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그 날 나는 페북에 이렇게 썼다. “이제부터 모두 마음속의 휴전선을 걷어내야 한다. 지금껏 억눌렸던 상상력의 담대한 전개가 필요하다. 특히 언론에서…” 글의 끝에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역사에는 늘 몇 개의 큰 전환점이 있다. 이번에 못 하면 아니함만 못한 아수라의 역사가 이어진다. 담대한 상상력의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기를 바란다”라고….

그즈음 페북에서 나는 이런 우려를 담은 글을 보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쏟아져 나오는 언론의 보도들은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 중요한 시기에 국민이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국민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과 방법을 모색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자극적이고 지엽적인 뉴스에 골몰한 언론 보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지적에 백 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준비를 위해 언론에 약간의 시간은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 김수영이 떠오른다. 그 시간 동안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중요한 지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인사한 후 함께 북측으로 넘어가고 있다. 두 정상은 바로 남측으로 넘어와 환영식장으로 이동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인사한 후 함께 북측으로 넘어가고 있다. 두 정상은 바로 남측으로 넘어와 환영식장으로 이동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시인 김수영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시인이 우겨대니 / 나는 잠이 올 수밖에 // ‘김일성 만세’ /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 관리가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시인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 전문. 발표하진 않았지만 시인은 1960년 10월 ‘김일성 만세’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시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삼팔선은 휴전선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뿐 내 안에 너 안에 있다. 무심히 바라보는 너의 눈에 비친 저 돌에도 있고, 진실에 머뭇거리는 나의 발걸음에도 있다….” (산문 '해동' 중에)

시인은 말한다. 우리에게 불온해지라고…. 지금껏 법의 이름으로, 여론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정치의 이름으로 억눌려 있었던 우리들의 상상력을 풀어내는 것,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는 극히 중요한 출발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김수영이 그렇게 말한 때는 지금부터 무려 58년 전이었다. 5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시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우리는 여전히 주눅 들어 있다. 주눅 든 상태에서 상상력은 펴지지 못한다. 불온해지라는 말이 여전히 불온하게 들린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불온함을 마음껏 펼쳐야 한다. 누가? 언론인들이, 특히 방송인들이….

왜?

첫 번째는 우리의 무지다. 지금껏 우리는 북한을 몰랐다.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 그들을 모두 뿔 달린 도깨비로 알았다.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남쪽 세상의 연장선에서 북한을 고치면 된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남쪽 사람들은 새로운 반도의 역사에 거의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두 번째 이유는 지난 이명박근혜 시절의 치욕스러운 경험이다. 그 9년여의 시간은 대한민국의 퇴행이며 낭비였고 고통이었다. 다시는 그런 적폐가 재현되지 않도록 평화와 통일의 기운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생각의 교정, 새로운 담론의 확산, 즉, 불온한 상상력의 전개이다. 한 페친은 이렇게 썼다. “북한이 마치 남한 자본주의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할 신천지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북의 살길은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해 남한 및 세계의 독점자본들에 문을 활짝 개방하는 데 있다는 담론이 판을 치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 관점에서 그 사회를 판단하지 말자”라고….

남과 북의 평화는 반도의 동포들이 전 세계에 주는 지상 최대의 선물이다. 세계적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다.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를 준비하는 역할은 한국만의 과제는 아니다. 동북아인, 나아가 전 세계 인민 모두의 과제이다. 여기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한국의 방송인, 특히 지상파 방송인들이다. 마음과 뜻을 모아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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