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서지현 검사)

한국사회 ‘미투’(Me too, 나도 성폭력 피해자다)의 발화점은 1월29일자 JTBC ‘뉴스룸’ 서지현 검사 인터뷰였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사회 전반에 성폭력을 고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같은 사회분위기는 최근 드라마를 통해서도 등장했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드라마 제목에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서사인 ‘직장 내 미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JTBC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JTBC
극중 주인공 10년차 대리 윤진아(손예진 분)는 직장 내에서 ‘윤탬버린’으로 통했다. 남성 상사들의 과도한 스킨십을 받아내며 분위기를 잘 맞춘다며 얻게 된 별명이었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이었던 그녀는 서준희(정해인 분)를 만나 사랑하게 되며 삶의 변화를 맡게 된다. 윤진아는 서준희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자존감을 갖기 시작한다. 사랑으로 충만해진 가슴은 부당한 상황에서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윤탬버린’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렇게 ‘미투’에 나선다.

“회사 내 여직원들 문제가 들리는 소리보다 실체는 더 심각한 거지?” (대표이사)

“그동안 좋게 가잔 마음으로 넘겨왔던 사람 중에 하나라 실은 제 자신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말씀도 드리기 힘들어요. 다만 제 목소리는 꼭 낼 생각입니다.” (윤진아)

윤진아는 키보드 앞에서 망설인다. 그러다 진술서를 적어나간다.

“가맹운영팀 대리 윤진아입니다. 10년간 슈퍼바이저로 일하며 겪었던 피해 사실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하며 언제든 증언할 용의도 있습니다.”

서준희는 그런 윤진아의 손을 말없이 잡아준다. 그러나 직장 내 상황은 녹록치 않다. 그녀의 여성 동료들은 미투에 동참하자는 사내 분위기에 갈등한다.

“불이익이 없을 거란 보장도 없구요.”

“짤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안 짤린다 해도 곱지 않은 시선 때매 스스로 나가게 되겠죠.”

“소문이란 게 따라올 텐데.”

“당사자들 입장도 있는데 억지로 끌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JTBC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어떤 신문기사보다 직장 내 미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내 여직원간 갈등을 비롯해 개인이 처하게 될 고민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내 성폭력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드러나는 내부 갈등 또한 현실적이다. 윤진아는 사유가 명확히 공개된 가해자 징계를 요구하지만, 난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동료들 중에는 그의 손을 놓지 않는 이들도 있다. “너만 다치게 하진 않을 거야.” 연대는 언제나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와 관련 배우 손예진은 지난 4월 26일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에서 윤진아라는 캐릭터와 드라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배우로서 느껴왔던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나, 개인적으로는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부모님과의 관계, 연애, 일, 지금 느끼고 있는 일을 대본에서 많이 느끼고 있다. 직장에서 회식 참여 안 했다고 깨지는 것들이 너무 공감됐다. 이 작품으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위로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진아는 아직 미성숙하다. (극중) ‘윤탬버린이 왜 이렇게 변했어’란 대목이 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소중한 존재인 줄 몰랐고, 이제 스스로 나 자신을 지켜나가야겠다는 대사가 있다. 우리 드라마는 날 것 그대로의 현실감 있는 대사들이 많다. (우리는) 다큐인지 드라마인지 모를 정도의 리얼함을 추구하고 있다.”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JTBC
▲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한 장면. ⓒJTBC
이 드라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그녀가 직장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는 사랑의 결과물이다. 윤진아는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는 대신 서준희의 손을 먼저 잡으며 사랑을 쟁취한 것처럼, 자신이 처한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나간다. 그러면서 갈등이 반복되지만, 갈등의 상처는 오히려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윤진아의 사랑은 가족과의 관계도 바꿔놓았다. 두 사람의 연애를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윤진아는 말한다. “내 일이고 내 문제야. 더 이상은 용납 못해.” “이제 혼자 세상에 나가 볼래요.” 그렇게 그녀는 안락했던 부모의 집을 나와 곰팡내 나는 집을 둘러보며 ‘누구누구의 딸’이 아닌 ‘윤진아’가 된다.

자꾸만 보고 싶어 헤어지지 못해 손을 흔들며 그 자리에 머무는 것.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 싫어 자꾸만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자동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 밥을 먹으며 웃고, 영화를 보며 웃고, 커피를 마시며 웃고, 그리고 울고, 다시 웃고…. 그 흔한 재벌도 등장하지 않고 불치병도 등장하지 않는 이 드라마는 12년 전 시청자의 호평을 받았던 SBS ‘연애시대’ 이후 사랑을 그려낸 최고의 멜로드라마라 평할 수 있겠다. 이와 관련 배우 손예진은 “16부가 마무리 되었을 때는 ‘연애시대’를 좋아해주셨던 느낌으로 이 드라마 역시 사랑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 존재할 수많은 ‘윤진아’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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