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공전은 새삼스럽지 않다. 30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모든 사안에 의견을 모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각 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협상을 한다. 과거 두 곳의 교섭단체만 있었던 때와 달리 넷으로 늘어난 교섭단체 사이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각 정당 원내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고민이 깊어지면서 핵심 쟁점에 대한 주장이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한 법안의 해법을 요구하는 주장이 다른 법안에서의 해법과 충돌할 때가 그렇다. 며칠 째 결렬이 반복되고 있는 ‘국회 정상화’를 위한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런 모순에 빠진 곳이 있다. 드루킹 특검과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바른미래당이다.

공공성은 국가의 활동이 아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방송법이 국회 정상화의 쟁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네이버라는 포털과 방송 모두 공적 공간, 공공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성만큼 모호한 개념은 드물다. 영국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라는 용어는 그런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영국의 퍼블릭 스쿨은 정부의 재정이 아니라 학생의 수업료나 사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중등교육기관으로 우리나라의 사립학교와 유사하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공립학교처럼 국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고 교육부의 엄격한 관리감독에 놓이는 학교는 스테이트 스쿨(state school)이라 부른다. 지금이야 귀족학교처럼 되었으나 퍼블릭 스쿨은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자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종교, 직업, 지역의 차별 없이 전국의 모든 이들에게 교육의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가 퍼블릭, 즉 공공성이며, 퍼블릭 스쿨은 그래서 정부 정책과 통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퍼블릭 스쿨이 수업료와 사적 재원으로 운영되어도 공적 책무를 지는 까닭은 모두에게 열려진 공적 영역이라는 성격 때문이다. 이 사례는 공공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공적 영역의 공적 책무는 국가나 정부의 규제 대상이기 때문에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요구된다. 그러나 거꾸로 국가의 개입이 이런 개방과 접근을 방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공적 영역의 사유화, 드루킹 사건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야당이 특검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선거 운동의 룰을 어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매크로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정치 뉴스마다 다수의 의견으로 위장한 행위는 불특정 다수가 소통하는 공적 영역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비단 포털뿐일까. 대다수의 정당들은 대선에서 지방선거까지 선거 국면마다 지역의 ‘정치 자영업자’를 동원하여 지역 여론을 위장하고 이들과 금전적·비금전적 거래를 해 왔다. 포털은 이런 정치 자영업자들이 활동한 또 다른 공간일 뿐이다. 역세권과 공공장소에서 다수의 군중이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약속받고 ‘평범한 지역민’으로 위장하여 특정 후보의 편을 드는 행위가 포털에서 재현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본질은 네이버의 부실한 댓글 정책과 ‘불공정한’ 뉴스 노출에 있지 않다. 뉴스를 읽고 댓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곳은 민간기업인 네이버지만, 이 공적 영역을 훼손하여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전유한 이들은 수많은 드루킹들과 정당들이다.

▲ 지난 5월4일 오전 ‘드루킹 특검’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투쟁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5월4일 오전 ‘드루킹 특검’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투쟁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야당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 요구는 그래서 정당하다. 그러나 댓글의 조작 지시와 배후만을 가리는 특검은 큰 의미가 없다. 댓글 공간이라는 공적 영역을 다수 의견으로 위장하여 훼손토록 지시하고 대가를 지불한 곳이 정당이라면, 이들이 자신을 ‘셀프 조사’할 수는 없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는 특별검사가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특검은 드루킹이라는 정치 자영업자의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비정상적인 조직 동원과 지역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적폐를 청산할 계기가 되어야 한다.

또 다른 공적 영역, 공영방송

네이버의 뉴스와 댓글 공간만큼 중요한 공적 영역이 또 있다. 바로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의 ‘공영’은 영국의 퍼블릭 스쿨에서의 의미, 즉 누구나 질문을 던지고 원하는 답을 요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지난 시기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 적폐로 지적되었던 이유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방기하고 대통령만을 위한 ‘닫힌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영방송의 파행은 광화문 앞 광장을 공적 영역으로 만들었다. 광장의 촛불과 대통령 탄핵 이후 공영방송에 대한 요구가 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 2016년 7월, 대통령 탄핵은 상상도 못하던 때 발의된 방송법 개정안은 시청자와 국민을 위한 열려짐이 아니라 한 정당의 지배를 막기 위한 타협의 산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광장의 촛불이 준 교훈은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타인의 주장을 경청하며 소통과 이해를 시도할 장소는 광장에서 사회 곳곳의 일상 영역까지 확대되어야 했다.

공영방송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의 선출에 시민 참여를 보장하라’는 언론시민사회단체의 요구는 정치적 중립이 아닌 광장과 같은 열린 공간을 향한 요구다. 당연히 광장은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정치적 요구 뿐 아니라 경제, 환경, 교육, 젠더 등 수많은 계층과 세대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엉키는 용광로와 같은 공간이 바로 공적 영역이다. 공영방송은 그런 영역의 내용이 아닌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이후 쏟아지는 미투 운동, 갑질 폭로의 진원지를 생각해 보자. 언론을 통한 제보가 아니라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 미디어와 익명 채널이 또 다른 광장이 되었다. 2018년 공영방송은 바로 이런 광장이 되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열린 공간으로서의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한 방송법의 개정 자체가 국회가 아닌 열린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는 공영방송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의 논의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시민이란 정당의 추천으로 주장에 제약을 받는 ‘전문가 집단’을 말하지는 않는다.

방송법 개정, 또 다른 드루킹의 합법화

네이버의 댓글 공간과 공영방송 모두를 공적 영역으로 본다면 두 곳 모두 개방성과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원내대표 간 협상에서 박근혜 탄핵 이전 발의되었던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바른미래당의 주장은 이런 근거와 동떨어져 있다. 개정안은 그동안 관행이던 여당과 야당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몫을 법률 조항으로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사장 추천과 선출 또한 이사진의 여야 비율에 따라 한정된 범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바른미래당은 ‘정치적 중립’을 위한 개정안이라 하지만, 정확히 말해 공영방송 이사 추천 몫으로 다른 정당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받기 위한 ‘정치적 개입’의 다른 말일 뿐이다.

▲ 지난 5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방송법 개정안 야합 반대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5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방송법 개정안 야합 반대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영방송 이사의 여야 추천이 현재 국면에서 공적 영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라면 이는 드루킹 네이버 댓글 조작 사건과 다르지 않다. 네이버 뉴스 댓글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정당의 후견과 보상에 따라 다른 정당과 후보를 견제하고 이익을 챙기는 행위는 당연히 문제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에 정당의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이사를 파견하고 이를 통해 다른 정당의 추천 이사를 견제 감시하는 행위는 왜 문제가 될 수 없는가. 게다가 각 정당 이사 추천의 관행을 방송법에 명시하겠다는 것은 네이버 댓글 공간에서 ‘관행적으로’ 활동해 온 정치 자영업자를 합법화시키겠다는 말과 같다.

물론 현재 모든 공영방송의 이사가 드루킹과 같을 수는 없다. 적어도 현행법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는 방통위의 추천을 거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어떤 정당의 추천 이사인지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시기 일부 공영방송 이사가 보여준 행태는 드루킹의 댓글과 얼마나 달랐는지 의문이다. 공적 영역인 공영방송 이사의 추천에 정치권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네이버 댓글이라는 공적 영역에 정당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이유와 동일하다. 바른미래당이 국회 정상화를 위한 원내대표 회동에서 드루킹 특검법안과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 모순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은 열린 공간으로서의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한 대안일 수 없다. 모든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영방송을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닫힌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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