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2015년 1월 10일 추방 당했다. 원치 않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도착하는 날 남편은 사업을 접었다. 뜻하지 않은 은퇴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그 일이 있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도 일을 하고 있을 테니까”라고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2014년 북한 여행기로 책을 내고 언론에 글이 연재되자 한국에서 초청 메시지가 왔다. 전국을 돌며 강연했다. 북한의 변화상을 보여줄 사진과 함께 자신이 느낀 북한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놨다. 그런데 그해 겨울 ‘통일콘서트’라는 이름의 열린 토크쇼에서 한 발언이 화근이었다. 언론이 그 발언을 문제 삼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입에서도 그녀와 관련된 일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아니 대통령이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가, 한 아줌마가 겨우 몇 백명 모아놓고 하는 강연내용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언급을 하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언급한 뒤 국가보안법 처벌 얘기까지 나왔다. 보수단체는 그녀를 강제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발이 이뤄졌다. 그녀는 피의자로 조사 받았다. 법무부는 강제출국 조치를 내렸다. 재미동포 신은미 씨 이야기다.

신씨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억울해서 못살겠다. 대동강맥주 맛있었다. 국보법 위반, 강제출국, 5년 입국금지, 옥류관 냉면 맛있었다. 혐의없음”이라고 썼다. 불과 3년 전 한국사회와 현재 한국사회의 간극을 표현했다. 

신씨는 미디어오늘과 서면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뒷얘기 동영상을 보는데 북에서 제공한 냉면이 맛있었다고들 말하더군요. 그 순간 갑자기 폭소가 나왔습니다. ‘아 냉면은 괜찮은데 맥주는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언뜻 들어 웃음이 나왔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동강맥주와 평양냉면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어떤 취지인가?

“제가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으로 그들이 내세운 게 세 가지였습니다. 저의 강연 내용 중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북한의 강물이 깨끗하다’ ‘북한의 휴대폰 수가 250만을 넘었’”는 발언을 문제삼았어요. 저는 조사 받으면서 화도 났지만 웃음도 나왔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질문이에요. 심지어 검사가 ‘북한에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짜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땐 ‘아, 이건 완전히 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기야 검사들이 그렇게 ‘멍청한’ 바보들이 아니겠지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려니 그런 질문도 해야 했겠지요. 어떤 때는 질문 하면서 제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질문 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어쨌든 ‘대동강맥주가 맛있다’고 말해 그 난리를 피웠는데 모두들 ‘옥류관 냉면이 맛있다’고 말하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음식 찬양은 괜찮은데 술 찬양은 안되는구나’라는 코미디같은 상황이 하도 우스워 글을 올렸습니다“

신씨는 ‘재미 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책을 쓰고 그 내용을 한 언론매체에 시리즈로 기고하면서 독자의 큰 관심을 받았다. 책 내용은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을 재미동포인 신씨가 여행 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수필이다. 신씨의 책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우수문학도서’로 지정됐다. 신씨를 직접 보고 얘기 듣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리고 신씨는 2014년 봄부터 전국을 돌면서 강연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신씨는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와 함께 통일콘서트를 열었다. TV조선은 2014년 11월 21일 리포트에서 “두 여성이 묘사한 북한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라며 침이 마르도록 찬양을 이어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신씨와 황씨 모두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는 “하지도 않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찬양했다’고 하지 않나, 신은미가 통전부의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활동한다고 낙인찍지 않나”라며 “이른바 신은미 종북 콘서트 사건은 2014년 현대판 종북 마녀사냥의 대표 사례”라고 비판했다.

▲ 2014년 11월21일 방송된 황선-신은미의 토크콘서트 주권방송 촬영 동영상. 갈무리
▲ 2014년 11월21일 방송된 황선-신은미의 토크콘서트 주권방송 촬영 동영상. 갈무리

- 현재 한국사회와 비교하면 상상하기 어렵다. 정권 차원의 기획이 있었을 거라는 얘기도 많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유독 같은 해 겨울에 한 강의가 문제가 돼 온 언론이 종북몰이를 해 대는데 몹시 당황했습니다. 제 책은 그해 문체부로부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고 통일부는 저를 출연시켜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주위 사람이 ‘정윤회 문건 사건 그리고 곧 있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윤회 문건 사건이 뭔가 싶어 기사 몇 개를 읽어봤지만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통합진보당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니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경제 정책은 중도, 그리고 강한 민족주의 성향은 오히려 우파에 가까운 정당이라고 보였습니다. 그런데 유권자도 아닌 법원이 정당을 없애려 하다니 이 일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이런 일에서 사람들 관심을 돌리려고 한낱 해외동포 아줌마를 이용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사 마지막 날 부장검사가 제게 그러더군요. ‘제 위에 총장 있고 그 위에 또 있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자신이 의도한 것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냥 훌훌 털어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래서 뭔가 있긴 있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일부 사실이었다는 걸 나중에 ‘김영환 비망록’이란 걸 보고 알았습니다. 비망록엔 김기춘 비서실장이 ‘종북콘서트’를 통진당과 연관 지어 홍보하라는 지시가 써있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 박근혜 재판에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조윤선 수석이 신은미씨 책을 우수문학도서에서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하더군요. ‘참으로 한심하고 허접한 사람들이 조국의 국정을 운영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신씨를 국가보안법으로 옭아 메고 강제추방하기까지 정권 차원의 기획이 있었다는 것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서 추정할 수 있다. 업무일지에는 “통일부 - 종북인사 신은미 동영상 – 내림” “종북토크 - 통진당 해산 찬성 쪽 여론변화”, “종북콘서트 - 국민혼란 초래 왜곡” 등의 말이 적혀 있었다. 2014년 11월 19일 조계사 경내에서 통일콘서트가 연 뒤 11월 22일자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일지에는 “황선 & 신은미 토크콘서트 장소제공 관련 조치 요”라고 쓰여져 있었고, 실제 통일콘서트 개최 장소였던 부산상의와 경북대학교, 대구YMCA는 갑작스레 장소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신씨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익산 통일토크콘서트 폭발물 테러범 오세현의 인적사항 마저 적혀 있었다”며 “익산 폭탄테러 사건은 절대 단독범행이 아니다. 당시 강연자의 한 사람으로서 단상에 서 있던 저는 똑똑히 봤다. 일찍부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중년의 한 남자가 강연이 시작된 지 몇 십 분이 지나자 범인에게 자리를 인계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 사람이 바로 공범들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통일콘서트에서 고등학생 3학년 오씨는 인화물질을 던져 2명이 화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

신씨에게 강제출국 조치를 내린 재판부의 논리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신씨는 추방 당하고 서울출입국관리소를 상대로 강제퇴거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행정5단독)은 “신씨의 발언 내용에 북한이 내세우는 주체사상 등을 직접 찬양하거나 선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고, 폭력적 수단의 사용을 선동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아 국보법위반의 죄를 범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외국인의 강제출국 등을 결정할 때는 그로 인해 입게 될 당사자의 불이익보다 국가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공익적 측면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신씨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었다는 사정이 인정된다”고 신씨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 위반은 아니지만 위험해 보여 강제출국 조치는 정당하다는 얘기다.

- 서울행정법원 판결도 법리적으로 이상한 대목이 많다. 당시 재판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나?

“말이 안되는 판결이지요. 1심에서 판사가 ‘이 사건은 (통일콘서트를 함께 한) 황선씨 재판의 결과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으니 황선씨 재판 결과를 보고 다시 심리하겠다’고 했답니다. 황선씨가 통일콘서트 등 이런저런 건으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황선씨 재판에서 통일콘서트 부분이 무죄가 나왔어요.(통일콘서트 발언으로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황선씨의 경우 공소사실 50건 중 49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니 당연히 제가 승소해야 하는데 패소한 거에요. 판결 이유 중의 하나가 정말 웃겼습니다. 제가 SNS를 통해 충분히 소통할 수 있으니 굳이 한국에 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해외동포들은 한국의 가족, 친지, 친구들과 어떤 방법으로든 의사소통이 되면 모국에 오지 말라는 말인가요? 참 어이가 없더군요. 2심 판결은 더 기가 막혔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없지만 국가의 이익에 큰 위해를 가할 수 있고, 공익을 위한 차원에서 추방 조치가 적당하다’는 판결인데 제가 추방된 것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면 무효가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언론을 동원해 소요를 일으킨 건 정부지 왜 저인가요? 그 전까지 전국을 돌며 같은 내용의 강연을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신씨는 추방 이후 세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2016년 여름 함경북도 두만강 주변에 대홍수가 일어나 십만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신씨는 2017년 5월 북한을 방문해 수재민들을 위한 쌀을 전달했다. 해외동포와 외국인들로부터 4천만원 상당의 기금을 모아 중국에서 쌀 58톤을 구입하고 압록강 철교를 건너 쌀을 전달했다.

2011년 북한으로 첫 여행을 떠났을 때만 해도 신씨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남편 혼자 보낼 수 없어서 따라 나선 여행”이었다. 신씨는 여행 가기 전 북한에 대한 인식이 한국의 보통사람과 비슷했다고 털어놨다.

“사실 저는 더 했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고, 아버지는 6·25전쟁 때 압록강까지 진격한 참전 장교였으며 외할아버지는 제헌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밀어부친 대표적인 자유당 국회의원이었으니까요. 저는 이 사실도 몰랐어요. 한국에서 강연할 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을 치룬 분들께서 오시길래 도대체 국가보안법이 뭔가 하고 유투브에 들어가 찾아본 적이 있었어요. MBC에서 제작한 걸로 기억하는데 제목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였던 것 같아요. 국가보안법에 대한 다큐였어요. ‘이 법안이 잘돼야 인민공화국이 되지 않고 자손만대에 자유국가를 물려줄 수 있다’는 자막과 함께 화면에 외할아버지의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랐지요. 그리고 그 분들께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리고 후일 그 법에 제가 곤욕을 치룰 지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오네요. 할아버지는 법을 만들고 손녀는 그 법에 의해 조국에서 추방되고 지금은 그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신씨의 외할아버지는 자유당 원내총무를 지낸 박순석 의원이다. 1948년 9월 국가보안법 전신인 내란행위특별조치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제출되자 찬반 논쟁이 일었고, 박순석 의원은 “농사짓는 농민은 피를 안다. 피를 한 포기 뽑자면 나락을 다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피를 안 뽑을 수 있느냐”며 법안에 찬성했다.(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신씨는 왕복 320킬로미터 거리의 한인 교회를 한 달에 한번 찾아가 동포들을 만난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강연 요청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과는 주로 SNS를 통해서 소통한다.

최근 신씨는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관련해 “자신이 평양에 가면 수백만 평양 시민들이 연도에 늘어서서 종이꽃을 흔들며 자신을 환영할 것이라는 걸 트럼프는 잘 알고 있다”며 “마치 ‘굴복한 적국에 승전국 수장이 나타나는 듯한 장면’이 전 미국에 퍼져 나갈 때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을 그는 잘 내다보고 있다. 싱가포르, 몽고, 스위스, 판문점, 제주도 등 연막을 피우고 있으나 북미정상회담은 아마도 평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씨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은 정말로 매우 트인(open) 사람이고 우리가 보는 모든 점에서 아주 고결한(honorable) 사람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곧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미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그 합의를 잘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5년 동안 입국이 금지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건강이다. 신씨는 “친정 어머님이 대신 미국에 일 년에 한 번씩 오셔서 저희와 몇 개월 지내시다 가시는데 그것도 이제는 점점 힘들어 하신다. 더 오래 못 다니실 것 같다”며 “시어머님은 더 연세가 많으신데 거동이 불편하셔서 여행은 하실 수가 없다. 혹시 부모님들께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저는 갈 수도 없는데 그게 제일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신씨의 사건이 정권 차원에서 기획됐는지 재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불의한 정권에서 자행된 억울한 재미교포의 국내 추방 사건이다. 자신의 고향땅을 밟고 싶어도 말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추방하는 것은 이제 사라져야 할 잘못된 과거의 역사라고 생각한다”며 신씨의 입국 금지 조치를 해제시켜 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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