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밤마다 전파적 통일이 이뤄진다.” 독일 정치학자 헤세 쿠르트의 표현이다. “우리는 낮에는 동독에 살지만, 저녁에는 서독에 산다고 말할 정도였다.” 동독 출신 롤란트 얀 전 슈타지 문서보관소장의 말이다.

최근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이 주목받고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는 지난 19일 부산 경성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독일 통일과 미디어의 관련성을 담은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해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영섭 교수는 “독일의 통일은 갑작스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30여년간 서독의 지속된 동방정책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서독의 지상파 방송이 있었다”고 밝혔다.

독일은 분단됐지만 방송 전파는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선 특수한 상황이 ‘나비효과’를 초래했다. 동독의 주민들은 저녁마다 서독의 방송을 시청했다. 슈피겔이 동독 관료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히며 보도한 1978년 자료에 따르면 동독에서 서독 공영방송 ARD의 정규뉴스 프로그램인 ‘타게스샤우’ 시청률이 22%로 나타났고 ZDF의 정규뉴스 프로그램인 ‘호이테’ 시청률은 40%에 달했다. ‘호이테’의 경우 서독의 시청률보다 동독의 시청률이 높은 기현상도 벌어졌다. 1985년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동독 주민의 85%가 규칙적으로 서독 공영방송의 뉴스를 시청”했다.

▲ 1989년 11월9일 서독과 동독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 1989년 11월9일 서독과 동독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반면 서독 주민들은 동독 뉴스를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 1980년대 기준 동독 뉴스프로그램 ‘아튜엘레 카메라’의 서독 시청률이 10%를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동독 언론은 서독과 달리 공산당 기관지 성격을 갖고 있었다.

심영섭 교수는 “동독 TV에 비친 동독의 모습은 성공적이고 행복하고 빛나며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다. 문제점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면서 “서독의 정치 보도에 대한 동독 주민의 높은 신뢰는 동독 상황에 대한 서독 언론인들의 비교적 정확하고 객관적인 보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독을 다룬 서독 공영방송의 객관보도가 가능했던 건 ‘현지 취재’ 덕분이다. 1970년대부터 동독과 서독의 교류가 시작됐고 동독에 파견된 서독 기자들이 현지에서 벌어진 문제를 제대로 취재·보도해 동독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은 것이다. 반정부 시위를 제대로 보도하는 서독 매체가 있기 때문에 동독주민들은 고립되지도 않았다. 서독 방송 수신이 불가능한 동독의 드레스덴 지역이 “무지한 자들의 계곡”이라 불린 것이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 독일(과거 서독) 양대 공영방송사 로고.
▲ 독일(과거 서독) 양대 공영방송사 로고.

동독은 왜 서독의 방송을 통제하지 않았을까. 학자 롤프 게세릭의 연구에 따르면 나치 독일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나치는 ‘적성방송’ 시청을 금지하고 처벌했는데, 반파시즘을 기치로 내건 동독이 이 같은 처벌에 나서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일이 방송을 통제하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기도 했다.

물론 처음에는 막으려 했다. 1960년대만 해도 동독에서는 “계급의 적은 지붕에 앉아 있다”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서독방송 수신이 가능한 안테나를 제거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등의 운동을 했다. 그러나 서독과 동독의 교류가 추진된 1970년대부터 사실상 동독의 서독방송 시청은 암묵적으로 용인됐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동독 지도층이 공개적으로 자신이 본 서독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정도가 됐다.

서독의 방송이 인기를 끌자 동독도 방송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동독 방송의 일방적, 교육적 어조의 보도는 서독 방송 시청이 활발해진 이후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어조로 바뀌었다. 동독 공영방송은 1960년부터 1989년까지 월요일마다 서독 공영방송의 방영 내용을 논평하는 ‘검은 채널’을 편성하기도 했다. 동독은 또한 일상생활 문제를 개선하는 ‘프리스마’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대응하기도 했지만 편성 목적이 ‘동독도 비판 프로그램이 있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현지에 언론인을 파견하고 ‘카더라’식 보도가 아니라 분단된 상대 국가에게 제대로 된 보도를 보여주는 것이 갖는 효과는 남북 방송교류 재개를 앞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영섭 교수는 “흡수통일을 한 독일과 남북한의 상황은 분명 다르다”고 지적하면서도 “방송교류가 통일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참고할 수 있다. 신뢰회복의 첫 단계는 정보 교류, 언론인 교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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