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조선일보는 가수 현송월 등 북한 예술인 10여명이 음란물 제작·판매 혐의로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이듬해 현씨가 군복을 입은 모습이 공개되면서 오보임이 밝혀졌다. 지난 2월 현씨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예술단을 이끌고 직접 한국에 왔다. 오보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지만 조선일보는 정정하거나 명확한 보도 경위, 재발 방지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

북한 분야는 ‘사실 확인’이라는 저널리즘 기본 원칙이 무너진 영역이다. 북한 오보는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한국에선 김일성 주석이 1986년 11월16일 사망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1994년 7월에야 사망했다. 평양 계엄령 선포설, 북한 쿠데타설, 김여정의 대리 통치설 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소문으로 끝났다. 일본 지지통신 서울 특파원을 지낸 사사키 마코토는 일본 주간지 ‘세계주보’에 ‘한국인은 왜 오보 체질인가’라는 글에서 한국의 북한 보도 특징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어차피 부인되지 않으니 쓴다 △데스크에 북한 보도는 의심스러운 것이어도 좋다는 인식이 있다 △북한에 대한 주의주장이 앞서 사실 보도를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에 깊은 지식이 없는 기자가 정보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정보원이 말하는 대로 뉴스화한다.

▲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남한 지난 1월21일 서울역에서 KTX를 통해 강릉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남한 지난 1월21일 서울역에서 KTX를 통해 강릉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관련 오보나 왜곡 보도가 많다는 것은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오보가 대부분 특정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 언급된 예시 대부분은 ‘대북 강경론’의 근거가 되거나 북한을 비상식적인 국가로 인식하게 만든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한 지난 2016년 2월10일, 통일부는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처형은 사실이 아니었다. 장용훈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는 이에 대해 “‘김정은은 나쁜 놈이고 아무나 죽인다’는 메시지였다”며 “대북 정책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는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북한 정보를 언론이 외면할 순 없다. 그러나 장 기자는 “기사는 써야 하지만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 날 처형됐다는 정보라면 의심해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정부 발표를 인용해 스트레이트 기사를 쓴 뒤 처형 이유에 대한 해설 기사를 소설처럼 쓰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지적했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정정·반론없는 북한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란 기고글에서 사사키 마코토의 지적을 인용하며 “북한의 폐쇄성과 같은 외적 요인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내적 요인은 언론 현장에서 시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정보의 빈 공간을 추측으로 메꾸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보도에서 특종보다 중요한 건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쓰지 않을 용기”

북한 사회 폐쇄성은 오보가 계속 생산되는 구조적 원인이다. 기자들이 북한을 취재하는 창구는 크게 ‘남북한 당국의 발표’와 ‘북한을 접촉한 사람들을 통해 얻는 정보’로 구분된다. 조선중앙TV·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의 보도, 통일부·국가정보원·정부의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 등 한국 정부 발표가 북한 보도의 주요한 정보다. 그러나 이를 통해 획득한 정보를 활용할 때, 정부가 ‘북한 정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싶어 한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언론은 당국이 발표한 정보의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지만 이를 교차 확인할 취재원은 한정돼 있다. 대북 지원단과 같이 북한과 교류하던 사람들이나 중국·일본 등에서 북한을 접촉하는 소식통을 많이 알아야 퍼즐 조각을 좀 더 얻을 수 있다. 일부 외신은 북한 기사에 북한이 폐쇄적 나라이고 한국 정부 발표가 틀린 적이 많다 등의 내용을 습관처럼 표기한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7년 7월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 성공 소식을 들은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7년 7월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 성공 소식을 들은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탈북자 등 북한 이탈 주민으로부터 북한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기자가 직접 북한을 취재할 수 없으니 한 다리 건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이 쉽게 되지 않아 오보인지 당장 알 수 없고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다. 한 북한전문기자는 “북한 보도에서 특종보다 중요한 건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쓰지 않을 용기”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됐던 지난 정부에선 이런 ‘용기’가 더 필요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위축된 북한 취재

이명박 정권 이후 남북 교류는 끊기기 시작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대표를 맡은 정일용 연합뉴스 기자는 “언론본부는 2005년부터 연 2회 이상 북측과 만났다”며 “북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가로막아 2008년 가을이 마지막 만남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북측이 남측과 접촉을 꺼린다’는 잘못된 소문도 퍼졌다.

교류가 줄면 정보도 끊긴다. 남문희 시사IN 한반도 전문기자는 “10~20년 전 북한 기사를 보면 소스가 다양했다”며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사회의 대북 정보 수집 양 자체가 줄었다”고 말했다. 북한 소식을 외신에 의존하는 현상도 심화됐다.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는 북한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가 불편해하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배제됐다. 상징적 사건은 국정원이 몰랐던 내용을 특종한 기자가 퇴사한 일이다.

2010년 11월 신동아에 따르면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라는 특종을 한 최아무개 연합뉴스 기자를 국정원이 사찰했고 인사 발령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원은 당시 특종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에는 ‘국정원이 최 기자를 불편해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후 최 기자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 휴직원을 냈다. 최 기자는 지난 2015년 10월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퇴사했다가 최근 연합뉴스 사장이 바뀌고 재입사했다.

북한 뉴스는 정권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채워졌다. 공영방송 내부에선 지난 정권의 KBS·MBC 북한 보도가 냉전 사고에 기반한 보도였다고 수차례 비판이 제기됐다. 박근혜 탄핵 등의 이슈를 북한 보도로 덮거나 북한 위협을 과장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KBS ‘추적60분’은 지난 2010년 천안함 편 불방 사태를 겪었고 8년 뒤인 지난 3월에야 천안함 편을 후속 방영했다. 북한 보도는 당시 야당 정치인을 ‘종북’ 성향으로 공격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내근 기자들이 충분한 취재 없이 북한 이슈를 다루기도 했다. 각 부서들이 협력해 북한 기사를 제작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악용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종합편성채널이 생기고 탈북자들이 출연하는 방송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증언을 조심스럽게 활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주로 중국 접경지대에서 온 사람이 많고,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는 “프로그램 기획·진행자가 탈북자의 말을 거를 만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들에게 인터뷰 대가로 돈을 주는 관행 역시 보도 신뢰도를 깎아먹는 요소다.

결국 양질의 북한 기사는 기자 개인의 정보 선별 능력과 회사차원의 지원과 협력, 그리고 정부의 대북·대언론 정책 기조가 합을 이뤄야 가능하다.

▲ 지난 2000년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현대사 디지털아카이브
▲ 지난 2000년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현대사 디지털아카이브

언론의 반성, 정부의 대언론 태도도 변해야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준비에 나서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6·15 언론본부)는 24일 성명을 통해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련(현 언론노조)이 1995년 만든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을 준수하겠다며 그간 언론이 쏟아낸 오보에 대해 반성했다. 그동안 오보가 남북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이 준칙의 보도 실천 요강에는 남북 긴장 해소 노력과 각종 추측 보도 및 희화적인 소재 지양 등을 담았고 제작 실천 요강에는 통일 지향 가치 추구, 냉전시대 관행 탈피, 남북 차이 이해 노력, 남북 동질성 부각 등을 담았다”며 “한반도 평화 정착 모색이라는 새 시대를 맞아 통일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한다”고 밝혔다.

남북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예컨대 주요 남북 교류 현장에 취재단을 배제하는 일이 잦다. 북한 취재 기자들 사이에는 농담처럼 “남북 정부가 만나 가장 먼저 합의하는 게 ‘기자단 빼자’는 것”이란 말이 돈다. 지난 4월1일 평양 공연에는 방송 카메라 1명을 제외하고 한국 기자 취재가 전면 금지됐다. 민감한 협상 전략이 아닌데도 기자들을 배제하는 건 정부가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한 문제다. 기자들은 “남북 교류 과정에 언론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부족하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국내에 있는 외신 기자단에 대한 차별도 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외신 기자는 “통일부 등 정부 부처가 기자회견을 한 뒤 백브리핑 때 외신 기자만 나가라고 한다”며 “왜 뒤늦게 한국 언론 기사를 보고 부처에 다시 확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언론인의 활발한 교류가 예상되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장기적으로 평양지국 설치를 준비 중이다. 각 언론사별로 취재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한국기자협회 등 주요 언론단체가 북한 언론단체와 상시적으로 접촉하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6·15 언론본부는 “4·27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발판으로 남북 언론의 상호 교류와 협력 활동을 적극 보장하고, 남북 언론 교류 재개에 필요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달라”고 정부측에 요청했다. 활발한 언론 교류가 가능하면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남북 교류가 유지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 관련 언론보도의 정확성 또한 높아질 전망이다. 

[관련기사 :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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