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직접 발언에 나서 무죄를 적극 소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공소사실은 충격적이고 모욕”이라고 발언할 땐 숙였던 고개를 들고 검사석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10억 원대 뇌물 등 사건 첫 공판에 출석해 구속된 지 62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공판 진행 초반 “공소사실이 사실과 너무 달라 검찰도 아마 속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 것”이라며 발언권을 청한 뒤 초록색 공책을 들고 자필로 써온 진술서를 읽었다.

▲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적극 부인하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언급했다. 그는 “형님, 처남이 (현대차) 관계회사 경영하는 것에 비난 염려가 있어 만류했으나 정세영 전 회장이 ‘부품 국산화 차원에서 자격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형님이 하는 거니 괜찮다’고 했다”며 “정주영 회장도 장려했다고 해 시작했다. 그 후 30년 간 소유, 경영에 관한 어떤 다툼도 없던 회사에 국가가 개입하는게 온당한 일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과거 일용직 노동자 이력도 언급됐다. 그는 “어릴 때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 내 소원은 한 달 일하고 월급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다. 종업원이 20명인 중소기업에 들어가 전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과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경유착 혐의도 완강히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가, 대기업 회장을 만나 ‘정경유착이란 단어 없다’ ‘선거 여러분 부담없이 했으니 정부와 여러분 새 관계 형성해 일자리 만드는 데에만 전념해달라’고 선언했다”면서 “그런 나에게 (이건희 회장) 사면을 대가로 삼성한테 뇌물을 받았단 공소사실은 충격적이고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때 5분 여간 공책을 보기 위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갑자기 들고 검사 8명이 앉은 검사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는 뇌물 대가로 지목되는 이건희 회장 사면에 대해 ‘IOC 위원에 대한 사면’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유치를 세 번째로 도전하는 과정에서 최우선적으로 이건희 IOC위원의 사면을 강력히 요청받고 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삼성전자 회장이 아닌 IOC위원으로서 사면을 결정했다”며 “2010년 2월 벤쿠버 총회를 앞두고 급히 단독사면해 IOC 위원 자격을 유지하는 등 이런 노력으로 올림픽을 유치해 지난 2월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발언했다.

▲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검찰, 이명박 전 대통령 측 증인 회유 가능성 제기

이 전 대통령 측 재판 전략 중 하나는 자신의 혐의를 입증한 주요 증인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것이다. ‘집사’로 불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성우 전 다스 사장, 조카인 이동형 전 다스 부사장,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이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놨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 강훈 변호사는 김백준 전 기획관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그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의무기록 내역을 받아달라고 재판부에 청했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된 김 전 기획관은 건강이 좋지 않은 점, 혐의를 인정한 점 등의 이유로 지난 5월2일 보석 석방됐다.

검찰은 이에 김 전 기획관 의무기록 확인은 진료 병원을 확인해 그의 현재 거처를 확인하려는 변호인 셈법이 있다고 봤다. 검찰은 “그런(회유)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면서 “옛 진술이 틀렸단 반대진술을 확보하려는 시도 가능성 자체가 명백한 이상 필요성 등을 봐도 목적 면에서 과하다고 생각된다”고 반박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김 전 기획관 의무기록 제출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 다툼이 이어지자 이 전 대통령은 “김백준 기획관을 가능한 한 보호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보호하고 싶다”고 반박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국정원 자금 4억 원 수수 주도 혐의를 증언한 종범이자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 전 대통령이 만난 사실도 검찰에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이학수가 김백준을 데리고 와서 나를 만나게 해달라 했다는건… 김백준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5년 간 기업인 1명도 청와대 본관에 들어온 일 없다. 이건희 회장이 들어왔다면 모르겠지만 이학수 부회장을 대통령 앞에 갑자기 데리고 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전까지 이학수 전 부회장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날 억지로 엮으려고 만나지도, 청와대에 들어오지도 않은 이학수를 만났다고 한 것 같다. 검찰도 내가 만나지 않은 것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뇌물·조세포탈·국고손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횡령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6개 이상의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금액은 110억원대고 횡령 등 불법자금 조성 혐의 총액은 350억원대다. 뇌물 혐의로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17억5천만원 상납 △삼성의 다스 소송비 60억 원 대납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회장의 22억5천만원 상납 △대보그룹 5억원·ABC 상사 2억원·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 4억원 등 불법자금 수수 △지광스님으로부터 2억 여 원 수수 등의 사건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법정 1~2번째 좌석에 앉아 재판을 방청했다. 이 전 대통령의 세 딸을 비롯해 이재오 전 의원, 하금열 전 비서실장, 김효재 전 정무수석, 고흥길 전 특임장관, 백용호 전 정책실장 등이 모습을 보였다. 첫 줄에 앉은 측근들은 휴정으로 이 전 대통령이 법정을 나갈 때마다 일어서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 전 대통령은 손짓과 눈인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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