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앉을까, 말까 고민했다. 17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주최의 ‘사회주의 개헌‧정책 저지를 위한 대국민 시국강연회’ 현장에서였다.

강연회 현장에는 기자들의 편의를 위한 책상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책상들 앞에는 장애인석 로고가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공간은 원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해 비워둬야하는 공간이었다.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위한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공간에는 책상이 3개 나란히 붙여져있어 빈공간은 없었고, 누가봐도 현장에서 노트북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 자리가 장애인석인지 프레스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주최의 '사회주의 개헌, 정책 저지를 위한 대국민 시국 강연회'의 한 공간. 사진=정민경 기자.
▲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주최의 '사회주의 개헌, 정책 저지를 위한 대국민 시국 강연회'의 한 공간. 휠체어를 위해 빈 공간으로 둬야하는 곳에 책상이 놓여져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강연회가 열리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정면에 큰 무대가 있고, 나머지 좌석은 책상 없이 의자만 놓여있는 공간이다. 보통 장시간 노트북을 사용해야하는 기자들은 무릎 위에 노트북을 놓고 업무를 해야하기에, 불편한 장소이긴 했다. 책상이 있다면 편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기자들을 위한 책상 자리가 휠체어를 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불편했다.

몇몇 기자들은 이미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켜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앉아도 되나 고민하는 사이 다른 기자가 와서 노트북을 켰다. 일단은 책상이 없는 좌석으로 와서 앉았다. 현장 취재에 집중하려고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자리에는 책상을 놓으면 안 되는 자리가 분명했다. 다시 그 자리를 돌아봤다.휠체어 자리에 책상을 둬서 만든 9개의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첫째로 휠체어를 위한 공간에 책상을 둔 사람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강연회 밖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분께 ‘장애인석에 책상을 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한 실무진이 와서는 “우리가 책상을 놓은 것이 아니라, 여기에 원래 책상이 있었다”며 “원래 책상이 있었고, 거기에 기자들이 앉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자유한국당 공보팀의 한 인사에게 물으니 “저희가 책상을 둔 것이 아니다”라고 답이 돌아왔다.

▲ 휠체어를 탄 사람을 위해 비워둬야 하는 공간에는 책상 3개가 꽉들어차 있었다. 사진=정민경 기자.
▲ 휠체어를 탄 사람을 위해 비워둬야 하는 공간에는 책상 3개가 꽉들어차 있었다. 앞자리에 빈 자리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책상이 있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진=정민경 기자.
그러나 두 번째로, 그 곳에 이미 책상이 놓여져있다고해서 치우지 않고 그대로 행사를 진행한 것도 문제가 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휠체어 자리에 책상이 놓여져 있는 것을 봤을텐데도 아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책상을 치우지 않은 이유는 ‘휠체어를 타고 누가 오겠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같은 시간 반대편에 있는 대회의실에도 들어가봤다. 그곳 휠체어석에는 의자 몇개가 놓여져 있었으나 책상은 없었다. 만약 휠체어를 탄 사람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 정도의 빈 공간도 있었다.  적어도 책상 3개가 들어갈 공간에, 1개라도 휠체어를 위한 자리로 비워뒀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 그 자리에 책상이 있다고 해서 그냥 앉아있었던 사람들도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이는 지하철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에서 ‘앉아있다가 노약자나 장애인이 오면 비켜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휠체어를 위한 공간 자체를 책상으로 막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장애인 로고가 붙어있는 책상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업무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해당 강연회에 휠체어를 이용해서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과잉반응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행사에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는 비워두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이 없기에 그 장소에 책상이 들어선 것일 수도 있으나, 거꾸로 그 자리에 책상이 있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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