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종전·불가침 약속하면 왜 핵 갖겠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이 5월 중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하고 이를 대외 공개하는 데 합의했다. 또 30분 느린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로 통일하기로 했다. ‘미국 불가침 약속과 종전 선언 시 핵을 포기하겠다’는 김 위원장 발언도 공개됐다. 청와대는 지난 29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합의하고 확인한 내용을 추가 공개했다.

청와대가 굵직한 소식을 일요일에 전한 탓에 30일자(월) 1면은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청와대가 정상회담 이슈와 관련해 ‘의제 설정’에 그만큼 적극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30일자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모았다. 

▲ 한겨레 30일치 1면.
▲ 한겨레 30일치 1면.
경향신문 “김정은 ‘핵실험장, 내달 공개 폐쇄’… 북 ‘비핵화 행동’ 천명”
국민일보 “김정은 ‘불가침 약속하면 왜 核 갖고 어렵게 살겠나’”
동아일보 “김정은이 먼저 ‘완전-신속 비핵화’ 꺼냈다”
서울신문 “北 비핵화 첫발… 5월 중 핵실험장 공개 폐쇄”
세계일보 “北, 내달 核실험장 공개 폐쇄… 비핵화 ‘첫발’”
조선일보 “트럼프 ‘잘되고 있다, 3~4주내 김정은과 회담’”
중앙일보 “이젠 북·미… 비핵화 결판 ‘뜨거운 5월’”
한겨레 “김정은 ‘미국이 종전·불가침 약속하면 왜 핵 갖겠나”
한국일보 “김정은 ‘핵실험장 폐쇄 공개’ 북미회담 선제카드”

논조 다른 조선·동아일보

보수를 대표하는 두 신문(조선·동아일보) 논조에 차이가 있다. 먼저 조선일보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지난 28일자 1면 제목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운만 뗐다”고 뽑았다가 이를 “운은 뗐다”고 수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회담 성과를 지나치게 축소·폄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와 비교하면 30일자 1면 기사(“트럼프 ‘잘되고 있다, 3~4주내 김정은과 회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반응을 담은 것이었다. 다만 ‘팔면봉’에선 “김정은, 곳곳이 무너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공개한다는데, 2008년 용도 폐기 영변 냉각탑 폭파쇼 再湯 아니길”이라며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 논란이 되고 있는 조선일보 28일치 1면.
▲ 논란이 되고 있는 조선일보 28일치 1면.
▲ 조선일보 28일치 1면.
▲ 조선일보 28일치 1면.
조선일보는 2면에서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 합의에 대해 “북한은 2008년에도 ‘핵 불능화’ 조치를 하겠다며 한·미 취재진을 초청해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장면을 공개했었다”며 “‘핵 폐기’ 의지로 받아들인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지만 북한은 그 직후 냉각 시설을 복구하고 핵 개발을 이어갔다”면서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풍계리 일대 지반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관측도 있다”는 설명과 함께 “핵 무력이 완성됐으니 추가 핵실험도, 핵실험장도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따라서 핵실험장 폐쇄는 북한으로선 잃을 것 없는 카드”,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의 핵심 이슈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완전한 비핵화’ 약속에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동아일보는 30일자 1면 제목을 “김정은이 먼저 ‘완전-신속 비핵화’ 꺼냈다”라고 뽑았다. 동아일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육성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미 수교를 조건으로 완전하고 신속한 비핵화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가진 비공개 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얘기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며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걱정하지 말라는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전했다.

핵 실험장 폐쇄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는 “비핵화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깜짝 제안’인 셈이다. 이는 원래 정상회담 의제에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판문점 회담의 성과를 기반으로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와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퍼즐을 맞추는 외교전의 주역을 맡게 됐다”며 “정직한 중개자에서 한발 나아가 창의적 외교가로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맡기 바란다”고 기대했다.

▲ 동아일보 30일치 1면.
▲ 동아일보 30일치 1면.
뜨거워진 진보 언론

한겨레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편집을 보여줬다. 지난 28일치 1면은 큰 화제였다. 1면과 마지막 면을 연결해 평소 두 배 크기로 1면을 제작했다.

한겨레는 30일자에서 “한국 언론사에 유례없는 시도”라고 자평한 뒤 “독자 여러분이 뜨겁게 호응해 주셨다. SNS에는 ‘역사적인 한겨레 1면, 잘 보관하겠습니다’ 등의 상찬과 함께 인증 사진을 올리는 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SNS 상에서는 28일치 1면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쏟아졌지만 소설가 고종석씨는 “한겨레의 첫 면과 마지막 면 통합은 오버”라며 “집에서 같이 구독하는 경향신문과 비교하면 한겨레에 유독 1면 배너(통단 제목)가 많다. 한 달에도 여러 차례. 일종의 선정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한겨레 30일치 2면.
▲ 한겨레 30일치 2면.
한겨레는 30일치에서도 13면까지 “남북 ‘평화의 새 시대’”라는 이름으로 정상회담과 남북 소식으로 채웠다. 한겨레는 핵실험장 공개 폐쇄에 대해선 “북미회담 앞 비핵화 투명성 선제조처”라고 평가했고 남·북·미·중 회담을 두고는 “당사국 회담 벌써 가시권”이라면서 기대를 드러냈다.

6면 “70년 단절 ‘남북 혈맥’ 연결해 ‘한반도, 하나의 경제권’으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는 “남북 경협이 ‘한반도 신경제지도’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며 “남북 간 물류와 인프라, 제조단지 조성과 자원 개발, 관광 산업과 농어업 협력 등 경제 협력 분야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10면에서는 “판문점 다리 건너 ‘되돌릴 수 없는 평화’로 가자”는 제목으로 김연철 통일연구원 원장 기고를 받았고 13면에서는 “달라진 2030 ‘북한 땅 밟고 유럽 여행 가고파’”라는 제목으로 2030 세대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겨레는 이 세대가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내용의 설문 조사를 언급하면서도 “남북 정상회담은 통일에 대한 2030세대의 생각을 얼마나 바꿔놓았을까”라며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긍정적인 반응만 담았다.

또 한겨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희화화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퍼나르던 50여개 블로그와 SNS 계정 등이 이달 초 갑자기 사라졌다며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매체인 ‘NK뉴스’를 인용해 배후에 국정원 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 한겨레 30일치 13면.
▲ 한겨레 30일치 13면.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한 뒤 “이를 넘는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확인할 과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 등 비핵화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와 함께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완성하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한반도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9개 면을 남북 정상회담 관련 소식으로 채웠다. 경향도 “남북 ‘혈맥 잇기’ 재기… 부산~유럽 ‘철도여행’ 꿈이 영근다”는 등의 기사를 통해 남북 경협에 대한 국토부의 장밋빛 전망을 소개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선언에 남북한 교통망을 잇는 방안이 포함되자 동해선과 경의선이 남북으로 연결되면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며 “하지만 거쳐야 할 과정이 멀고도 험한 일이다. 이로 인해 경기 파주 등 접경 지역 땅값이 들썩이고, 대북 관련 주가 상승도 이어진다지만 아직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냉정하게 비핵화 프로세스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 동아일보 30일치 사설.
▲ 동아일보 30일치 사설.
한국일보는 남북 정상회담에 긍정 평가를 내리면서도 남은 과제들을 강조했다. 이를 테면 10면 “서해 NLL 일대 커지는 ‘만선의 꿈’… 군사 합의 등 선결돼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일보는 “남북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안전한 어로 활동이 보장된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데 전격 합의하며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 지역의 긴장 완화와 남북 수산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 동안 조업에 제약이 많았던 서해5도 어민들은 벌써부터 황금어장 회복과 만선의 꿈에 부풀어 있다”면서도 “NLL 관련 군사 합의가 선결돼야 하는데다, 유엔 대북 제재로 북한의 수산물과 조업권 거래가 전면 금지돼 있어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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