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다수가 찬성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이 결국 국회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폐기 수순을 밟는다.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 불발로 6·13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가 무산된 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여야는 이번에도 ‘민의’보다 눈앞에 닥친 ‘선거’가 우선이었다.

24일 오전 대통령 개헌안 표결을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의원 대부분이 불참했다.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192명)에 훨씬 못 미치는 114명 의원만이 참석해 안건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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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은 “30여 년 만에 추진된 이번 개헌안 투표가 불성립으로 이어진 점은 대단히 아쉽고 안타깝다. 20대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일 년 반 가까이 헌법 개정과 정치 개혁을 위해 머리 맞댔으나,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에게 대단히 송구하다. 나를 비롯해 여야 모두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여전히 국민은 새 헌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 추진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사실상 부결로 매듭지어졌지만, 국회 발 개헌은 아직 진행 중이어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여야 합의로 개정안을 내놓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의장은 마지막까지 야당이 투표에 참석하도록 설득하지 못한 점에 대해선 “야당으로부터 여러 의견을 청취했고 개인으로 공감하는 부분도 있으나, 헌법을 수호할 국회가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기에 의장으로서 외로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24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가 불성립됐다. 본회의장은 야당 의원들이 대부분 불참해 텅 비어있다. 사진=민중의소리
24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가 불성립됐다. 본회의장은 야당 의원들이 대부분 불참해 텅 비어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국민투표법 개정이 무산된 후 개헌 동력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여당으로선 대통령 개헌안으로 야당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 의장과 여당은 그나마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본회의를 열었지만, 이미 야당이 불참해 투표가 불성립할 것이란 것도 예상했다.

어쨌든 여야가 합의해 개헌안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 60% 이상이 찬성하는 대통령 개헌안이 폐기된 책임은 국회가 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당은 표결에 참석해 반대표를 던지는 헌법상 권한마저 행사하지 않았으니 국민의 비판 화살이 쏠리더라도 항변하기엔 궁색한 처지가 됐다.

야당은 여당이 대통령 개헌안 표결 처리를 강행한 것은 개헌이 무산될 걸 뻔히 알면서도 책임을 야당에 떠넘겨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비난을 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정부와 민주당이 대통령 개헌안 표결을 강행한 것은 개헌 무산의 책임을 야당에 돌려 지방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술수이자 표결을 반대한 야 4당과 협치를 포기한 것”이라며 “한국당은 선거구제 개편과 국회의원 권한 축소를 포함하는 국민개헌안 합의를 헌정특위 활동 시한인 6월 말까지 이뤄내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국민개헌을 완수해 가겠다”고 밝혔다.

최경환 평화당 대변인도 “민주당과 청와대가 개헌안 표결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뻔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 무산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겨 개헌 세력 대 반개헌 세력의 구도를 만들어 보려는 얄팍한 수에 불과하다”며 “오늘 여당의 일방적인 투표 강행으로 개헌 동력이 약화하고 개헌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개개인이 헌법기관 자체인 국회의원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자기모순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야당은 개헌이 시대적 과제라 하면서도 시종일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헌법을 개정할 호기를 놓쳐버리고 만 것은 전적으로 야당의 책임임을 분명히 말해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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