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발표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성패의 가늠자로 통했던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내용 모두 명문화해 선언문에 담았다. 예상을 뛰어넘은 합의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언문 이름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이다.

판문점 선언은 가장 첫번째 항목에 자주 통일의 원칙을 밝히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방안을 담았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논의키로 했고 교류 활성화를 위해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했다.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포함한 국제경기에 공동으로 진출하기로 합의한 것도 눈에 띤다.

정상회담의 관건이었던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명문화했다. 남과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확성기 방송, 전단지 살포)하고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로 했다. 2007년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었던 서해북방한계선 일대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 같은 문제를 협의 해결하기 위해 국방부장관 회담을 포함한 군사당국자 회담을 개최하고 5월 중 장성급 군사회담을 우선적으로 열기로 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체결하는 로드맵도 담았다. 양 정상은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준수해 나갈 것, 군사적 긴장 해소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단계적 군축을 하기로 했다.

특히 양 정상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여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정상회담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 핵심 의제인 한반도 비핵화도 명문화했다. 양 정상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며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합의하면서 정상회담의 정례화 가능성도 열어놨다. 4차 정상회담이 이번 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이행했는지 점검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과 관련해 상당한 성과라고 분석했다.

이우영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이번 회담은 실패할 회담은 아니었다”면서 “그런데 선언문이 3페이지 넘어갈 정도로 디테일한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어쨌든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쓴 것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이 남과 북이 아니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시작하는 것도 특별히 눈여겨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공동식수 행사 때 공개된 식수 표지석에도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란 문구로 서명이 새겨졌다. 이우영 교수는 “두 정상의 이름과 직책으로 선언문을 시작했다는 것은 서로 쌍방 실체를 명백하게 인정했다는 뜻으로 상당히 중요한 문구”라고 말했다.

북은 핵문제의 당사자로 미국을 지목해왔지만 공식적으로 남측을 당사자로 인정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고 있어 핵문제 해결에 있어 지위를 확보한 것도 성과라는 지적이다. 종전선언을 언급한 대목도 양 정상이 최대치로 ‘정치적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 1층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 1층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김정은 위원장의 이날 언행들이 정상회담의 또다른 성과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례로 환담 중 문재인 대통령이 북측을 통해 백두산에 가고 싶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북측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솔직하게 사정을 털어놓은 것은 북측 최고지도자의 발언으로서 기대하기 힘든 내용이다.

이 교수는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 역시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로 이어나가면서 국제사회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줬다고 생각한다”며 “국제사회에 김정은식 세계화를 알리는 스타일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리설주 여사가 만찬에 참석하는 것도 보통 다른 국가들와 같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선언문에 담긴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이 이번 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요구해온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약칭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로 이미 결단을 내렸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이미 북미간 실무접촉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보장 및 북한의 핵 포기와 관련해 상당한 정도의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종전선언과 문재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 남북고위급 회담 개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등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판문점 선언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정 실장은 앞으로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면 남북 합의 사항이 순조롭게 이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는 “남북 사이 합의문에서 비핵화가 언급된 것은 처음이다. 평화협정 체결 문구 역시 그 이전 정상회담 합의문보다 진전된 내용”이라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기존 6.15와 10.4 선언 합의 내용을 담으면서 비핵화 문제와 종전 선언을 추가한 것은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합의의 목표와 시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군축을 하자고 하면 장사포 무기 등 구체적인 무기 축소의 대상을 정하고 폐기 시점 등을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이번 선언은 10.4 선언보다 밀도가 떨어지고 파격적인 내용도 덜하다. 각 항에 열거한 합의 내용들의 목표와 시점도 두루뭉술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 선언도 추상적이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은 여론 분위기 조성용이고 북미 회담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성격의 회담으로 생각한다”며 “만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계속 만나야 한다. 가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실질적인 합의 이행 조치들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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