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100여 명이 위헌소송 공개변론을 3시간 앞둔 헌법재판소에서 “또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길 바란다”며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16개 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과 이들과 연대하는 16개 소수자운동 단체는 2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회견을 열고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모든 이들이 성적 권리와 삶의 권리, 임신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사회정의를 실현하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2시 한 산부인과 의사가 지난해 2월 청구한 낙태죄의 위헌확인 헌법소원심판 공개변론을 열었다.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269조와 “의사 등이 부녀 촉탁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제270조가 심판 대상이다.

▲ 16개 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및 이들에 연대하는 16개 소수자운동 단체가 5월2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우림 기자
▲ 16개 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및 이들에 연대하는 16개 소수자운동 단체가 5월2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이우림 기자

이를 두고 여성부와 법무부의 입장은 갈렸다. 여성부는 “현행 형법으로 낙태 시술이 불법적ㆍ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여성의 생명권,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며 낙태죄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재에 냈다.

지난 23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법무부는 임신중절을 하려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적었다. 법무부는 또한 “통상 임신은 남녀 성교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자의에 의한 성교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따른 임신을 가리켜 원하지 않은 임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의견을 냈다.

기자회견에선 박상기 법무부장관 경질요구가 나왔다. 발언에 나선 인권운동 활동가 나영(필명)씨는 “법무부 인식은 현재 여성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조건에 있는지를 완전히 무시한 반인권적이고 반윤리적인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의견서를 제출한 법무부 장관을 반드시 경질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낙태죄는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 예로 헌재가 2012년 낙태죄 합헌을 판결한 지 3개월 후 발생한 한 10대 여성의 사망사건을 들었다. 공동행동은 “안전하게 시술받을 병원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온라인에서 수소문한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현금 600만 원을 내고 시술 받았으나 도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에 함께 하는 윤정원 산부인과 의사는 “전 세계 산모 사망 중 11% 가량이 낙태 관련으로, 예방가능한 사망이 한 해 3만1천여 명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엔 이런 통계조차 없다. 4년에 한 번 실태조사를 하지만 통계는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정부 조사 결과 2010년 한해 낙태 건수는 16만8천 건으로 집계됐으나 윤 전문의는 “전문가들은 3배에 달할거라 예상한다”면서 “이 중 합법인 경우는 5%로 95%는 음성적으로 브로커 안내를 받아 수십, 수백킬로미터를 전전하며 시술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윤 전문의는 “임신중절이 불법이니 의과대학은 전공의 교육과정에서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며 “낙태죄 폐지만이 유일한 해결책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차별, 낙인,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16개 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등이 5월2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16개 인권운동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등이 5월2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낙태죄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행복추구권·자기결정권·평등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활동가 나영씨는 “여성에게 성은 단지 성관계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임신, 출산, 육아, 양육과 임금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 우리 일상의 모든 과정과 관련돼 있다”면서 “국가는 낙태죄를 존치시키며 태아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해왔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신윤경 변호사는 “국가는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태어나지 않은 태아가 생명주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낙태죄는) 임신 중절을 할 지 말지 결정하는 자기결정권 뿐만 아니라 개인의 혼인상태·연령·계급에 상관없이 성관계, 피임, 출산, 임신 종결 등 재생산활동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UN 등 국제기구는 20여 년 전부터 여성의 재생산권을 논의해왔다. 대한민국이 1984년 12월27일 비준한 UN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16조는 “자녀의 수 및 출산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동일한 권리와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교육 및 제 수단의 혜택을 받을 동일한 권리”를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규정으로 두고 있다.

시민사회도 낙태죄 폐지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 10여 명은 공동행동 기자회견이 열리기 1시간 전부터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지난 23~24일 간 헌법재판소엔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자문위’, ‘휴먼라이츠워치’, ‘기독청년의료인회 운영위’ 등의 기관이 낸 탄원서와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보건의료인 524명의 성명서’와 여성운동단체 ‘비웨이브’의 탄원서가 동시에 접수됐다.

공동행동은 오는 25일부터 7월 초까지 낙태죄 폐지 촉구 서명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임신중절을 유도하는 약물 ‘미프진’ 보급활동을 하는 네덜란드 의사 레베카 곰퍼르츠가 7월초 방한해 국회토론회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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