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복원되나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7일 열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표부 기능을 하는 남북의 상설 협의·연락사무소를 판문점에 설치해 운영하자고 제안할 방침이라고 복수의 언론이 전했다.

2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제”라며 “동시에 남북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기 위해 상설 협의체(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식 회담과 비공개 접촉 등 직간접적으로 이 방안을 북측에 전달했다”며 “북측의 명확한 반응은 아직 없지만 북한이 긍정적이라면 정상회담 의제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정상회담의 의제를 사실상 확정한 상태에서 북측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3월 29일 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의제를 1차 논의했고, 그동안 (의제에 대해) 협의를 북측과 진행해 왔다”며 “(북측과) 계속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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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북은 판문점 자유의집과 판문각에 각각 전화와 팩스를 주고받는 연락사무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오전과 오후 개시 및 종료 통화를 하고 필요할 경우 전화통지문(전통문)을 통해 서류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중앙일보는 “하지만 북한이 종종 일방적으로 전화를 받지 않고 응답하지 않으면서 연락 두절 상태가 되곤 했다”며 “서울과 평양에 상설기구가 생기면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할 수 있어 통신 두절 상태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서울과 평양에 대사관 격인 상설기구를 설치하면 남북 관계자들이 상시 만남을 통해 깊이 있는 현안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원칙대로 하자면 서울-평양 상호 연락사무소(대표부) 개설이 좋지만, 현재 남북관계의 수준을 고려할 때 당장 가능한 방안이 아니다”며 “당국 간 대화 상설화의 초보적 형태로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추진한다고 보면 된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한겨레는 “문 대통령이 제안할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했으나 ‘직통전화 운용’ 수준으로 유명무실화한 ‘판문점 연락사무소’ 합의(남북기본합의서 1장 7조)의 복원·현실화 추구”라며 “아울러 2005년부터 개성공단 안에 설치돼 남과 북의 당국자 등이 한 건물에서 근무하며 협의하던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현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의 기능과 위상을 ‘경제’에서 ‘모든 분야’로 확대하려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문 대통령이 이미 추진 의사를 밝힌 ‘정상회담 정례화’를 포함해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 당국 대화의 정례화·상시화·상설화 진전의 획기적 전기로 삼겠다는 포석으로도 풀이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른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이번 회담에서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고려해 당국 간 회의체 정비·강화 등 ‘비제재 분야’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역대 최다 184개 외신 ‘한반도의 봄’ 취재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세계 외신들의 눈길도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24일 청와대 집계를 보면 지금까지 취재를 신청한 내외신 취재진은 모두 2850명이다. 외신만 40개국 184개 매체 869명이다. 이는 2000년(543명)과 2007년(376명) 정상회담 때와 견줘 두 배 늘어난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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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외신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왔던 뉴스 중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될 것이라며 ‘모처럼 세워진 큰 장’에 한껏 기대하는 분위기”라며 “지난해 북한의 잦은 핵실험으로 전쟁 위기 가능성을 점치다 다시 찾아온 한반도의 봄에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고 평하는 외신기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황웅재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얼마큼 진전된 안이 나올지가 북-미 정상회담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기에 관심이 더 쏠린다”고 밝혔다.

미국 뉴스전문 방송사인 CNN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도 한국을 찾았다. 아만푸어는 걸프전과 보스니아 내전 등 세계 각지의 분쟁 현장을 누비는 국제부 종군기자로 맹활약하며 세계적인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CNN은 본래 서울 상주 인력이 지국장 1명뿐이지만 이번엔 아만푸어를 비롯해 20여명의 취재진이 함께 서울을 찾는다.

로이터·블룸버그·월스트리트 저널 등 글로벌 경제 매체들도 한국 뉴스 커버리지를 대폭 늘렸다. 한겨레는 “과거처럼 정상회담 뉴스를 정치뉴스로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단기적으로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끼칠 수 있기에 관련 분석기사 등을 매일 서너 꼭지씩 송고하고 있다”며 밝혔다. 경제매체의 한 외신기자는 “앞으로 경협 관련 투자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며 “모든 가능한 취재원을 확보해 다각도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규모를 대폭 늘리며 연일 아침저녁으로 정상회담 뉴스를 가장 많이 보도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언론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이 바라는 것은 납북자 송환”이라며 “납북자를 데려오면 위기의 아베에게 정치적 생명이 연장된다. 납북자 가족들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일본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조선일보,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에도 ‘색깔론’

한편 조선일보는 청와대가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만찬 재료로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현대회장, 윤이상 작곡가 등의 고향 특산물을 선정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이념 편향적”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25일자 “‘DJ 민어’ ‘노무현 쌀’ ‘윤이상 문어’… 정치색 듬뿍 친 만찬메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와대가 이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 중 한 명으로 윤이상을 선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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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 만찬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가 활용된 ‘민어 해삼 편수’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 쌀로 지은 밥이 오른다. 봉하마을의 ‘쑥’으로 만든 된장국과 함경도 향토 음식인 가자미식해도 제공될 예정이다.

청와대는 이 메뉴에 대해 “남북이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또 정주영 회장이 1998년 방북할 당시 몰고 간 소 떼를 키웠던 충남 서산 삼화목장의 한우를 요리한 한우 숯불구이도 선정됐다. 윤이상씨 고향인 남해 통영 바다의 문어로 만든 냉채도 상에 오를 예정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친북 논란이 있는 윤이상이 포함된 점을 두고 야권은 ‘만찬도 이념 편향적’이라고 했다”면서 “또 청와대가 메뉴를 설명하는 자료에 ‘스위스의 추억’ ‘운명적인 만남’ ‘남과 북의 봄’과 같은 제목을 붙인 것을 두고도 ‘탁현민 스타일의 과도한 의미부여’라는 말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윤이상 작곡가와 관련해 “일본·독일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베를린에 정착해 활동한 윤이상은 세계적인 작곡가로 평가받지만, 친북 활동으로 비판을 받았다”며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 김정숙 여사가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윤이상 묘에 심는 등 현 정부는 윤이상에게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고 ‘조선일보 스타일의 과도한 의미부여’를 했다.

물 건너간 6월 개헌, 동력 남아있긴 하나

6·13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 준비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 시한인 지난 23일을 넘기면서 6월 개헌이 최종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민투표법이 원래 기간 안에 결정되지 않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가 무산되고 말았다”며 “이로써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국민께 다짐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고, 국민께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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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지난 대선 때 모든 후보들이 개헌을 약속했고, 기본권과 지방분권 강화에 대한 여론의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졌다”며 “하지만 절대 개헌저지선(의석수의 3분의 1)을 확보한 자유한국당이 반대한 데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여야의 대치가 심화되면서 개헌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87년 이후 31년 만에 개헌이 이뤄질 호기가 날아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6월 개헌은 무산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발의한 개헌안은 아직 유효하다. 문 대통령이 발의를 철회하지 않는 한 국회는 다음 달 24일까지 본회의에서 가부를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회 상황에서 표결하더라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통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2014년 7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이 된 국민투표법을 3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것도 제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국회를 비판하면서 “내가 발의한 헌법개정안은 남북정상회담 후 심사숙고해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자유한국당은 9월 개헌을 주장했지만 여권의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저지하기 위한 성격이었다. 제시한 일정도 ‘연말→10월→9월’로 일관성이 없었다”며 “여권도 지방선거 이후 개헌 협상을 벌일 명분이 부족하다. 대통령 주도 개헌안이 무산된 터라 청와대발 개헌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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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가능성이 더 낮아지겠지만 남은 개헌 동력은 또 있다”며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시한인 6월30일까지라도 합의가 이뤄진다면 야당이 주장하는 9월 개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게 한국일보의 분석이다.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가 장기화할 경우 정국이 개헌 블랙홀로 빨려들어 국정동력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정특위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6월 개헌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는 끝내는 게 맞다”며 “국민에게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을 보고 드리고 평가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26일쯤 개헌과 관련한 당의 최종 입장을 밝힌다는 방침이다.

올해 말까지 국회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2020년 총선을 전후해 개헌이 의제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경향신문은 “개헌안 공약 경쟁부터 ‘개헌선과 개헌저지선 확보’ 대결 등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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