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넘게 구두 신고 걷고 뛰어다니다 발이 뒤틀리고 물혹이 생겼는데도 고충을 말할 곳이 없었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 문혜진 지부장(26)은 몸이 아파도 회사에 제대로 말도 못하고 견디는 직원을 많이 봤다. 입사 1년차 후배 여직원이 자신의 발을 보여주며 고충을 털어놨다. 후배의 엄지 발가락 근처엔 높이 2cm 가량의 물혹인 ‘결정종’이 생겼다. 회사가 지급하는 구두 선 바로 아래였다.

또 다른 동료도 문 지부장을 찾아와 발 변형 때문에 구두를 신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너비가 좁고 딱딱한 재질의 구두를 장시간 신고 다니다 구두선 주변 피부가 변형됐다. 무지외반증(발 변형), 힘줄염, 윤활막염은 직원들 사이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것이 문 지부장이 노조 결성에 나선 주요 이유다. “구두를 바꾸든, 휴식시간을 보장하든 업무강도를 조금만 덜어도 개선되는데” 직원들이 회사에 제대로 요구도 못하는 분위기였다.  

▲ (주)케이에이 지상직 여성 직원들의 발 변형 모습. 왼쪽 사진은 결정종 진단을 받은 직원의 발이고 오른쪽은 발에 변형이 온 직원의 사진이다.
▲ (주)케이에이 지상직 여성 직원들의 발 변형 모습. 왼쪽 사진은 결정종 진단을 받은 직원의 발이고 오른쪽은 발에 변형이 온 직원의 사진이다.

문 지부장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분 100%를 소유한 ‘(주)케이에이’(이하 KA) 직원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제휴 외국항공사의 지상여객 서비스를 전담하는 하청업체다. 이들은 티켓 발권, 탑승 수속, 아동·장애인 승객 지원, 라운지 관리 등 승객이 공항 도착부터 비행기 탑승 전까지 항공사로부터 제공받는 모든 서비스를 담당한다. 지상여객서비스직을 줄여 흔히 ‘지상직’이라고 부른다. 문 지부장은 지난달 30일 인터뷰에서 노조 설립 배경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기본급 102만원, 3년 차가 10년 차보다 월급 높기도”

노조 호응도는 높다. 문 지부장이 속한 ‘출입국팀’ 140여 명 중 100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KA 전 직원은 450명쯤이다. 문 지부장은 "과반 이상 가입이 목표"라고 했다.

문 지부장은 지상직이 처한 문제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계없는 업무배치 등 세 가지를 꼽았다. KA 지상직은 3년 차까지 기본급이 102만 원이다. 문 지부장은 “여기에 조정수당, 교통수당 등이 붙고 연장노동을 최대로 해야 한달 200만 원을 겨우 채우는 구조"라고 했다. 문 지부장은 “임금 인상률도 낮아 내가 연장근무를 많이 하면 10년차 선배보다 월급이 많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불규칙한 장시간 노동 때문에 지상직 퇴사율도 높다. 문 지부장은 “출입국팀 140여 명 중 50명 정도가 수습사원이고 외항기팀은 70% 정도가 6개월 이하 수습사원일 정도로 퇴사율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KA는 지난해 신입사원을 최소 6회 ‘00명’ 규모로 채용했다.

▲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는 2일 오전 KA의 원청 회사 그룹사인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앞에서 노조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는 2일 오전 KA의 원청 회사 그룹사인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앞에서 노조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비행기 연착, 기상 문제 등이 발생하면 이들은 대기 지시를 받는다. 이렇게 한달 2~4번은 17~20시간씩 연속 근무한다. 자정에 퇴근해 2~3시간 자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는 일이 반복된다. 적정한 수면시간, 노동시간을 조정할 권한도 없다. 심하면 2~3시간 자고 출근한 날이 한 달에 6일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지상직 대부분이 피로 누적으로 병치레가 잦다. 임신 초기(3~4개월)에 유산한 직원도 많았다. 문 지부장은 “3년 동안 확인한 유산 사례만 기혼자 10명 중 5명 꼴이었다”고 밝혔다.

문 지부장은 "출입국팀의 게이트 수속 업무는 주먹구구식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강풍이 불어 김포공항행 ‘에어부산’ 항공기가 인천에 내리면 자기 담당이 아니더라도 갑자기 투입된다. 그는 “원청이 직접 하던 세관 서류를 일일이 준비해 게이트까지 가져다 주게 됐고, 중국 관광객이 늘면서 규정을 어긴 초과수하물을 3층에서 1층으로 직접 운반해주면서 영수증을 다시 끊는 업무도 굉장히 늘었는데, 인력은 충원이 안되니 게이트 수속 때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 만들겠다”

문 지부장은 회사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지상직을 보고 흔히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한다. 화려한 항공사 유니폼을 입었지만 처우는 열악하다. ‘오래 다니고 싶은 괜찮은 직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상직을 ‘일회용’으로 보는 시각과 싸우고 싶다고 했다. 문 지부장은 “이 업계엔 ‘지상직 하고 싶은 애들 차고 넘치니, 못참겠으면 나가라’는 생각이 깔려있다”면서 “사람을 일회용으로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 KA 전 직원 Z씨의 2017년 ○월 취침시간표. 취침시간이 4시간 미만이었던 날이 8일이나 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KA 전 직원 Z씨의 2017년 ○월 취침시간표. 취침시간이 4시간 미만이었던 날이 8일이나 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노조가 있는 항공사 하청업체 직원들은 ‘명절 보너스’를 받는데 그동안 자신들은 ‘5만원 치 포인트’를 지급받고 그 포인트로 명절선물을 신청해 받아왔다. 급여명세서엔 ‘5만 원 공제’가 찍혔다. 자신의 복지 포인트로 명절선물을 스스로 구입한 셈이다. 

문 지부장은 2일 오전 KA의 원청회사 그룹사인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원 일동의 명의로 “이제는 제대로 살아보려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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