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노동현실은 보통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기존 연구를 보면 아이돌 지망생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기계발 논리를 통해 무한경쟁의 분위기를 추동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런 기존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며 아이돌 노동양식에서 새로운 유형의 주체성과 인간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방희경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 26일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리얼리티 쇼를 통해 본 아이돌 노동, 노동양식이 구성하는 인간 주체성’이란 연구를 소개했다. 방 연구원은 “기존 아이돌 노동 연구가 소외 문제에 제한된 관심을 뒀고, 아이돌이 수행하는 노동에서 어떠한 인간 주체성·인간관계가 창출될 수 있는지 확장하지 못했다”며 해당 연구 이유를 밝혔다.

아이돌 그룹의 등장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를 기점으로 한다.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며 인기를 구가하자 연예기획사에서 시스템을 마련해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획사는 홍보자료로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라고 부각시켰지만 오랜 기간 아이돌의 노동 현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방 연구원에 따르면 아이돌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아이돌 지망생을 포함해 100만여 명에 달한다. 현재 연예기획사만 1000개가 넘는다. 다만 실제 스타가 되려면 대형기획사에 들어가야 한다. 10대 청소년이 대형기획사 연습생이 될 확률은 1%, 데뷔할 확률은 0.1%, 스타가 될 확률은 이보다 더 낮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연습생이 방송출연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연습생들은 방송에서 자신들의 연예기획사를 홍보한다.

“음악을 소재로 한 인생역전 드라마”라고 볼 오디션 형식의 리얼리티 쇼에선 연습생들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연스럽게 아이돌의 강도 높은 노동실태가 드러났다. 방 연구원은 이 중 Mnet에서 방송한 ‘프로듀스 101’을 통해 연습생들이 육체·정신·감정노동 등 세 가지 노동을 수행한다고 분석했다.

▲ Mnet에서 방송된 '프로듀스101'시즌2에 출연한 아이돌의 모습. ⓒCJE&M
▲ Mnet에서 방송된 '프로듀스101'시즌2에 출연한 아이돌의 모습. ⓒCJE&M
연습생들은 누가 강요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데도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감내한다. 방 연구원은 이들을 ‘자기통치적 주체’로 봤다. 기획사나 시청자의 평가가 연습의 동력이긴 하지만 결국 주말도 없이 연습을 감내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본인이다. 오디션 쇼에서 자기통치적 주체성이 발견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보편적 특징이다.

방 연구원은 연습생들이 오디션 쇼에서 제시한 전략을 짜 미션을 수행하는 등 정신노동도 수행한다고 봤다. 연습생들은 창의력을 발휘하라는 요구가 주어질 때마다 기존 아이돌 그룹의 활동을 축적해 활용했다. 다만 연습생의 정신노동이 매우 창의적이진 않아서 이를 통해 새로운 주체성과 인간관계가 나타난다고 보진 않았다.

방 연구원은 연습생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에 집중했다.

과거 아이돌 그룹은 한 팀을 꾸준히 유지해야 했다. 1990년대 인기를 누렸던 그룹 ‘신화’의 경우 멤버 엔디가 앨범작업에서 빠지자 팬들은 ‘6-1=0’이라는 팻말을 들고 이에 반대했다. 하지만 최근 아이돌 그룹은 그렇지 않다. 팀이 느슨한 형태로 꾸려지고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노동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기존 연구는 감정노동을 통해 이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확인하고 인간을 소외시킨다고만 봤다.

이에 방 연구원은 감정노동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감정노동이 ‘감정’을 생산한다. 감정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위로, 흥분, 열정, 만족감, 소속감 등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연습생은 현재 팀에 일시적 소속감을 갖는 정도로 감정을 관리해야 하며 또 다른 팀으로 이동하면 잘 적응하도록 유연하고 유동적인 주체성을 키워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방 연구원은 “감정노동은 정보화·서비스화의 특징을 가지는 경제적 탈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고유한 노동양식으로 서비스산업에서 중요하게 이용된다. 감정이 다양한 서비스 업무에 이용되고 이로 인해 인적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방 연구원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기통치적 주체가 ‘개인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독단적인 해석은 유보돼야 한다. 감정노동이 인적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 연구원은 “감정노동으로 완전한 공동체가 구현된다거나 연습생들이 진한 우정을 쌓는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라며 “다만 공동체 형성을 위해 느슨하지만 폭넓고 다면적인 인간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방 연구원은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상업화하고 인간적인 것을 자본주의식으로 바꾸겠지만 그럼에도 인간관계를 완전하게 잠식할 순 없을 것”이라며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주체성과 인간관계에 대해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번 연구의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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