을 수 없다고 했다. “또다시 DJ를 도울 것이냐”는 측근(서갑원) 질문에 “DJ만 생각하면 아닌데, 호남 사람들 생각하면 안 도울 수 없다”고 했다. 개인의 사적 판단과 역사적 판단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조금 짠한 게 올라오더라.”

-노무현과 대조로 이명박은 ‘빌런(악당)의 서사’다.(웃음)

“아무래도 종로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을 저지르는 등 객관적 팩트(편집자주 : MB가 종로구 국회의원에서 사퇴한 뒤 보궐선거에서 노무현은 당선된다)에서 MB는 불리했다. 독자들 입장에서 노무현에 편향됐다고 하겠지만 팩트가 그렇다. 그러나 MB도 대통령이 됐고 저력도 있었다. 1995년 전국구 초선이 YS 상대로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끌어냈다. 당시 한겨레도 MB를 만만한 초선 의원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민정당 창당을 주도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뒤 내리 4선을 달린 이종찬을 종로에서 이겼다.”

-이명박이 그때도 깨알 같이 ‘돈을 아꼈다’는 증언들이 인상 깊다.

“‘경영 마인드’를 입에 달고 살았다. 전국구 의원 시절 기업인 출신이니 수해 성금을 더 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참모 조언에 재떨이를 던지는 등 정치 활동과 재계 활동을 구분 못하기도 했는데 자기 주변에 모이는 이들을 ‘돈 뜯어먹으려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MB는 현대에서 나올 때부터 ‘서울시장’을 선택지로 생각했을 정도로 자기 커리어를 인식했던 인물이다. 목적을 향해 물불 안 가렸다. 물론 그 과정에 관리 누수가 있었다.”

▲ 양원보 JTBC 기자가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양원보 JTBC 기자가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노무현과 이명박 리더십 차이라면.

“인간미 아닐까. ‘염치’가 두 사람을 구별하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염치를 아느냐 모르느냐 차이.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도 지난 9년의 보수 정권에선 인간미를 찾을 수 없지 않나? 인간적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그리움이 있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노무현은 측근들에게 꼬박 ‘씨’를 붙였고 이명박은 반말이 익숙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손석희 JTBC 앵커가 추천사에서 ‘한 사람은 명분과 편견 사이에서 고민하고 싸웠고, 한 사람은 목표를 정해놓고 좌고우면하지 않았다’며 이들이 격돌한 ‘1996년을 빼고는 그 이후의 현대 정치사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독자들은 두 정치인의 운명과 성장 혹은 몰락을 이 책에서 간접 체험하실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