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비서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해외 쇼핑’까지 챙긴 정황이 확인됐다. 비서실은 또한 조 회장 일가의 물품 운송 시 물품 상세 내역을 누락시키거나 ‘비서실 물품’으로 화물정보를 기록하라는 지침을 내려, 이같은 관행을 은폐한 정황도 확인됐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복수의 대한항공 비서실 발신 메일에 따르면, 비서실은 2009년 경 한 해외 지점장에게 “사모님께서 아래와 같이 지시했다”며 특정 물품 중 ‘제일 좋은 것 2개’를 구매해서 보내라고 지시했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비서실은 이어 ‘제품 카탈로그’를 보내라며 “유선상으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적었다. 지시 메일의 하단엔 ‘비서실 XX 드림’이라며 담당자 이름이 기재돼있다.

메일 제목은 ‘[비서실] 사모님 지시사항 전달’이었다. 발신자는 대한항공 비서실 코드인 ‘DYS’로 적혀 있다. 메일은 담당 해외 지점 외에도 해외 지역 인사 관리 책임자 및 지역 본부장 등에게도 함께 전송됐다.

또 다른 메일에 따르면 비서실은 유사한 시기 해외 지점장 등에게 ‘KKIP’(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지칭) 코드 물품의 운송 정보를 숨겨라고 지시했다. 물품 상세 내역을 공개하지 말라거나 ‘DYS(비서실 지칭)’ 코드를 붙이고 부득이 물품 내역 설명이 필요한 경우는 ‘유선’을 통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KKIP 물품 운송 관행이 비정상적임을 비서실도 인지한 정황이다.

▲ 비서실이 2008년 불상의 날에 보낸 'KKIP ITEM 관리 관련 유의사하 재강조' 지시 메일.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비서실은 2008년 특정한 날에 해외 지점장 등에게 “KKIP ITEM H/D 관련 유의사항 재강조 [지시]”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 “KKIP ITEM 운송 시 Handling 관련 유의사항을 아래와 같이 재강조 하오니 국내외 지점장은 유념하여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토록 업무에 만전을 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비서실은 아래 내용에서 KKIP ITEM 운송과 관련된 △문제점 △지점장 조치 사항 △기타 사항 등을 번호를 매겨 분류해 지침을 하달했다.

비서실은 문제점으로 △메일 내용에 최고 경영층을 직접 언급하는 것 △메일 수·발신처가 지점이나 팀 등 그룹단위로 지정돼 불필요한 직원에게 관련 내용이 공개되는 것 △ITEM(물품) 상세 내역이 적혀있어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하는 것 등 세 가지를 지적했다.

이에 따른 지점장 조치사항으로, 비서실은 메일 수신처를 개인 단위의 최소 수신처로 지정해 그룹 단위의 메일 발송을 지양하라고 지시했다. 비서실은 또한 메일 내용에 최고 경영층을 명기하지 말고 가능한 ‘DYS ITEM’으로 표시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비서실은 “운송 ITEM에 대한 상세 내역 기술은 지양하고 부득이 내용물 설명이 필요한 경우는 유선으로 실시하라”고 덧붙였다.

비서실은 물품 운송 등 전반적인 관리엔 “공항 지점장이 직접 F/U”라고 적어놨다. F/U는 ‘Follow Up’의 약자다.

KKIP 물품 특별 관리 외에도 해외 지점장들은 조 회장 일가의 특별 의전에도 신경써야 했다. 내부 사정을 아는 한 해외 지점 관계자는 “Y(조양호 지칭) 가족이 해외에 뜬다고 하면 한 달여 전부터 지점장, 일부 현지 한국 직원들의 업무는 완전히 중단된다고 보면 된다”며 “호텔, 식당, 지역조사를 하는데 시간을 쓴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고속도로에 있는 큰 회사의 이름을 다 외우는 지점장도 있었다. 물어봤을때 모르면 죽음이라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한 “한 번은 한 5성급 호텔 예약을 시키고 그 호텔 방에 가서 침대에 앉아 보고 샤워할 때 필요하다며 ‘커튼을 달아달라’ 요청이 와서 호텔에서 엄청 비웃음을 당한 적도 있다”면서 “문제는 이렇게 열과 성의를 다해 한 달 이상 준비했는데 결과는 지점장에게 폭언하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사람들은 주식을 과반수 이상 가지지도 않은 가족인데 왜 그렇게들 살고 왜 그걸 허용하느냐며 이해를 하지 못했다”며 “왜 개인 일로 여행을 오는데 지점장이 회사일을 놔두고 ‘따까리’를 하냐, 대한항공의 다른 주주들이 이를 알고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여객·화물기는 2008년 말 경, 해외 6개국 101개 도시를 정기적으로 운항했다. 2009년 경엔 국내외 39개국 117개 도시에 여객 및 화물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위 해외 지점장은 이들 도시 지점의 한 책임자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 측은 “(KKIP 물품 운송 등은) 관세청이 현재 조사를 하고 있는 사항으로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며 “(비서실이) 어떤 의도로 지침 메일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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