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한국 기자들 명단을 접수했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밝혔다.

방송사 MBC와 통신사 뉴스1은 21일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해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방북 비자를 신청할 예정이었지만 북한은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통보한 기자단 명단을 접수받지 않았다. 한국 취재진을 제외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취재진은 22일 오전 고려항공 전세기로 베이징을 출발해 원산에 도착했다.

23일 오전까지도 정부 당국은 취재진 명단 접수를 확신하지 못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계속 노력하는 것이고 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뉴스1은 “어제 저녁 취재진이 귀국했다. 일단 통일부에서 명단을 접수했다고 하니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라며 “아직 통일부에서 실무적으로 어떻게 이동할지 통보받지 못했다. 직항기를 타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놓고 한국 취재진의 명단을 접수받지 않으면서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의 연장선상으로 정부 당국에 유감을 표하는 조치라고 보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은 남북고위급 회담 취소 이유로 한미공군연합훈련에 핵 자산 무기가 참가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며 다가오는 조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까지도 언급하며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에 한국 취재진 명단을 접수받지 않으면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한국  취재진을 배제하고 핵실험장 폐기를 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대북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은 핵실험장 폐기는 위장쇼라며 의미가 없다고 깎아내렸는데 우리 취재진까지 현장을 못 가게 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북한이 전격 핵실험장 폐기 취재진 명단을 접수하면서 일단 남북관계가 악화될 수 있는 사태를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전히 남북관계 전망은 밝지 않지만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입장을 바꾼 모양새가 된 것은 고무적이다.

청와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최근 북한이 보인 한미 양국에 대한 태도에 대해 평가하고, 북한이 처음으로 완전 비핵화를 천명한 뒤 가질 수 있는 체제 불안감의 해소 방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 지난 5월22일 오후(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 지난 5월22일 오후(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비난한 맥스 썬더 한미연합군사 훈련의 종료일인 25일 이후 남북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대화재개가 이루어질 것으로 관측했다”고 밝혀 물밑에서 남북관계를 푸는 노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이후 남북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고, 다만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서 대통령께서 25일 이후에 여러 가지 지금 교착상태에 있는 부분들이 풀려나갈 것이다라고 전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가질 수 있는 체제 불안 해소방안을 논의했다는 대목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서 북한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라는 것은 결국은 체제 보장에 대한 부분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체제와 관련된 체제 보장과 안정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논의가 필요하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갖기 전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왔는데 지금 국면에서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그런 것이 있는데 저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릴지 안 열릴지는 두고 봐야 될 것”이라며 “만일 그것이 열린다면 아주 좋은 일이 될 것이고, 북한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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