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작성자의 쏠림 현상은 명확했다. 4월24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통계사이트 워드미터가 지난해 10월30일부터 올해 4월23일(오전10시)까지 6개월 간 네이버 댓글 작성자와 작성 글을 분석한 결과 댓글 상위 작성자 100명이 단 댓글 수는 23만487건으로, 상위 100개 계정 당 평균 댓글 개수는 2304.8개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계정 1개당 평균 댓글 수는 2.58개였다. 상위 100개 계정의 댓글 중 56.6%는 정치 기사에 집중됐다.

4월23일자 SBS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서 김수형 SBS기자는 워드미터를 통해 4월19일자 네이버 댓글을 분석한 결과 11만8912개의 계정이 댓글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하루 한 번이라도 네이버에서 기사를 보는 이용자를 1300만 명으로 추정하는데, 이에 비춰보면 댓글을 다는 사람은 전체 계정의 0.9%에 불과했다. 네이버 댓글은 계정 1개 당 하루 20개까지 달 수 있는데, 그런 이들은 3743명이었다. 우리가 매일 온라인에서 마주하는 독자들이다.

▲ 게티이미지. 디자인=이우림 기자.
▲ 게티이미지. 디자인=이우림 기자.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인터넷 댓글은 언론의 독과점적 편집권을 빼앗아 의적 홍길동처럼 대중에게 나눠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의적인 줄 알았던 이들 가운데 도둑도 숨어있었다. 그 중엔 ‘드루킹’처럼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자리 하나 노리는 ‘하이에나’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유한국당에도 붙고 더불어민주당에도 붙는다. 이들은 이데올로기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권력’ 그 자체다.

“문재인정부 출범 전 정기후원자는 4만3000여명 수준이었다. 지금은 3만6000여명 수준이다.” 한 뉴스타파 기자의 말이다. 뉴스타파가 민병두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하면서 정기후원자는 더 빠져나갔다. 프레시안은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하자 협동조합원들의 이탈이 이어졌고 경영진은 일부 조합원들로부터 보도경위를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국민TV는 유시민·김어준씨 등을 비판한 ‘까고 있네’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제작진을 징계했다. 국민TV이사회는 징계사유와 관련해 “조합원들을 위한 방송을 해야 한다는 의무”(송경화 국민TV 상임이사)를 언급했다. 

세 가지 사례에서 등장한 언론사는 △구독료가 아닌 후원이나 조합비 형태로 돈을 번다 △독자의 상당수가 진보성향으로 문재인정부 지지자다 △최근 정부여당 쪽 인사에게 비판적인 콘텐츠를 생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고 있는 독자들의 행동이다.

“과거와 달리 유저 액티비티(독자 행동)에 의해 기사가 재해석되고 발굴되고 광고가 번들링 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용자들의 행위가 수익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가 됐다. 이용자의 행동은 그만큼 중요하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의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이 기사를 쓰는 한국의 기자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매달 돈을 내고, 내 기사에 적극적으로 댓글을 다는 뉴스수용자들에게 반응하라는 것은 결국 독자들과 편집권을 공유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 독자는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다. 하지만 우리는 독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게티이미지.
▲ 독자는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다. 하지만 우리는 독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게티이미지.
그렇다면 독자들이 특정 보도에 비판적 댓글을 많이 달면 보도를 멈춰야 할까. 일례로 민병두 보도로 빠져나간 뉴스타파의 후원자들을 떠올려보자. 뉴스타파의 기사가 허술했나. 아님 후원자들의 지지정당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후원자 이탈을 독자들의 정당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는 이와 유사한 보도를 해선 안 되는 것인가. 만약 기자들이 후속 보도를 멈추면 이는 소통인가 검열인가.

민주주의시대의 독자 행동은 순기능이 적지 않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신문과 방송> 2017년 12월호에서 “우리 언론은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기여한 경험이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언론은 민주정의 주체인 시민과 연대성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시민적 관심과 삶을 반영하는 이용자 관련성 확보에도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늘 부족하다. 독자에게 반응하는 것은 곧 시민적 연대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게 언론이 살 길이다.

그러나 독자행동주의는 저널리즘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는 동시에 특정정당의 장기집권 또는 권력쟁취를 위한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일부 독자들은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이란 도구를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 이 지점은 ‘불편부당성’이란 저널리즘의 핵심가치에 위배된다. 결국 독자행동주의는 저널리즘 영역에 있는 뉴스생산자들이 특정정당을 지지하고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논의로 이어진다. 2002년 1월18일 손석희 진행의 MBC ‘100분토론’ 첫 방송 토론주제가 ‘언론의 특정후보지지’였다. 16년 전의 주제지만 여전히 해답은 없다.

한국사회에서 독자행동주의는 독자들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기사를 공유하거나 기사에 댓글을 달고 언론사에 격려 또는 항의전화를 하고 후원을 끊거나 증액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자행동주의와 관련된 고민은 비단 진보진영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과거 사석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로부터 “왜 정부를 비판하느냐”며 혼이 났다고 했다. 최근 20년간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선거보도에서 정파성이 강해졌다는 학계의 지적을 떠올려보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독자에게 반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독자는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다. 하지만 우리의 독자들 중에는 JTBC기자에게 더블루K 사무실 문을 열어준 건물관리인처럼 의로운 시민도 있지만, ‘손석희 타격’을 모의했던 ‘드루킹’류의 시민도 있다. 드루킹 사건은 언론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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