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을 최초 폭로한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황 박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다.

류 교수는 지난 2016년 두 차례 언론 인터뷰와 한 차례 토론회에서 언론 보도 등을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의 줄기세포 완화 조치에 황 박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박사는 이를 문제 삼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류 교수를 지난해 1월 검찰에 고소했다. 류 교수는 지난 2005년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최초 폭로한 공익 제보자다.

류 교수는 황 박사의 고소와 검찰 기소가 ‘재갈 물리기’라는 입장이다. 류 교수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황우석 개인을 비난할 목적이 아니었다. 청와대를 둘러싼 의료 농단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전문가 입장에서 제시한 의견의 지엽적인 부분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류영준 강원대 병리학과 교수. ⓒ 김도연 기자.
▲ 류영준 강원대 병리학과 교수. ⓒ 김도연 기자.
당시 언론은 박근혜 정부가 차병원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 세포 연구를 조건부 승인한 과정에 황 박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6년 4월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회의에서 황 박사가 연구 필요성을 강조했고, 같은 해 5월 박 대통령이 연구 승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줄기세포 불법 시술을 받은 뒤 대가성이 짙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보도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기점으로 관련 의혹이 일파만파 퍼졌다.

이와 관련해 류 교수는 그해 11월2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황 교수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청와대 수석실을 통해 정부 회의에 참석한다든가 (중략) 클로징 멘트로 그런(‘법을 풀어달라, VIP와 독대했다, 나는 못하더라도 차병원은 하게 해 달라’)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며 “어떻게 그런 커넥션이 있어서 관련 활동을 하고 다니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1일자 머니투데이는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특혜 논란의 핵심은 연구 허가와 연구비 지원 결정권을 갖고 있는 권력(정부)과 의료계의 결탁”이라며 ”차병원 연구가 시작되면 금기시 됐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틈이 벌어지고, 황 박사 자신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연구 재개 등 뭔가 챙기려고 한 것 같다“는 류 교수 인터뷰를 실었다.

류 교수는 같은 해 12월7일 ‘박근혜-최순실을 둘러싼 의료게이트’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와 황우석 박사의 인연이 오래 전부터 이어졌다”며 “황 대표가 최상위 핵심 권력층에 접근해 정부 차원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지원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 박사는 류 교수가 자신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는 입장이다. △4월 토론회에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요청을 받아 참석했을 뿐 ‘청와대 수석실을 통해서’ 참석하지 않았고 △차병원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없으며 △최순실, 문고리 3인방, 정윤회 등 비선 실세들을 알지 못하고 △대통령과 독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자신의 허물로 인해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과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가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참담한 심정”을 말했음에도 “국정농단 및 불법 줄기세포 치료와 관련한 국민적 분노 상황을 이용해 고소인(황우석)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류 교수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들을 언급하며 비판적으로 논평하고 의견을 덧붙여 발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 박사가 정부 회의에 참석했고, 줄기세포 연구 승인을 요청한 것이 객관적 사실인 이상 이를 기초로 한 비판은 상식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 황우석 박사. 사진=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 황우석 박사. 사진=미디어오늘 자료 사진.

실제 황 박사는 지난 2016년 7월 세계미래포럼 주최 강연회에서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차병원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계획 승인 관련 회의에 참석해, 창조경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후배들이나 동료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차병원에 다시 문을 열어준 정부 조치에 존경하고 감사드린다”며 “남은 인생 동안 미완성의 완성이라도 이루고 싶다”고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차의과대학의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 계획을 조건부 승인한 지 열흘 남짓 지난 시점이다.

시사저널은 이듬해 익명의 연구자 발언을 인용해 “황 박사는 박 대통령이 2000년대 초반 국회의원을 할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 등과 2014년 이전 잦은 접촉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정부 부처가 차병원 및 황 박사의 규제 완화 요구를 검증 없이 받아들였다는 학계 우려와, 규제 완화 이후 황 박사와 연관된 코스닥 상장기업 주가가 상승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동아일보는 정윤회씨 측근과 황 박사 인연을 보도한 바 있다.

류 교수는 “황 박사가 고소장을 제출한 뒤 검찰 조사 보고서에도 내 발언은 개인 감정이 아닌 학자적 양심에 따른 것이며 제보 동기가 불순하지 않다고 적시돼 있다”며 “다른 전문가들이 인터뷰를 꺼리는 상황에서 인터뷰에 나섰는데 앞으로는 이런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류 교수는 자신이 국립대 교수 신분이라는 점이 고소장에 언급된 부분도 지적했다. 황 박사는 고소장에서 “(류 교수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명예훼손 행위는 국립대 교수라는 자가 벌인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악질적 범행으로서 비방의 목적이 명백히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나는 과거 줄기세포 논문 조작 제보 이후 원자력병원으로의 복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연구자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2년 간 거리를 헤매다 몇 년 후 전문의가 돼 생계를 이어나갔고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연구윤리학계 학자로 자리 잡았다”며 “(황 박사가) 국립대 교수 신분을 언급한 것은 불이익을 주기 위해 앙심을 품은 것 같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오는 9일 오후 류 교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공판을 진행한다. 황 박사는 이날 직접 법정에 출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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