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1월 구제금융 직후에 출범했지만 장관급인 위원장조차 비상임에다 직원 35명에 인건비까지 포함해도 1년 예산 40억 원도 안 되는 초미니 기구다. 우리 사회가 아직 ‘사회적 대화’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이중노동시장 구조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크다. 문 위원장은 1시간 남짓 인터뷰 동안 ‘격차해소’를 무려 23번 언급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 노사정위원회의 가장 큰 당면과제는?

“단연코 노동계의 격차해소다. 새 정부 1년 평가에 ‘일자리’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언론의 성급한 판단이다. 일자리는 단기에 해결 안 된다. 곁가지 말고 구조를 건드려야 한다. 청년 일자리 10개 중 2개는 대기업 정규직 고임금의 양질인데, 8개는 나쁜 일자리다. 이래놓고 청년들 중소기업 안 간다고 한다. 격차해소 없인 청년 일자리 해결 어렵다. 한쪽에선 일자리 계속 만들고 기업 창업토록 하라는데 그것도 좋지만 중소기업을 좋은 일자리로 바꾸는 논의가 핵심인데 미룬다. 구조를 건드리는 순간 대기업 이익률 10%, 중소기업 이익률 2%가 드러난다. 즉 대기업의 이윤 독점이 본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80년대 둘의 격차는 100:90이었는데 5년전엔 100:60, 지금은 100:50으로 자꾸 벌어진다. 청년실업 해결하려면 격차 해소해야 한다. 대기업이 독점한 이윤을 나누게 하려면 우격다짐으론 안 된다. 대기업도 격차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 토론으로 풀어 나가면 된다”

문 위원장 말대로 30년전엔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거의 없었다. 이런 사실은 전병유 한신대 교수가 1987년에 쓴 석사논문 ‘한국 중화학공업 노동자에 관한 연구’에도 잘 나타난다. 아래 표처럼 1980년 중화학공업 기업규모별 시간당 임금은 100명 미만 사업장이 518원, 100~499명 483원, 500명 이상 516원으로 비슷했다.

- 청년이 노사정 대타협에 관심이 없는데?

“저출산은 청년실업과 닿아 있다. 격차해소가 공론장에 올라가는 순간 청년은 물론이고 범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격차해소 공론장을 만드느냐다”

지금 노사정위 본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정부대표 2명, 공익위원 2명, 경영계 2명, 한국노총 1명까지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을 포함해 사실상 정부측이 6명이나 돼 기형적이다.

▲ 지난 1월31일 서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19년 만에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한 사회적 대화 기구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1월31일 서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19년 만에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한 사회적 대화 기구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 노사정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뀌면 뭐가 달라지나?

“들어왔다가 나간 민주노총은 ‘노사정’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강하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는 모든 것이 다 바뀌어야 한다. 이름과 관련된 트라우마도 털고 가야한다. 그래서 ‘노사정’이란 단어를 뺐다. ‘경제사회위원회’로 바꾸려다가 민주노총이 ‘노동’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결정했다. 어차피 노동의제가 중심이라 노동을 넣으나 빼나 마찬가지다. 재계 반대는 없었다”

- 청년·여성·비정규직대표의 참여를 강조했는데 대표기구 만드는 게 가능할까?

“청년·여성·비정규직의 대표조직을 만들고 대표자 한 명씩 위원회에 보내야 한다. 이미 기구 재편 법안을 국회에 넘겼고,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이 직접 발의했다. 국회가 열리면 통과될 거다. 법에는 노동 5, 기업 5, 고용노동부장관, 기재부장관, 노사정위원장, 상임위원, 공익 4명 등 18명으로 짰다. 비정규직은 비정규노동센터나 양대노총내 조직이 있고, 청년은 청년유니온과 양대노총내 조직도 있다. 기업은 이미 조직이 있다. 노동계가 정리하는데 쉽지는 않겠지만 조정해야 한다”

- 노사정 대화에 젊은 실무진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나?

“청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참여하면 거기서 다양한 소통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청년이 격차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라서 적극 참여해야 한다. 개정 법안에 여야, 노사정 사이 이견은 없다. 내가 할 역할은 기업과 더 소통하는 거다”

▲ 지난 4월 23일 한국노총에서 열린 제3차 노사정대표자회의. 사진=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공
▲ 지난 4월 23일 한국노총에서 열린 제3차 노사정대표자회의. 사진=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공

- 대기업 노조 책임을 많이 언급하던데?

“격차해소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있다. 그걸 누가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최저임금 1만원도 가능하려면 15~20조 원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3조 원, 4대보험에서 1조 원 등 4조 원으로 7530원을 만들었다. 여기서 1만 원 가려면 국회에서 4조 원을 더 가져오던지 해야 한다. 내년에도 국회가 3조 원만 주면 7530원에서 못 올라간다. 뭘로 올릴 거냐는 논의가 빠져 있다.

최저임금 노동자 절반이 하청노동자다. 원하청 관계를 바꿔야 한다. 자영업자는 높은 임대료, 카드수수료 같은 구조를 건드려야 한다. 구조를 못 건드리니 산입범위 문제가 불거져 노동 쪽이 반발한다. 핵심은 원하청 구조적 임금격차다. 대기업 이윤 독점을 풀면 절반은 해결된다. 과연 대기업들이 내놓을 거냐? 사회적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최저임금 1만 원도 안 된다. 대통령이 7530원까지 만들었으니 나머지는 사회적 대화로 풀자”

- 대기업에 강압과 타협이 같이 가야 하는건 아닐까?

“대기업 부품산업이 피폐화됐다. 자동차, 전자, 조선 등 안정적 국내 부품이 필요하다. 격차 때문에 3·4차 하청으로 가면 비정규, 외국인, 고령 노동자들만 있다. 기업도 안다. 2020년 총선이나 다음 대통령 선거땐 막연히 일자리 대통령이 아니라, 중소기업 일자리 좋게 하겠다는 구체적 이슈로 발전할 거다.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 정치가 안정돼야 노사정 대화도 이어갈텐데?

“촛불시민혁명의 지속성은 강력할 것 같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촛불혁명은 ‘사회적 대화’를 지지할 거다. 예컨대 삼성 빼고 사회적 대화할 순 없다. 삼성 불러서 조질 것 같으면 삼성이 나오겠냐? 이게 내 고민이다. ‘나쁜 놈’이라고 규탄하긴 쉽지만 대화해 합의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다”

▲ 지난 5월 4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노사정대표 간담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공
▲ 지난 5월 4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노사정대표 간담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공

- 해외 선진국 노사정 대타협의 좋은 모델은?

“우리처럼 심한 격차를 극복한 나라는 없다.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도 우리랑 현실이 너무 다르다. 석유 위기로 불황이 심해지자 노사가 싸우다가 아주 간단히 해결했다. 고용 유지하고 임금 깎은 게 바세나르다. 합의까지 과정이 중요하다”

-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노사정위에 오게 할 유인책은?

“노사는 1987년부터 30년 동안 대립해왔다. 이제 노조도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할 상황이 됐다. 기업도 노조와 상생하면서 가야된다는 현실 인식은 돼있다. 노사가 마음만 먹으면 격차해소에 나설 수 있다. 정부가 할 일이 있겠지만 노사가 제일 중요하다”

- 임기가 2년인데, 활동할 시기가 길지 않다.

“우리가 사회적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기업별로 쪼개져 노사문제를 해결해왔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위원회 재편을 위한 법 통과가 1단계이다. 노사 대표자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얼마전 자동차산업 원하청 토론회에 노사정위와 공정위, 자동차노조, 전문가가 다 왔는데 정작 현대기아차 사용자는 안 왔다.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논의 결과를 자동차회사가 받을 이유가 없다. 토론회 내용을 정리해 울산 가서 회사와 만난다. 노사가 공감하는 부분을 찾아서 대화를 시도해 보했다. 처음 하는 것이니 많은 정성을 들이겠다”


문성현 “지금도 정체성은 ‘노동’”

마창지역에서 노동운동, 민주노동당 대표를 거쳐 사회적 대화기구 수장까지

문성현 위원장은 ‘단문심’의 핵심이었다. 한때 민주노조운동은 단병호·문성현·심상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문 위원장은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 진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마산창원지역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1985년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1987년 마창노련을 건설해 의장이 됐다. 2002년까지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거쳐 2006년엔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냈다. 2012년 대선부터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문 위원장은 2006년 민주노동당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했다. 당시 북핵실험으로 정국은 어수선했다. 문 위원장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었다. 치열한 토론 끝에 올라가서 ‘강력한 유감 표명’하기로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그런 말 하려면 돌아가라’고 했다. 결국 김영남 상임위원장에게 ‘핵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는 것이지 남한을 향하거나 동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는 발언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사진=이치열 기자
진보정당 대표까지 지낸 분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로 변절했다는 사람도 있다. 이에 문 위원장은 “노동운동하면서 일관된 방향은 ‘노조할 권리찾기와 노동 내부격차 해소’였다. 금속노조 만들 때 격차해소가 주된 과제였다. 민주노동당 대표 땐 격차 줄이려고 사회연대임금을 주장했다. 돌아보면 조금 더 가진 노동자가 흔쾌히 동참하지 않았다. 대기업 정규직부터 ‘왜 우리가 먼저 해야 하나’고 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 위원장은 “노조로는 어렵다고 판단해 도지사, 시장, 의원에 출마했다. 결국 정계에 진출 못하고 노조에서도 역할이 없어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2012년 민주노총이 통진당 지지를 철회한 날 당원증 반납하고 무소속이 됐다. 정당운동을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여겼는데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하자 나도 당에서 철수했다. 그때 친구였던 문재인 변호사가 대선 출마한다고 연락해 왔다”며 문재인 지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구속됐을 때 노무현 문재인 두 변호사의 도움도 생각났다.

문 위원장은 요즘도 문재인 대통령과 연락하냐는 질문에 “요샌 연락 안 한다. 이심전심으로 서로 격려한다”고 했다.

노조위원장과 진보정당 대표, 노사정위원장 등 지내온 여정을 묻자 문 위원장은 “지금도 내 정체성은 ‘노동’이다. 하지만 주어진 과제해결을 위해 기업과 소통한다”고 했다.

문 위원장은 2년 임기라 활동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혹자는 고용노동부장관 가려고 노사정위원장 한다는 말도 한다. 이에 문 위원장은 “노사정위 첫 설계가 잘못돼 임시기구다. 나도 비상임이다. 조직을 상시기구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24일 대통령 주재 청와대 간담회에 민주노총이 불참했다.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올 듯 하다가 안 와서 아쉬웠다. 몇몇 산별대표자만 초대받았고 초대 못 받은 산별노조가 항의했다. 그로 인해 민주노총 위원장이 못 왔다”고 했다. 그 뒤 대통령이 민주노총 위원장만 따로 만나 모양새를 갖췄고 올해 1월31일 민주노총도 참여해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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