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5일자 ‘포천 “北 비핵화 비용 10년간 2100조원”’이란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를 두고 무책임한 왜곡보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동아일보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13일(현지 시간) 영국 유라이즌 캐피털 연구소와 공동 분석한 결과”라고 썼지만 포춘(Fortune)은 블룸버그 기사를 받아썼다. 포춘이 공동 분석한 게 아니다. 날짜도 13일이 아니라 10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 문제는 ‘애교’다.

동아일보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엄청난 경제지원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예상되며 그 액수는 2조 달러”라고 보도한 뒤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하는 과정에서 지원했던 총비용 1조2000억 달러(현재 비용 추산 1조7000억 달러 정도)도 비교대상”이라고 보도했다. 유라이즌 캐피털 연구소는 투자자문회사로서 엄밀하게 해당 수치를 내놓았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당연하게도 한국 언론은 해당 수치를 검증하기보다 받아쓰는데 급급했다.

▲ 동아일보 5월15일자 4면 기사.
▲ 동아일보 5월15일자 4면 기사.
현재 한국정부에서 독일식 통일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 당시 총비용을 비교대상으로 삼는 것 역시 무리이며, 더욱이 1989년 독일과 2018년 한반도 상황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쓴 셈이다. 해당 보도는 동아일보를 비롯해 한국의 많은 언론사가 인용 보도했다.

동아일보 기사에선 포춘이 받은 블룸버그 기사 가운데 “우리는 북한이 그 정도의 경제지원을 요구해야 한다거나 요구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님을 강조하며, 단지 그 규모가 어느 수준이 될 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말하는 것뿐이다”라는 대목이 빠졌다. 또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관찰된 경향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라는 대목도 빠졌다.

인용에서도 대부분 언론사가 ‘통일 비용’이란 표현을 썼지만 동아일보는 ‘비핵화 비용’이란 단어를 쓰며 제대로 받아쓰는데도 실패했다. JTBC는 15일자 ‘뉴스룸’ 팩트체크 코너에서 “블룸버그가 보도한 것은 통일 비용 추정치이며 북핵 포기 대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으며 통일비용은 일방으로 주거나 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투자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기사의 뉘앙스와 달리 핵 포기 비용이 아니며, 매몰비용은 더욱 아니라는 의미다.

동아일보는 또한 해당 기사에서 포춘이 “한국은 비핵화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으나 역시 사실과 달랐다.

▲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장면. 사진=JTBC 보도 갈무리
▲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장면. 사진=JTBC 보도 갈무리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Fortune의 원문에는 북핵 포기비용이 한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 타격이 아니라 부담이라는 표현조차 없다”며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신문의 기사에는 한국에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이와 같은 잘못된 정보는 북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것과 관련한 논의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며 “매우 무책임한 보도”라고 비판했다.

실제 논의는 엉뚱하게 튀었다. 15일 오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포춘 발표를 보면 북핵 포기 대가가 무려 2100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5년 예산을 모두 모아야 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라고 적은 뒤 “좌파 정권이 북핵 개발 자금을 대주고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와 지금 와서 그 북핵을 돈으로 사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홍준표 “좌파정권들, 북핵개발자금 주고 다시 그 핵 사려해”’(조선일보), ‘홍준표 “북핵포기 대가 2조弗…文정부 국민세금 주고 핵 사는 격”’(중앙일보) 등의 기사로 이어졌다.

동아일보와 같은 언론보도 행태를 두고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Fortune을 인용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으면서도 실제로는 정확한 인용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작문을 했다”고 비판한 뒤 “일반 독자들은 그 기사를 읽고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만들려면 무조건 그 정도의 천문학적 비용이 당장 지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북 비핵화 시도에 대한 국민적 지지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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