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노동조합에서 제명된 것을 두고 ‘노노갈등 전략’부터 ‘해고 수순의 고립작전’까지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그의 상황이 과거 권익 주장에 앞장서다 부당해고에 노조 제명까지 당한 노조 간부들과 유사하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박탈을 주장하는 박 전 사무장은 지난 15일 대한항공노동조합(한국노총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 산하) 조합원 자격을 잃었다. 대한항공노조는 박 전 사무장이 ‘어용노조’ 등의 말을 사용해 노조를 폄훼했다며 이날 운영위원회를 열고 그의 제명을 결정했다.

▲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지난 5월1일 조현민 전 전무가 강서경찰서에 피의지 신분으로 출석하기 전, 강서서 정문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지난 5월1일 조현민 전 전무가 강서경찰서에 피의지 신분으로 출석하기 전, 강서서 정문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박 전 사무장은 대한항공에서 신원을 공개한 채 회사 비판 활동에 앞장서는 몇 안 되는 직원이다. 그는 지난 4일부터 서울 시내에서 매주 열리는 ‘대한항공 직원연대’ 주최 촛불집회 사회자를 맡아 왔다. 그는 정의당 당원 신분으로 회사를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고 관련 언론 인터뷰에도 응했다.

20년 이상 대한항공에 근무했던 직원 A·B씨는 “12년 전 회사에 찍힌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도 똑같은 제명 사건이 있었다”며 “박 전 사무장도 그때처럼 부당징계 포석을 깐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노조의 제명은 회사가 부당징계를 하기 쉬워지는 신호라고 말했다. 노조는 비조합원 직원을 부당징계로부터 구제할 책임이 없고 제명당한 직원도 노조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

노조활동을 하다 회사와 대립한 직원 4명은 2005년 파면해고를 당해 2006년 5월 및 12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각각 부당해고 확인을 받았다. 대한항공 노조는 같은 해 12월 노조명예를 훼손하고 조직갈등을 야기했다며 이들을 제명했다.

해고자 4명은 노조로부터 복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이후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동안 복직 소송을 진행했다. 대한항공 단체협약 중엔 “조합원을 부당징계 했음이 관계기관에 의해 판명됐을 시 복직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다. A씨는 “조합원 신분을 박탈해 회사가 복직을 미루는데 도움을 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복수의 대한항공 직원들은 박 전 사무장에 대한 부당징계는 “대한항공에선 매우 수월한 일”이라 입을 모았다. 대한항공 취업규칙은 △대한민국 정책 및 회사 정신에 위배되는 정당·사회단체 임의 가입 △허가없이 언론매체·출판물·유인물 배포·강연 등을 통한 의사표현 및 집회 또는 결사 △회사명예 또는 신용 훼손 행위 △불법 쟁의행위 선동·조장·참여·수행 등을 금지한다. 

▲ 대한항공 취업규칙 금지사항
▲ 대한항공 취업규칙 금지사항
▲ 대한항공 취업규칙 중 징계사유
▲ 대한항공 취업규칙 중 징계사유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사 밖에서 집회를 열거나 온라인 등에 회사 비판글을 게시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취업규칙엔 “사내외를 막론하고 직원 선동 또는 집회·시위를 목적으로 유인물 등을 배포하거나 불법 집단행동을 주동한 때” 및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회사, 특정 집단,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 비방 또는 업무를 방해하거나, 기타 회사 질서를 문란케 한 때”가 징계 사유로 적혀있다.

근래 대의원을 역임했던 C씨는 “12년 전처럼 직원연대가 복수노조로 번질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속셈이 있는 거라면 회사는 박 전 사무장에게 부당징계를 내려 위원장을 못하게 하거나 직원연대 구심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한편 박 전 사무장의 제명 사실이 확인되자 대한항공 직원 등 3000명 가량이 모인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에는 ‘노노갈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한 객실직원은 “회사의 출구전략은 노노갈등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라며 “그 순간 우리의 동력은 상실된다”고 우려했다.

한 객실 승무원은 “프레임에 연연하지 말고 직원연대와 국민이 박 사무장을 지켜준다는 구호를 외치는데 집중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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