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간부가 노조 와해공작을 주도한 삼성전자서비스 임원의 구속 기각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내 노동계의 비판을 받는 속에 해당 간부가 법원에 낸 탄원서 내용이 확인됐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조아무개씨는 지난 8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공식, 비공식 교섭을 담당했던 집행위원’ 명의로 삼성전자서비스 최아무개 전무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작성해 지난 14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가 열리기 전 법원에 제출했다. 회사 내 노조 관련 업무 총책임자였던 최 전무는 삼성전자서비스노조(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와해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 삼성 노조 와해 실무를 총괄한 의혹을 받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최 모 전무와 윤 모 상무, 노무사 등 4인이 4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삼성 노조 와해 실무를 총괄한 의혹을 받는 삼성전자서비스의 최 모 전무와 윤 모 상무, 노무사 등 4인이 4월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노사는 처지와 입장이 다르기에 ‘노사부동(勞使不同)’의 관계로 이해한다”며 운을 뗀 조씨는 “특히 내가 속한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은 현재 진행 중인 수사 사건 피해자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사용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적었다.

조씨는 “그럼에도 숙고 끝에 탄원을 올린다. 만물에 작용하는 음양의 이치처럼 노사관계에도 두 가지가 교차한다. 모든 노무관리에 노조 인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작용한다. 노조 인정은 다양한 대화로 나타나고 노조 부정은 부당행위로 나타난다. 현재 수사는 후자의 측면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억압하는 행위에 대한 응분의 조치”라고 밝혔다.

조씨는 “나는 에버랜드, 전자서비스, 웰스토리 등 삼성그룹사 노사관계를 경험했다. 노사관계를 부인해온 삼성그룹사 사용자에게 노조 이해와 경험이 취약함을 느꼈다. 그동안 최 전무는 복합적인 노사교섭을 통해 누구 못지않게 노사관계를 잘 이해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최 전무가 2014년부터 진행된 노사 간 공식·비공식 교섭의 회사측 대화 창구였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검찰의 노조법 위반 혐의 수사가 속도를 내자 지난 4월17일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해 합법으로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협약을 노조와 체결했다.

조씨는 탄원서에 “최근 노사가 ‘직고용’에 합의했다. 직고용에 따른 절차와 조건에 대한 노사교섭이 진행 중”이라며 “직고용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소통과 교섭이 이뤄질 것이다. 과거 대화 창구였고 현재 직고용 교섭은 물론 미래 노사관계 정착을 고려할 때 노사관계 복합성을 잘 이해하는 사용자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조씨는 “노동권을 부정하는 차가운 겨울을 뒤로 하고 훈풍을 일으키려면 노사 충분한 소통이 절실하다. 소통 창구에 섰던 최 전무가 앞으로도 필요한 훈풍을 전하는 길목을 지킬 수 있다면 봄의 전령으로서 역할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노사부동(勞使不同)의 이치를 알고, 지탄이 쏟아지는 사건에 탄원을 올리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 수 있기에 숙고를 거듭했다”며 “그러나 달라도 조화를 이루라 하셨던 선현의 가르침인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되새기며 존경하는 판사님의 지고하신 판단을 감히 청한다”고 썼다.

▲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산양산센터 염호석 분회장의 시신을 놓고 경찰과 노조원이 대치하는 동안 염호석 분회장 시신을 태운 차량이 빠져나가고 있다.ⓒ민중의소리
▲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산양산센터 염호석 분회장의 시신을 놓고 경찰과 노조원이 대치하는 동안 염호석 분회장 시신을 태운 차량이 빠져나가고 있다.ⓒ민중의소리

금속노조는 오는 29일부터 본격으로 조씨의 징계를 논의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노조 간부가 노조 파괴 주범에게 탄원서를 제출한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며 “이는 금속노조 내부 규약 위반에 해당돼 오는 29일 소집되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이라 말했다.

지회는 영장실질심사 당일 조씨의 제출 사실을 알고 노조와 무관하게 이뤄진 개인의 결정이라며 조씨와 정반대로 구속 촉구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노동계 안팎에선 조씨에게 비난 여론이 거세다. 지회 한 관계자는 “조씨 말대로 교섭 전략이라 해도 노조(지회)를 설득해 노조가 탄원서를 쓰게 하는게 맞지, 조씨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지회 관계자도 “최 전무가 구속 안되면 원하는 정규직화가 되는 것이냐”며 “장기적으로 삼성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나가야 할 시점에 근시안적이고 노조의 민주성을 무시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24일 금속노조에 경위서를 내 “부담을 무릅쓰고 탄원서를 썼다”고 소명했다. 그는 “2011년부터 삼성그룹사 노사관계를 겪으며 무노조 경영의 삼성과는 전통적 노사관계로 풀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직고용은) 민주노조 깃발이 무노조 왕국에 들어서는 쾌거이므로 그에 비해 작은 부담을 기꺼이 지자 판단했고 이후 수많은 노동조건을 다뤄야 할 직고용 후속 협상이 무엇보다 잘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씨가 삼성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JTBC는 지난 23일 ‘검찰이 확보한 사측과 조씨 간 면담 문건에 삼성 측이 기준단협 서명 독려를 부탁하면서 조씨 아내가 운영하는 상담소와 계약을 맺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며 양측 대가가 오고 간 정황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 중 일부 내용이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에 조씨는 ”만약 내가 삼성으로부터 뭔가 받고 있어서 켕기는 것이 있다면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탄원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일반적 노사관계의 ‘원칙’을 강조하는 분들은 나의 ‘삼성을 넘기 위한 교섭전술’을 하찮은 변명으로 여길 수 있다. 그에 따른 비판과 책임을 겸허히 감수하는 자세로 이후 상황을 대면해 나가겠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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