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 참사는 참사 직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참사 초기 정부의 구조 실패를 뒤로 한 채 ‘유병언 일가 보도’로 물타기에 나섰고, 진상규명에 대한 유가족의 요구를 ‘배·보상금’ 프레임으로 폄훼하는 동안 ‘공영방송 기자=기레기’라는 등식이 굳어졌다. 공영방송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웠던 정부는 참사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참사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이 열린 지난 16일 공영방송이 반성과 사과를 전한 이유다.

“세월호 가족들은 참사로 1차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언론의 왜곡 보도로 2차 피해를 입었다. 세월호 보도에 죄의식을 갖고 있는 저희들로서는 원점에서 이 사안을 다루려 한다. 그 원점을 저 배에서 다시 찾으려 한다.” (16일 MBC ‘뉴스데스크’ 박성호 앵커 클로징멘트)

세월호 참사 당일 ‘전원구조 오보’를 비롯해 왜곡·편파 보도 주역으로 비판 받아온 MBC는 16일 세월호 선체가 거치돼 있는 목포 신항에서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 평소보다 20분 일찍 방송을 시작한 뉴스데스크는 안산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과 인천가족공원에서 진행된 일반인 희생자 영결식 등 총 15개 꼭지를 세월호 참사 보도에 할애했다.

MBC는 특히 두 개의 단독 보도를 통해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재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MBC는 지난 2014년 검찰이 세월호 침몰 당시 선체 기울기를 30도로 한정해 침수 실험을 진행했지만 실제로는 배가 최대 50도 이상 기울었을 것이라는 영상전문가들의 분석 결과를 전했다. 당시 특별조사 보고서를 내며 검찰 조사를 뒷받침했던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안전심판원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 조사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 MBC는 16일 세월호가 침몰 당시 30도 각도로 기울었다는 검찰의 전제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쳐
▲ MBC는 16일 세월호가 침몰 당시 30도 각도로 기울었다는 검찰의 전제가 잘못됐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쳐
▲ KBS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선내에 있었던 화물차의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해 침몰 원인을 추적했다. 사진=KBS 뉴스9 캡쳐
▲ KBS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선내에 있었던 화물차의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해 침몰 원인을 추적했다. 사진=KBS 뉴스9 캡쳐

지난 14일부터 17일을 ‘세월호 특별 추모 기간’으로 정한 KBS의 경우 참사 당일인 16일을 기점으로 뉴스 앵커들을 교체했다. KBS 메인뉴스 ‘뉴스9’의 김철민·김솔희 앵커는 이날 “KBS 뉴스로 인해 상처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먼저 깊은 위로와 사죄를 드린다”며 “세월호 보도 참사에 대한 반성이 곧 새로운 KBS의 시작임을 기억하겠다”는 말로 뉴스를 열었다.

이날 세월호 특집 기획으로 구성된 KBS ‘뉴스9’은 10개 꼭지로 세월호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이 가운데 세월호 침몰 당시 화물칸에 실려 있었던 차량 7대의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하며 세월호 침몰 원인을 추적한 보도가 눈에 띄었다. KBS 취재진은 7개 차량에서 입수한 11개 영상에 대해 시간 오차를 잡아내고 KBS 음향감독이 관련 장비를 통해 소리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블랙박스 영상 분석 결과를 근거로 KBS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50여 초 동안 이미 기울고 있었다”며 “정상적 운행이었다면 배가 기울었다고 해도 20초 정도 뒤 다시 중심을 잡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정황상 조타수가 조타기에 손을 대지 않았거나 기계 자체에 이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등장했다.

이 같은 공영방송의 보도는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당시 보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하려 하고, 온전한 선체 인양을 원하는 유가족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MBC와 KBS 메인뉴스는 모두 유가족이 특별법 시행령을 반대하는 구체적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유가족의 ‘반발’을 기계적으로 다뤘고, “세월호 인양에 나서겠다”는 박 대통령의 말을 검증 없이 전했다.

시사·교양 부문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더 컸다. 1주기 당시 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도 내보내지 않았던 MBC는 4주기를 맞아 세월호 특집 편성에 나섰다. ‘스트레이트’는 지난 8일과 15일 세월호 참사 당시 교신기록을 분석하며 구조에 나서지 않았던 정부와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었고, ‘MBC스페셜’도 16일과 23일 2부작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참사 당시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기획했다.

KBS 시사·교양프로그램도 4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17일 ‘시사기획 창-침묵의 세월’ 편은 참사 당시 블랙박스와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통해 침몰 원인과 구조 상황의 문제점에 집중했고, 19일 ‘KBS스페셜-세월호 4년, 관객과의 대화’는 참사로 자녀를 잃은 엄마들의 연극을 다뤘다.

▲ 양승동 KBS 사장(위)과 최승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양승동 KBS 사장(위)과 최승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공영방송이 이렇듯 반성을 거듭하고 있지만 또다시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을 마주했을 때 과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반성보다 중요하다. 정부여당의 영향력에 취약한 공영방송 특성상 외압을 차단할 수 있는 구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양승동 신임 KBS 사장을 향해 “누가 사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건 다시는 못 건드리는 KBS를 만들어 달라”고 말한 맥락도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은 내부적으로 보도참사와 관련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진행 중이다. MBC는 지난 1월 출범한 노사 공동 ‘MBC정상화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에 대한 경위와 책임자를 조사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세월호 관련 최악의 보도로 꼽히는 참사 당일 ‘전원 구조’ 오보와 ‘유가족 폄훼’ 보도다. 공교롭게도 당시 전국부장이었던 박상후 기자가 모두 연관돼 있다.

박 기자는 참사 당일 목포 MBC 보도국으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전원 구조 자막이 나가면 안 된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세월호 구조에 투입된 잠수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종자 가족이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압박했다’고 전한 리포트는 ‘최악의 보도’로 비판 받아 왔다. 박 기자는 지난 2016년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언론보도 공정성 관련 증인으로도 채택됐지만 끝내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MBC 정상화위원회 관계자는 “박상후 기자는 MBC 세월호 보도에 있어 핵심적인 인물”이라며 “박 기자 조사가 이뤄진 뒤 추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기자가 대면조사를 전면 거부하고 있어 조사 진행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기자는 정상화위 조사 불응으로 인해 지난달 대기발령 처분을 받은 상태다.

KBS의 경우 이른바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으로 대표되는 보도 외압 사례에 대한 규명이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2014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과 정부를 비판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이 녹취록은 박근혜정부의 공공연한 보도 개입 실체를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 어떠한 외압이 가해졌고 실제 보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이라도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

양승동 KBS사장도 취임을 전후해 세월호 보도를 비롯한 과오를 가려내기 위해 정상화추진위원회(가칭) 구성을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로드맵은 밝혀지지 않았다. 과반 노조 및 교섭대표 노조가 없는 KBS의 상황을 고려할 때 MBC와 같은 노사 공동 기구가 조직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KBS 내부에서는 정상화 관련 기구 출범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요구가 나온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이경호)는 17일 “시청자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즉시 KBS 정상화를 위한 기구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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