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가 바닥에 사방에 퍼져 있는데 라이터를 들고 서 있는 것 같다”

청와대 관계자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언론 기고글을 두고 한 말이다.

조선일보가 2일자 1면 머릿기사로 문정인 특보의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를 인용해 “만약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주한 미군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채택된 뒤에는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뒤 청와대는 문 특보의 기고글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학자로서 표현할 말이라면서도 문재인 대통령 입장과 다르다고 밝혔고,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나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다. 평화협정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야당은 일제히 문 특보의 언론 기고가 정부의 입장이냐며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문 특보의 파면을 요구했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너무 앞서간 게 사실이고 어떻게든 남북정상회담과 향후 북미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보수세력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안보상업주의에 바탕을 둔 언론의 전형적인 논란 키우기에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문정인 특보 발언의 전체 맥락을 보면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에 가깝다.

문 특보는 “주한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면 한국의 보수 진영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중대한 정치적 딜레마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내놓고 청와대 반응이 나오자 ‘“문정인 발언, 항상 실현됐다”…주한미군 철수 논의 현실화되나’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마치 문 특보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현재 정부는 부인하지만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곧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몰아가면서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의 공백을 강조하고 여전히 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공포감을 조장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문 특보를 포함한 누구도 거론하지 말아야 할 금기어일까. 오히려 정반대다. 주한미군 문제는 남북미 회담 국면에서도 그렇고 회담 합의 이후 어떻게든 털고 가야할 핵심 의제 중 하나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문정인 특보는 비정치인으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우리 사회 얘기를 한 것이다. 공격받을 소지도 있지만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미국에서 먼저 거론했던 내용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가 예민한 문제는 맞다. 중국하고도 연결돼 있다. 중국도 주한미군에 대한 걱정이 많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 의제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하지 않자 오히려 중국이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간 측면도 봐야 한다”며 “이런 이슈에 대해 미국도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문 특보가 철수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논란이라고 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말했다.

▲ 문정인 특보가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DC의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오찬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문정인 특보가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DC의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오찬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북미회담에서도 주한미군 문제가 나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문 특보의 발언이 다소 앞서간 내용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논의해야 할 문제이며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악마’의 발언은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대로라면 한반도 종전 선언이 도출되면 주변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러면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위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후속조치로서 주한미군 문제가 나올 수도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여론도 확산될 수 있다. 언론이 문 특보의 기고글을 놓고 곧바로 주한미군 철수로 등치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주한미군 문제를 금기시해야 하는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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