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아내와 자녀, 재산 은닉, 학력 위조. 지난 1일 MBC ‘PD수첩’은 불교계 ‘큰스님’에게 3가지 의혹을 물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지난해 10월 총무원장 선거 당시 제기된 이 의혹들을 딛고 총무원장에 올랐다. 논란의 중심은 숨겨진 아내와 자녀, ‘은처자’ 의혹. 설정 스님은 숨겨둔 딸로 지목된 전아무개씨를 “수덕사 주지 때 입양한 아이들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지만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의혹이 가라앉은 지금 PD수첩이 추가 정황을 입수해 보도했다. 조계종은 이를 “불교를 파괴하기 위한 시도”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조계종이 PD수첩을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이후 조계종 인사들의 MBC 항의 방문이 이어졌다. 불교 매체들은 PD수첩을 ‘시청률 욕심이 부른 황색 저널리즘’, ‘부실한 불법 취재’라고 비판하고 있다. PD수첩 제작진은 왜 이 문제를 도마에 올렸을까.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박건식 PD수첩 팩트체크 팀장을 만났다.

-‘큰스님께 묻습니다’ 편은 왜 기획했나?

“관련 제보들은 꾸준히 들어왔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던 것이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안 잡힐 때가 있다. 그러다 지난 4월 유해진 PD가 추가 증거를 확보했지만 다른 방송을 먼저 준비하게 됐다. 이후 강효임 PD가 내용을 다시 살펴본 뒤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이번에는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 있었다.”

-출발점이란 뭘 말하는 건가?

“설정 총무원장이 그의 자녀로 추정되는 전씨에게 10년 간 돈을 보낸 내역을 입수했다. 설정 스님 친인척뿐 아니라 사찰 이름으로도 송금됐다. 부인으로 추정되는 김아무개씨와 전씨가 여러 차례 동반 출국한 기록도 입수했다. 다음으로 전씨 주소지를 파악했다. 전씨가 5~7년 간격으로 총무원장 친인척 거주지를 옮겨 다니더니 총무원장 선거 때쯤 몇 개월 단위로 주소를 옮겼다. 전씨는 설정 총무원장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낸 적이 있다. 그때 전씨 나이가 9세 정도였으니 실제 준비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김씨가 했을 것이다.”

설정스님이 전씨에 대한 송금 내역 등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은 가운데 조계종은 송금 내역 보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은처자 의혹을 보도한 뒤 설정 스님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한 ‘불교닷컴’ 측이 소송 중에 입수한 정보를 방송에 내보냈다는 것이다. 

“다툼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 보도, 예컨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재판 관련 보도 역시 재판부나 검찰 발로 나온다. 원칙적으로만 본다면 검경은 수사 중 기록이나 정보를 발설하면 안 되고 언론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이번 보도에서 송금 내역 등은 화면에 사용하지 않았다. 정보를 파악한 뒤 CG로 설명했다.”

▲ 박건식 MBC 'PD수첩' 팩트체크팀장.
▲ 박건식 MBC 'PD수첩' 팩트체크팀장.

-조계종은 PD수첩이 악성 매체와 결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불교 전문지면서도 비판을 못하는 매체가 악성매체일 수 있다. 불교 전문 매체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게 조계종을 위해서도 더 나았을 거다. 모든 소문이 외부로 흘러나와 결국 지상파가 다루게 한 책임은 불교 매체에도 있다. 다 알려진 문제를 비판했다고 지적한다면 독재 국가 아닌가. 발언이 두려운 사람들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에 집중한다. 견지망월(見指望月·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은처자 의혹 규명이 왜 중요한가?

“불교는 국가 재정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종교라 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 문화재 유지보수비, 사찰 방재 사업비, 문화재 관람료(사찰 입장료) 등이 모두 국민 세금에서 나가지만 재정 투명도는 높지 않다. 국가 세금이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 공적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에 1000만 불교 신도가 있고 그만큼 지도자 영향력이 크다. 종교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 핵심은 도덕성이다. 불교 종헌종법에는 처자식을 소유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방송금지가처분 소송 과정에서 설정 스님 측은 무엇을 근거로 이 의혹을 반박했나?

“지난달 27일 심리 때 조계종 측 법률대리인이 전날 설정스님의 무정자증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 설정 스님이 20대에 정관 수술을 받았고, 무정자증이라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전문가 6명에게 의견을 받았다. 전씨가 태어난 1990년에도 설정 스님이 무정자증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증거가 없고, 무정자증 원인이 정관수술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요지로 반대 소견서를 냈다.”

-전씨는 해외로 출국해 소재지 파악이 안 된다. 밝힐 수 없는 의혹을 제기한 것 아닌가?

“언론은 수사 기관과 다르다. 체포, 압수수색 등 강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합리적 의심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박근혜 7시간’ 역시 결정적 증거는 없었지만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 관계에 대한 추론에서 많은 사실이 확인됐다. 정황 증거, 정황의 일관성,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 등이 중요하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부장판사 김정운)는 지난 1일 조계종이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MBC는 조계종 소속 고위 승려들의 비위 행위에 관한 의혹 제기를 통해 종단의 투명성 및 도덕성 향상 등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제출한 방송 대본, 영상 등을 검토한 결과였다. 박 팀장은 이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가처분소송의 위험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은 사전 검열을 하게 만든다. 4월30일 12시에 대본을 제출한 뒤 6시간도 안 돼 조계종 측이 제출한 변론서에 인터뷰 내용을 빼 달라는 입장이 첨부됐다. 재판부 요구에 성실하게 응해서 낸 대본을 취재원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는 건 변호사 윤리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방송금지가처분이 강자의 언론 탄압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도 대단히 위험하다. 이번 심리 때 화우, 동인 등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법무법인 변호사 8명이 들어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박 팀장 휴대전화로 끊임없이 전화가 왔다. PD수첩 방송을 비판하는 불교계 인사들의 MBC 항의 방문 계획을 알리는 전화였다. 지난 3일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등에 이어 이날 오후에도 해인사 기획국장과 교무국장 등이 MBC를 찾았다. 박 팀장은 “조계종에서 왜 항의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쉬운 예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에 대해 충남도가 대응하면 배임이다. 도민 혈세를 도둑질하는 것이다. PD수첩이 제기한 의혹은 설정 스님과 현응 스님 개인 문제이다. (편집자 주 : PD수첩 1일자 방송에는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과거 신도를 성추행하고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 사용을 남발했다는 의혹도 담겼다.) 현직 총무원장이고 교육원장이라는 점에서 이미지에 영향은 받겠지만 조계종이 전면에 나서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MBC 드라마 PD 성추행 사건에서 MBC가 당사자를 위해 대응한 적 있나? 되레 징계를 했지. 조계종은 명명백백하게 사실관계 여부부터 파악해야 한다.”

▲ 박건식 MBC 'PD수첩' 팩트체크팀장.
▲ 박건식 MBC 'PD수첩' 팩트체크팀장.

-조계종은 “조계종에 대한 편향된 의식을 갖고 있는 최승호 MBC 사장이 공영방송을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지금 본부장은 PD들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어 한다.(웃음) 지난 파업의 가장 큰 목적도 ‘자율성 보장’이었다. 그리고 최 사장이 가장 세게 비판한 종교는 기독교다. 크리스마스 때 순복음교회를 비판한 적 있었다.”

-PD수첩 팩트체크팀장을 맡고 있다. 무슨 일을 하나?

“취재 단계에서부터 사실 검증을 해나간다. 방송 일주일 전 가구성안이 제출되면 관련된 원본 데이터를 찾아본다. 대본, 자막, 앵커 멘트, 최종 대본, 자막 등 방송에 나가는 모든 것들을 다 체크한다. ‘이중 잠금장치’라고 보면 된다. 취재진이나 제작진의 경우 내부자 입장에서 실수가 눈에 안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제3자의 눈으로 ‘교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검증을 한 사례가 있나?

“지난 1월 ‘스텔라데이지호, 국가의 침몰 편’을 예로 들 수 있다. 초기 구성안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당시 수역을 ‘그날 바다는 잔잔했고, 화창했습니다’라고 묘사했다.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쾌적한 기온에 날씨는 화창했고’라고 설명했다. 팩트체크팀은 전 세계 바다 수역의 파고 등 구체적 기상 정보 데이터가 존재하는 서핑 전문 사이트를 발견했다. 확인 결과 당시 파고는 3~5m로 ‘잔잔하다’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기상청을 통해 거듭 확인한 뒤 제작진에 전달했다. 대본은 ‘사고해역 풍랑은 13급 가운데 7등급이었다’고 수정됐다. 파고가 높고 약하게나마 풍랑이 일었다면 배 침몰 원인을 전적으로 배의 부실이나 노후화로 단정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부분이었다.”

-다음 방송은 어떤 내용인가?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우이동에서 유골이 발견됐는데 한국 전쟁 시기 피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민간인 학살 증거가 나왔다. 진실의 단초를 밝혀줄 유해였지만 예산 부족으로 6구만 수습한 뒤 그 자리를 덮어뒀다.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기본법이 제정됐지만 소멸 시효 경과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진상 규명 작업이 중단됐다. 멈춰버린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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