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주 52시간 노동을 앞둔 신문사들은 부랴부랴 TF를 꾸렸지만 벌써부터 노사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어디까지를 업무 연장으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다. 업계 1위 조선일보는 최근 52시간제 TF를 만들었지만 낙종 압박 등으로 마냥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없어 답답한 분위기다.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은 “지금 쟁점 가운데 하나는 취재원과 식사를 근무 시간으로 보느냐 안 보느냐다. 한 부서에서 식사는 근무시간에서 빼라는 지침이 나왔는데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라며 “준법 투쟁 차원에서 취재원과 식사를 하지 않는 방법도 있겠으나 단일한 대오 형성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사시간 지침과 관련 조선일보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사회부 방침이 오늘(4월30일) 나왔다는 데 점심·저녁 시간 각 1시간30분씩 도합 하루 3시간을 근무시간에 넣지 말라고 한다”며 “우리는 취재원 만날 기회가 거의 밥 때가 전부인데 이걸 빼라니. 그러면서도 그로 인한 결과(취재원 안 만나서 기사질이나 아이디어 떨어지는 거)는 본인 책임이라고 한 거 보고 정말 어이가 없다”고 회사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다음날 아이디어 내려고 밤에 전화 돌리고 인터넷 뒤지고 하는 것도 이제 근무로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며 “만날 남의 티끌은 물어뜯으면서 이런 적폐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밑으로 지침 내리고 바뀐 근로기준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핑계대지 말라”고 조선일보 경영진을 강하게 비판했다.

▲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주 52시간 노동을 앞두고 있는 신문사들은 부랴부랴 TF를 꾸렸지만 벌써부터 노사 갈등을 예고한 상황이다. 당장 어디까지를 업무 연장으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다. ⓒiStock
▲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주 52시간 노동을 앞두고 있는 신문사들은 부랴부랴 TF를 꾸렸지만 벌써부터 노사 갈등을 예고한 상황이다. 당장 어디까지를 업무 연장으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다. ⓒiStock
중앙일보는 지난 3월23일 회사가 중앙일보·JTBC통합노조에 재량근로제 도입을 제안했으나 노조가 회사 제안을 거부했다. 통합노조는 4월12일자 노보를 통해 “재량근로제 도입 요건을 명시한 근로기준법 58조(근로시간 계산의 특례)에 따르면 사용자가 업무의 수행 수단 및 시간 배분 등에 관하여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서면 합의에 명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통합노조는 “재량근로제는 업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중앙일보·JTBC 기자의 근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신선아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많은 회사가 재량근로제 도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방 도입은 어려울 것”이라 전했다.

경향신문 노조 자체 설문 조사 결과 노동 시간이 52시간 이내라는 조합원은 34.8%, 52~60시간 미만이라는 조합원은 41.5%, 60시간 이상이라는 조합원은 23.8%로 나타났다. 한대광 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장은 “언론노조 소속 사업장 가운데 주 52시간에 해당되는 곳이 대표적으로 연합, 한겨레, 경향, 한국, 서울 등 5개사다. 우리가 재량근로사업장이냐 아니냐, 재량근로 같은 유연근무를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입장 정리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민은 또 있다. 스포츠 야구 담당 기자들은 월요일을 빼고 거의 매일 야구 경기를 취재한다. 이 경우 저녁에 4~5시간을 근무한다. 당연히 기자들은 근무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문화 담당 기자가 저녁 공연을 관람하거나 정치·사회부 기자들이 취재원과 술자리를 하면 모두 저녁 근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를 근무로 봐야할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한 지부장은 위와 같은 사례들을 언급하며 “만약 책을 읽는 업무라면 회사에서 다 읽지 못해 집에서 추가로 다 읽었을 때 노동시간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신문은 지금껏 정확한 노동 시간조차 파악되지 않은 업종이라서 논의를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성재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장은 “회사는 아마도 유연 근무를 일부 적용하고 싶을 것이고 원칙적으로 법 위반이니 우리는 쉽게 받을 수 없다. 7월 전까지 세밀히 조율할 것 같다”고 밝혔다. 배 지부장은 “무조건 인력 충원 많이 하고 52시간 맞추라고 회사에 요구하기에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현실적 고민을 전했다.

일부 기자들은 ‘준법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연합뉴스 한 기자는 주 52시간 근무 제도를 두고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다. 나부터 제대로 지키기 위해 투쟁해나갈 것”이라며 각오를 밝혔다.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하는 데 있어 언론 노동자보다 회사에 더 큰 책임과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JTBC통합노조 자문을 맡은 김성중 노무사(노무법인 유앤)는 지난달 중앙노보에 △수습기자가 ‘하리꼬미’(밤새 관할 경찰서 여러 곳을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기자들 사이의 은어)를 하면서 연장 근로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한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며 △근로기준법 개정 이유만으로 심야수당(연장·야간 근로에 대한 포괄 임금으로 실제 연장·야간 근로 시간과 무관하게 매월 정액 지급 받는 돈)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며 △노조는 암묵적인 초과 근무가 발생되지 않도록 근로 시간 개선에 대한 이슈 제기를 해야 하며 △조합원은 노조 결정에 따라 자발적 초과 근무에 나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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