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기업 노동자 A씨는 기본급 월 157만 원을 받는다. 여기에 상여금 50만 원, 복리후생비 20만 원이 달마다 나와 모두 227만 원을 받는다. 내년 최저임금이 12% 가량 오르면 A씨 내년 기본급은 약 177만 원이 되고, 상여와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총 월급은 247만 원쯤 된다. 그러나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손대면 이런 인상은 불가능해진다.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는 범위(산입범위)가 확대돼 A씨는 자동 177만 원 최저임금을 받게 됐다. 기본급을 안 올리고도 내년에 예상되는 12%가량 인상될 법정최저임금을 넘어선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5일 새벽 통과시킨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두고 민주노총이 이날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 돌입을 선포했다. 노동자들은 법안이 통과된 새벽 2시까지 국회 앞에서 경찰병력과 대치했고 ‘국회는 최저임금 개악논의를 중단하라’는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 민주노총은 5월25일 오후 2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날치기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해 5월28일 전 조직적인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 민주노총은 5월25일 오후 2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날치기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해 5월28일 전 조직적인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사진=손가영 기자

민주노총은 25일 오후 2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날치기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해 5월28일 전 조직적인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개정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직군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급식조리사 최소 인력만 남기고 총파업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편의점, 주유소, 마트, 청소, 경비, 사무관리, 영업직, 건설현장, 학교비정규직, 중소 영세사업장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보내는 절망의 소리”라면서 “누가 웃고 누가 분노하는지를 보면 법안 성격을 알 수 있다. 입만 열면 저임금노동자, 청년, 여성, 비정규직 타령을 하면서 결국 그들로부터 희망을 빼앗아 갔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 골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다. 매월 지급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2024년까지 순차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당장 내년엔 최저임금의 25%(월 39만 원 선)를 초과하는 상여금과 7%(월 11만 원 선)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만 최저임금 계산에 들어간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예를 들면, 매월 받는 급식비 13만 원과 교통비 6만 원 등 19만 원의 복리후생비 중에서 11만 원을 초과한 8만 원이 최저임금 계산에 추가된다. 이런 식으로 내년 최저임금 산정값이 5% 늘고 법정최저임금이 8% 인상된다면 실제 임금 인상률은 3% 밖에 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매월 8만 원, 연간 96만 원 상당이 늘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동의’ 조건을 ‘의견 청취’로 바꾼 국회 

노동자들은 더 큰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근로기준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의 ‘취업규칙 변경 특례’ 조항이다. 근로기준법 상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 혹은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개정안은 ‘동의’가 아니라 ‘의견 청취’만 해도 된다는 조항을 뒀다.

노동자들은 이 조항이 사용자에게 ‘상여금 쪼개기’ 길을 터준 것이라 봤다. 취업규칙을 변경해 2개월 이상 단위로 받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매월 지급 방식’으로 바꾸면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의 대원칙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훼손됐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절차적·실체적 측면에서 정당성을 결여한 개악”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음식·숙박업, 청소·경비 등 저임금 업종에서 일하는 조합원 602명을 조사한 결과 내년 최저임금이 15% 인상될 때 최저임금의 1~1.2배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9.5% 오르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질 인상률은 4.6%에 그친다고 추정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인상률은 약 4.3%다. 민주노총은 “배신의 정치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교육공무직 노조(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전체 교육공무직 14만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 인상 상쇄로 인한 피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법정최저임금이 2019년 8700원, 2020년 1만 원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불이익 금액이 월 6만2719원(연 75만2528원), 월 8만5500원(102만6천원)으로 점차 늘어 2024년엔 월 36만833원(연 433만 원)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노조는 연봉 2359만 원인 학교 비정규직 1년 차도 2019년 75만원 수준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연소득 2500만 원 미만 노동자에겐 영향 없다”는 환노위 주장은 허위라고 밝혔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5월 25일 새벽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법 산입범위 국회 논의 중단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5월 25일 새벽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법 산입범위 국회 논의 중단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금속노조는 성명을 내 “집권당 원내대표가 산입범위 칼춤을 추자,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 1만원 목표 부정으로 화답하고 다음 날 국회는 최저임금법을 난도질했다”면서 “오늘 463만 명의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한다면 내일은 누구의 차례가 될 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선인 민주일반연맹 공동위원장은 “지방정부의 위탁업체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은 복리후생비 좀 올려달라고 10년을 싸워 겨우 올렸다. 이 정부 들어 복리후생비라도 나아지겠니 기대했지만 임금을 내리고 있다. 산입범위로 또 내렸는데 밥 공기(식대)를 반으로 잘라 먹으란 말이냐”고 말했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국회는 최저임금 개악논의 중단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동의 서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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